Scientists∩Feminists 페미회로 인터뷰 프로젝트 VI: 육아하는 대학원생, 연구하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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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학교 에너지과학과 박사과정 이은 씨

지난 3월 12일 대전에서, 국내 5개 지역거점 과학기술중심대학(DGIST, GIST, KAIST, POSTECH, UNIST)의 페미니스트 연합모임 <페미회로(영문명 FemiCircuit)>가 공식 출범했다.
(페미회로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femicircuit)

페미회로는 이공계 내 젠더 불평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지속할 수 있는 페미니즘을 실천하려는 모임이다. 과학기술계에 몸담고 있는 젊은 여성들과 그들의 문제에 공감하는 남성들이 함께 목소리를 내며 현실을 바꿔 나가려 한다. 그런 실천의 한편으로, ‘테크노페미니즘’으로 호명되고 있는 새로운 페미니즘 담론을 만들어 간다는 계획이다.

페미회로에서는 2017년 연중 프로젝트로 우리 주변의 페미니스트들을 만나기로 했다. 이름을 얻었거나 얻지 않았거나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일하고 고민하며 실천하는 이공계 여성 종사자들을 통해, 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우리의 미래를 살펴보자는 것.

특히 이공계 여학생들과 여성 연구자들은 자신의 커리어 개발은 물론 결혼과 출산, 육아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고 있음에도 그에 대한 현실적인 이야기를 들어볼 기회가 매우 귀하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육아하는 대학원생, 연구하는 엄마로 성균관대학교 에너지과학과 석박사통합과정에 재학중인 대학원생 이은씨를 만났다. 인터뷰를 통해 대학원생으로서 연구하며 전문가가 되기 위한 준비와 동시에 결혼과 출산, 육아까지 인생의 단계 단계를 거쳐온 이은 씨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페미회로 인터뷰어는 류정은, 지은경으로, 모두 회로라고 표기했다. 인터뷰이 이은은 이은으로 표기했다. 검수는 길한석, 백부경, 성기봉, 은윤혜 (이상 가나다 순)의 검수팀이, 최종편집은 <걸스로봇>에서 나누어 맡았다.

 

회로: 안녕하세요. 먼저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이은: 안녕하세요. 저는 학부 때 정보통신을 전공한 후 지금은 성균관대학교 에너지과학과에서 석박사통합과정에 재학 중인 대학원생이고요. 복잡계 네트워크 관련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페미니스트와의 대화

회로: 이 인터뷰의 제목이 ‘페미니스트와의 대화’인데요. 우리나라에서 페미니스트를 바라보는 시선이 그다지 좋지 않기도 하고, 각자 생각하는 의미도 모두 다르잖아요. 부담은 없었나요?

이은: 부담스러운 면이 있었죠. 이 인터뷰의 설명을 보니 이공계 페미니스트를 만난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제 정체성 중 페미니스트는 없었거든요. ‘난 아닌 거 같은데’라는 생각과 동시에,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분들에게 불쾌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회로: 그럼에도 인터뷰에 응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이은: 결혼하면서 여성의 인생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미혼일 때는 별 차이를 못 느꼈거든요. 결혼이라는 제도하에 여성이 느끼는 책임과 의무, 똑같이 일해도 월급을 적게 받는 친구들, 여성에게 오롯이 부과되는 육아 등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을 보며 여자로서 나도 그렇고 우리 모두 좀 잘 살아야 하지 않냐는 생각이 들었어요.

회로: 오히려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여성의 삶에 대해 더 절실하게 느끼지 않을까 생각해요. 페미니즘은 언제 처음 접하셨고, 그 때 접한 내용은 무엇이었는지, 당시에는 어떤 생각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이은: 여대에서 학부 생활을 하면서 페미니즘을 처음 접하게 되었어요. 학내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가 많이 발전되어 있다 보니 그에 대해 들을 기회도 많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때는 약간 반감이 있었어요. 페미니즘은 훨씬 포괄적인 논의인데 당시에는 담배 피우는 거나 성생활의 자유와 관련된 것들이 두드러졌거든요. 고등학생을 막 벗어난 제가 느끼기에 그 당시의 페미니즘은 그냥 화가 난 것처럼 보였어요. 물론 화난 건 이해할 수 있지만 그것을 표출하는 방식이 흡연이나 ‘성생활’ 등 한정적인 것에 국한되어 있어서 아쉬웠어요. 나중에 아이가 생기고 모교에 놀러가니 예전부터 페미니즘을 이야기해온 학교임에도 불구하고 수유실을 찾기도 힘들더라고요.

회로: 최근 몇 년 사이 강남역 사건이나 깔창 생리대 등 페미니즘과 관련된 이슈가 많잖아요. 저도 그런 이슈로 페미니즘을 다시 생각하게 된 사람 중 한 명인데요. 이은님은 페미니즘이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은: 개인적으로 저는 성 평등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지금은 여성이 여러 가지 제도 때문에 상대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놓이는 경우가 많아서 그것을 신장시키기 위해 페미니즘이 여성만을 위한 운동으로 인식되는 것 같아요. 남성분들에게도 제도적으로 불평등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모든 것을 고려해 성 평등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자 대학원생, 결혼하다

회로: 이공계 여학생들이 빠르면 학부 때부터 결혼과 커리어에 대해 생각해요. ‘나는 언제쯤 결혼하고 아이를 가질까’, ‘일과 병행할 수 있을까’ 등 많은 고민을 하는데 이은님은 결혼해 학업과 육아를 병행하고 계신다고 들었어요.

이은: 저는 석사 졸업을 정하고 결혼 준비를 시작했어요. 신랑과 6년 교제하다가 1년 동안 헤어져 있던 기간이 있었는데 그 후에 다시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결혼 이야기를 했어요. 그동안 헤어짐의 위기가 여러 번 있었는데 그 이유는 대부분 제가 결혼하고 싶은 시기와 신랑이 결혼하고 싶은 시기가 달라서였어요. 그때 저는 커리어에 대한 욕심이 많았기 때문에 ‘내가 결혼하면서 커리어를 포기해야 할까?’, ‘이 사람이 맞나’ 등의 회의가 들 때가 많았어요.

회로: 헤어짐을 겪은 뒤 다시 만나면서 결혼을 결심했군요, 그동안 고민해왔던 커리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밖에 없었겠습니다.

이은: 헤어진 후, 이 관계가 서로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되돌아 보게 되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커리어가 나에게 그렇게 중요한가 반문하게 되더라고요. 인생이 연구나 직장, 경력만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잖아요. 자발적으로 비혼을 택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저의 경우는 인생을 함께 할 파트너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렇다면 저 사람이 배우자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결혼하면 내가 분명히 포기해야 할 것이 생기는데 결혼과 포기해야 할 것들의 경중을 따져본 결과 저는 결혼하는 편이 낫다고 결론을 내렸어요. 내 커리어를 포기하더라도, 이 사람과 인생을 꾸려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회로: 지금까지의 삶의 판도를 뒤집을 수 있는 중요한 선택이었네요. 커리어를 포기할 수도 있다는 걸 염두에 둔 비장한 각오인데요.

이은: 학계에 남아 있는 분들을 보면 결혼을 안 하셨거나 아이를 낳지 않았거나 아이가 있더라도 한 명만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그게 아니면 남아있기 힘든 구조라는 것을 이미 알았기 때문에 최악의 경우까지 마지노선으로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 거죠. 물론 최대한 그러지 않기 위해 노력하겠지만요.

회로: 저도 결혼을 앞둔 입장이기 때문에 이은님의 생각에 공감하고 왜 그렇게 고민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해요. 혹시 이러한 고민을 남편과도 상의했나요?

이은: 네, 많이 했죠. 저희 부모님께서는 맞벌이하셨기 때문에 저는 할머니 손에 자랐어요. 자라는 동안 우리 아이는 이러한 외로움을 느끼면서 크게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줄곧 해왔던 것 같아요. 저는 만약 제 아이가 어릴적의 저처럼 외로움을 느낀다면 일을 그만두겠다는 우선순위를 정하고 시작했어요. 이는 가족계획과도 얽혀있는 부분이니 신랑과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고요.

그런데 신랑도 저와 똑같이 생각했다고 하더라고요. 신랑이 결혼을 계속 미뤘던 이유는 남자가 어느 정도 경제적인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이었다고 하더라고요. 서로 헤어져 있는 동안 본인이 지나치게 사회 시스템에 맞춰서 살려고 한 것이 그다지 옳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했대요. 그리고 공부를 계속하고 싶은 제가 결혼하면서 희생해야 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미처 고려하지 못한 것 같다고, 그렇다면 본인도 그만큼 희생할 각오를 하고 시작하겠다고 그랬어요. 실제 행동까지는 모르겠지만 그럴 수 있는 마음, 그리고 함께 고민해줬던 게 너무 고마웠어요.

회로: ‘two body problem’에 대한 고민이 많아요. 일이나 학업 때문에 떨어져 지내는 부부가 많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대처하고 있나요?

이은: 저는 결혼할 때 같이 움직인다는 원칙을 정했어요. 만약에 한 명이 따라왔으면 그다음에는 다른 사람이 이동하자. 흩어지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어쩔 수 없으면 유연하게 대처하기로 했어요. 신랑이 신혼 초기에 2년 동안 브라질에 가 있었는데 거기서는 아이를 키우기 힘든 상황이라 저는 따라가지 않았어요. 이렇게 예외적인 경우는 계속 이야기하면서 맞춰나가야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서로 떨어지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려고 해요.

회로: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함께 산다는 것만으로도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아요. 하루 일과를 어떻게 쓰고, 집안일을 부부가 어떻게 나누는지 궁금합니다.

이은: 보통 10시 반부터 5시 반까지 근무하는데 아침은 대부분 아이 밥 먹이고 등원시키고, 집안일 하면서 보내요. 퇴근하고 나서도 마찬가지고요. 신랑은 새벽 6시에 나가서 일찍 오면 저녁 7시 반, 8시쯤 돌아오기 때문에 육아는 거의 할 수 없어요. 대신 퇴근하면 아이와 최선을 다해서 놀아주고 분리수거, 화장실 청소, 설거지 등 제가 하기 싫은 집안일을 해요. 딱 정해서 분담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각자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서 하고 있어요.

 

육아하는 대학원생, 연구하는 엄마

회로: 이제는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 이야기로 넘어가 볼게요. 연구실 출근은 언제까지 했고 출산 후에는 어느 정도 쉬었는지요.

이은: 이론 연구를 하고 있어서 임신 9개월까지 출근할 수 있었지만, 중간중간 아이 상태가 안 좋으면 못 나가는 경우도 있었어요. 지금은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때는 초산이라 많이 무서웠어요. 임신하고 일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 막연한 출산의 고통과 예측할 수 없는 위기상황이 두렵게 다가왔죠. 아이는 마침 7월에 태어나서 방학 끼고 9월까지 쉬다가 10월즈음부터 다시 출근했어요.

회로: 출산 후 몸이 회복되기까지는 적어도 1년 이상이 걸린다고 들었습니다. 세 달 만에 다시 연구실에 나간 거라면 몸조리 기간이 매우 짧은 거 아닌가요? 출산 휴가와 관련해서 교수님과 따로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으셨나요?

이은: 제가 먼저 3개월 정도는 쉬어야겠다고 이야기했고 교수님도 동의하셨어요. 사실 대학원생이라는 존재가 사회에서 학생도 사회인도 아닌 위치에 끼어 있잖아요. 외국에서 대학원생은 공부를 업으로 하는 사회인이기 때문에 박사 과정부터는 보험 처리도 되고 월급도 합법적으로 나오고 월급이 확보되지 않으면 고용조차 할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이렇게 제도화된 구조가 아니다 보니 저는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쉬는 게 아니었고, 그 와중에 월급은 나오니까 죄책감이 들더라고요. 초반에는 아이가 생겨서 좋았는데 갈수록 하는 일 없이 돈만 축내는 무능한 존재가 된 것 같아서 죄스러웠어요.

회로: 학계에 계신 젊은 여성분들의 생애주기에 따른 발달과업의 특징을 설명한 인터뷰를 본 적이 있어요. 가정을 돌보고 육아를 신경 써야 하는 시기에 아무래도 동년배의 남성 연구자들에 비해서 학회 활동을 활발하게 하지 못한다는 내용이었어요. 학회에서 사람들도 만나고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도 연구활동을 지속하는 데에 중요한 부분인데, 여성들은 그러지 못하니 상대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죠. 연구 지원이나 휴가 등이 제도로 마련되어야 마음이라도 편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현재는 이런 사항들이 전혀 명문화되지 않다 보니 이은님의 경우처럼 마음도 불편하고 그 때문에 무리해서 몸이 상하는 경우도 생기잖아요.

이은: 경제적으로 큰 이익을 얻는 직업군에 있는 것이 아니라서 순전히 자기의 의지에 따라 계속할 사람, 특히 그 중에서도 지원군이 있는 사람만 살아남게 돼요. 나라에서 고학력 여성들을 인재라고 생각한다면 제도적으로 여성들의 사회활동을 어떻게 잘 지원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서는 경력 단절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지만 제가 외국에서 진행하는 연구 프로그램에 지원하려고 보니 경력 단절된 시기와 가족 부양이나 양육 등의 사유를 적으라는 항목이 있더라고요. 우선 그런 상황을 고려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여성들이 학계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회로: 아무래도 임신하셨을 때 몸이나 호르몬 분비가 달라져서 신체적으로도 평소와는 달랐을 테고, 함께 연구하는 사람들을 볼 때 힘들었던 점이 있었을 것 같아요. 나도 연구를 마음껏 하고 싶고 절대적인 시간을 충분히 쏟고 싶은데 태어날 아이를 생각하면 특히 몸 상태에 신경 써야 하니까요.

이은: 대학원 초기에 대학원 생활에서의 어려움으로 우울증 진단을 받았었는데, 임신과 출산을 겪으면서 우울한 느낌을 더욱 많이 받았어요. 이전과는 달라지게 된 삶을 받아들이는 게 무척 힘들었어요. 특히 신혼집이 학교 앞도 아니어서 시외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했는데 임신 마지막 달에는 조산 위험이 있어서 최대한 차를 타지 말고 안정을 취하라는 말을 들었어요. 버스 안에서 아이를 낳고 싶지 않으니까 집에 누워있기는 했지만 마음이 불편했죠. ‘연구실 사람들은 9시에 출근해서 연구하고 성과도 낼 텐데, 나는 졸업이나 할 수 있을까’, ‘이 연구를 계속할 수 있을까’. 오만 가지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회로: 아이를 돌볼 때 부모님 도움을 받았나요? 요즘은 황혼 육아가 많다고 하더라고요.

이은: 친정 어머니와 같이 살고 있어요. 신랑이 외국으로 파견을 가면서 그렇게 되었는데, 친정어머니는 경제 활동을 계속하고 계셔서 저녁에 도와주실 수 있으셨고, 시어머니는 건강이 좋은 편이 아니셔서 많은 도움을 받기는 어려웠어요. 친정어머니도 노후가 안정된 연금 체제에서 사시는 것이 아니셔서 직장 생활을 계속하셔야 하는데 같은 여성으로서 엄마를 ‘경단녀’로 만들 수 없잖아요. 때때로 불편함을 토로하더라도 막상 도움을 청할 곳이 마땅치 않더라고요. 가사와 육아의 부담을 안고 스트레스 속에서 공부하는데 그러면 또 일이 잘 안 되거든요. 그때 박사과정을 그만 둘 생각을 많이 했어요.

회로: 저희 어머니께서는 본인도 나이를 먹으면 아이를 돌봐주기 점점 힘들어지니, 제가 결혼도 빨리 하고 아이를 낳는 시기도 잘 고려하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어머니가 도와주시는 건 감사한 일이지만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건지, 스스로 해결할 수는 없는지 의문이 들었어요. 주변의 이해와 지원에 의존한다는 것부터가 잘못된 상황인 것 같아요. 어머니들도 자신의 삶이 있는데 말이죠. 제 친구들 중에는 가사 도우미나 돌봄 도우미 분들께 도움을 받기도 하던데 경제적 부담이 어마어마하다고들 합니다.

이은: 지금 구조에서는 조부모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경제적 출혈이 너무 크지요. 저는 신랑이 2년 동안 브라질에 가 있어서 월급이 이전보다 더 들어왔어요. 그게 아니었다면 베이비시터를 고용할 엄두도 못 냈을 거에요.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가사 도우미는 기준이 굉장히 까다로워서 그 기준을 충족시키기부터 어렵고, 설령 된다고 하더라도 그분들이 시간이 되어야 배정받을 수 있어서 실질적인 도움을 기대하기는 힘들어요.

회로: 아이는 지금 만 3살이지요? 어린이집에는 언제부터 보내셨나요?

이은: 돌 지나고 보내기 시작했는데 주변을 보면 6개월부터 보내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저는 벌써 고민이에요. 초등학교는 1시 반에 끝나거든요. 방과후 교실을 보내도 4시에 끝나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나도 학원에 보내야 하나? 아이들 하교하는 시간에 맞춰서 초등학교 앞에 가보면 학원 차가 줄지어 서있다는 뉴스를 보았어요. 나라에서는 사교육을 없애자고 하지만, 정작 육아에는 비협조적이라 남은 시간에 아이를 봐줄 곳이 학원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건강하게 커야 건강한 사회가 될 텐데 그러한 고민 없이 지금처럼 각 가정, 특히 엄마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회로: 학교에서 여자 선배들을 초청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학업과 출산-육아를 병행했던 이야기를 해주시면서 모두 잘하려고 하지 말라는 조언을 해줬는데, 그 이야기 자체만으로도 마음이 되게 편해지더라고요. 일도 잘하고 아이도 잘 키우는 슈퍼맘 이야기에 스트레스를 받았거든요. 내가 과연 다 잘해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많았는데 도움 받을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받고 잘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이은: 그걸 못 버려서 저도 많이 힘들었어요. 동료 연구자들에게 질투와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고 육아 스트레스도 심했어요. 지금은 천천히 오래 가자는 쪽으로 생각을 바꿨어요. 어차피 연구에 투자할 수 있는 절대적인 시간이 아이가 없는 사람들과 다르거든요. 커리어에 최대한 투자할 수 있는 삶의 형태와 제가 선택한 삶의 형태를 단순히 비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초반에는 그것을 애써 부정하고 극복하려고 애썼는데 그 자체가 오만이었어요. 내가 선택한 삶에서 주어지는 맛을 누리자고 마음을 바꾸니 여유도 생겼고 육아도 재미있어졌어요.

 

* 육아와 제도, 정책: 우리나라의 현실

회로: 대학이나 정부에서 임신, 출산과 관련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있나요? 있다면 간략하게 소개해주시고, 없다면 그로 인해 겪었던 불편함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이은: 거의 없어요. 그나마 있는 것도 대학원생에 대한 이중 잣대 때문에 도움을 받기 어려워요. 외부에서는 대학원생을 공부하는 학생으로 바라보지만 교수님은 월급을 주고 고용한 사람으로 생각하잖아요. 한 번은 어린이집 종일반을 신청하기 위해 동사무소에 갔는데 재학 증명서를 떼오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코스웍이 끝난 상태, 즉 수료 상태라서 재학 증명서를 받을 수 없었어요. 그렇다면 연구실에 고용되어 있다는 사인을 고용인에게 받아오라는 거예요. 저는 아무에게도 고용되어 있지 않은데도 말이죠. 이러한 일을 겪으면서 정부에서는 계속해서 여성 과학기술인을 육성하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현재 상황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 알게 되었어요.

회로: 동사무소에서 신청했던 어린이집 종일반 외에 나라나 학교에서 도움 받은 것들은 더 없나요?

이은: 없었던 것 같아요. 아쉬웠던 부분들도 있었는데, 예를 들면, 수유실이나 휴게실 등이 부족했던 부분이에요. 제가 수유를 일찍 끝낼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가 학교에 그런 시설이 전혀 갖춰지지 않아 유축을 제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거든요. 화장실에서 유축하는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학교에 교직원 분들과 학생들 중 임산부들이 분명히 있을텐데, 이런 작은 배려가 부족하다는 것이 아쉬웠어요.

회로: 직접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현재 시스템의 문제는 무엇이고 어떤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

이은: 지금은 학업을 아예 포기하거나, 운이 좋아 교수님과 양가 부모님을 잘 만나거나, 혹은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는 등 이렇게 개인의 책임으로만 육아를 지속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것에 의지하는 시스템은 문제가 많다고 봅니다. 결혼하고 아이를 갖느라 뒤처지는 것에 대한 책임은 자기 몫이지만 그렇다고 커리어를 포기하는 게 당연한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저는 일단 대학원생을 공부를 업으로 하는 노동자로 인정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현재는 교수의 재량과 재원에 의존적이어서 연구실마다 처우가 다를 수밖에 없는데 정부나 학교 차원에서 어느 정도 지원해줄 수 있으면 그런 편차가 어느정도 줄어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또한 지금은 학생 신분이라서 교내 탁아시설 설치나 육아 휴직 등을 요구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지만 노동자 신분이 된다면 남녀 구분 없이 최소한의 것들을 보장받거나 요구할 수 있을 테고 또 그 과정에서 인식의 개선과 제도적 보안도 따라오지 않을까 생각해요.

회로: 대선을 앞두고 여러 후보들이 맞벌이 가정이나 일하는 엄마에 대한 지원 정책을 이야기했어요. 그들이 정말 필요한 것을 이야기했나요?

이은: 저도 이번 일을 계기로 보육 정책을 자세히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후보들 모두 이런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다는 것만 보아도 사회가 많이 발전했다고 생각해요. 다만 여성만을 위한 유연 근무제 등의 접근 방식은 기업의 생산성을 그다지 고려하지 않은 터라 오히려 기업에서는 여성을 뽑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갈 우려가 있어요. 육아 휴직 등 여러 정책을 운용하기 위해 자금을 어떻게 모으고 기업에 어떠한 방식으로 지원할 건지 기업과 충분히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아요. 특히 연구하는 입장에서, 그 논의 대상에 연구기관도 포함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회로: 인구가 많아져야 국가가 살 수 있다는 가정 하에, 정부가 나서서 출산을 권장하는 정책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어요. 그럼에도 정부 차원에서 운영하는 어린이집 등의 큰 규모의 정부 지원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은님 의견은 어떠신지요.

이은: 사실 엄마들이 정말 바라는 것은, 국가 차원에서 제공하는 저렴한 육아 서비스 자체가 아니라 엄마로서도 잘 살 수 있는 지지 체제인 것 같아요. 물론 여기에는 국공립 어린이집과 같은 다양한 서비스도 포함되겠지만 더 큰 의미에서 엄마와 아빠 모두 아이를 키우는 것에 자긍심과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한다고 생각해요. 엄청난 사회적 성취를 이루지는 못할지라도, 워킹맘이건 전업맘이건 자신이 결정한 삶의 형태를 지지받고 자긍심있게 살 수 있도록 국가가 함께 고민해 줬으면 좋겠어요. 아이를 낳기만 하고, 기관에서 다 키워줘서 받기만하는 그런 서비스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요. 엄마로서, 부모로서 사는 삶이 힘든 만큼 기쁨도 크거든요. 어느 면에서는 분명히 누리던 자유와 여유를 포기하고 한 생명에게 밀알이 되는 아름다움이 있기도 하고요. ‘맘충’이라는 단어만 보아도 지금은 사회적으로 엄마들을 비하하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정부가 어떤 모습의 엄마, 부모이건 존경하고 지지받는 기본 분위기와 환경을 마련해 주셨으면 해요.

 

연구자로서의 삶

회로: 지금까지는 결혼과 출산, 육아와 관련해 이은님 삶의 한 단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는데요. 대학원생으로서의 생활도 궁금합니다. 대학원에서는 어떤 연구를 하시나요?

이은: 저는 의견 동역학, 즉 사람들 사이의 연결을 네트워크로 생각하고 그 노드 사이에서 의견들이 어떻게 전파되는지를 복잡계의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어요. 특히 관심있는 부분은 의견이 전파되는 과정에서 부나 지위의 불평등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내용이에요. 이론적으로 모델을 세워 공부하고 있습니다.

회로: 부나 지위의 불평등이 개입된 네트워크 구조에 대해 연구를 진행하면서 얻은 재미난 결과가 있을까요?

이은: 초기에는 네트워크상에서 연결된 정도가 부와 같은 노드의 특성과 상관관계를 가질 때, 의견 전달에 어떤 영향이 생기는지 주로 공부했어요. 관련된 두가지 연구에서 모두, 노드의 연결성과 특성이 양의 상관관계를 가질 때, 영향력이 작은 노드의 의견이 전체 사회로 잘 전달이 되지 않고 시스템이 통일된 의견 상태에 도달하지 못함을 확인했습니다. 쉽게 풀어서 이야기하면, 부자인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영향력도 크면 가난하고 힘이 약한 사람들의 의견이 전체 사회에 퍼지는 것에 한계가 생기고 전체 사회의 의견이 분열된다는 거에요. 한편, 영향력이 없더라도 서로 잘 연결되어 있으면 의견 전파가 전체 시스템으로 잘 전달된다는 것을 볼 수 있었어요. 개인적으로는 제 연구를 통해서 연대의 중요성을 볼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최근에는 소수자와 다수자 사이에 존재하는 네트워크 구조 아래서 사람들의 인식이 어떻게 편향될 수 있는지에 대해 사회학 공부하시는 분들과 함께 연구하고 있어요.

회로: 연구 얘기를 하며 눈빛이 반짝거리는 걸 보고, 저도 설렜습니다. 모델과 실제 현상을 연결하는 데이터들이 좀 더 있다면 한국 사회를 새롭게 바라보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관점을 제시할 수 있을 듯 한데요. 약간 다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이공계에서 여학생들은 소수자라고 할 수 있잖아요. 이공계 내의 여성 문제와 연결지어 생각해 봐도 이은님의 연구를 통해 의미 있는 논점들을 도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봤습니다 (웃음).

학부 때에는 정보통신 분야를 전공했는데 어떻게 에너지과학과로 진학하고 통계물리 기반의 복잡계 네트워크 쪽의 공부를 하게 되신 건가요?

이은: 학부 때의 학교랑 학과는 별 고민 없이 성적에 맞춰서 정했던 것 같아요. 대학원 진학을 염두에 두고 학부 3학년 때부터는 정보통신의 기술들을 연구하는 연구실에 들어가서 어떻게 하면 데이터를 빨리 많이 주고받을 수 있는지, 통신을 빨리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선배들의 연구를 도왔습니다. 그런데 연구를 하다 보니 ‘이게 정말 사람들을 좋게 하는 연구인가’에 대한 회의가 들었어요. 한창 휴대폰 관련 연구를 하고 있던 때 신문을 보다가 휴대폰이 너무 빨리 바뀌면서 전자 폐기물로 인해 제3세계 아이들이 고통받고 있으며 폐기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질병이 발생하는 상황에 대한 기사들을 접했어요. 자원이나 에너지의 불평등에 대해서 찾아보면서 에너지 정책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에너지 뿐 아니라 전반적인 기술과 자원의 불평등에 대해서요. 시작은 그런 거였어요.

당시에는 에너지 불평등에 대한 이슈는 정책에서만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성균관대학교 에너지과학과에 관련 정책을 연구하는 교수님이 계셨기 때문에 대학원을 이쪽으로 오게 됐어요. 그런데 정책 쪽으로 연구하시던 교수님이 학교를 옮기셔서 어쩔 수 없이 다른 세부 전공으로 눈을 돌릴 수 밖에 없었어요. 어떻게 하면 사회와 사람과 기술이 주고받는 영향력에 대한 관심을 지속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석사 지도교수님과 박사 지도교수님을 만나게 되었네요. 네트워크 이론, 복잡계 이론 쪽으로 세부 전공을 정하게 된 것은 제가 선택한 것이라기보단 타이밍과 상황의 문제였어요.

회로: 우연적이지만, 운명적인 만남이었네요!

이은: 당시에는 불만스러웠죠. ‘정책 연구를 해보려고 왔는데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인가’ 이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하지만 인생에 완전히 나쁜 것, 좋은 것은 없다는 것을 박사과정을 통해서 깨닫게 된 것 같아요. 이론적인 관점, 이학적인 관점에서 에너지 불평등을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분야이고 복잡계를 알면 알수록 처음 연구하고 싶었던 것과 관련성이 커서 많은 매력을 느꼈어요. 지금 하는 연구를 계속하다 보면 정책을 세울 때 근거로 쓰일 수 있는 연구나 정책 그 자체와 접점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회로: 복잡계 분야에서는 여성 연구자들이 활발하게 연구를 하는 편인가요?

이은: 석사 때 화학 분과의 학회에 참석했는데 그쪽과 비교하면 통계물리를 기반으로 하는 복잡계 학회에는 여성과학자들이 많지는 않아요. 사회학계에는 젠더 불평등에 대한 인식이 있기 때문인지 사회학에 뿌리를 두고 있는 학회에서는 여성 발언자라든가 초청 연사의 비율을 정해놓기도 하고, 기조연설에서 성비가 어떻게 되는지 오프닝 때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어느 학문에 기반을 두고 있는지에 따라 다른데 사회학을 기반으로 둔 곳에서는 확실히 인식도 다르고 여성의 학계 참여율도 다른 것 같아요.

회로: 최근 물리학회에서 여성 세션을 따로 마련하시는 등 학회 차원에서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래도 아직은 여성과학자나 여성과학도들이 수적으로 많지는 않은 편이죠.

이은: 아직은 담론도 좀 제한되어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제가 물리학회 여성세션에 한 번 참석해본 거라 쉽게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어떻게 하면 여성이 커리어에 집중하고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이야기하더라고요. 아무래도 시작하는 단계이고 학계에 오래 남아있는 여성 연구자들이 많지 않기 때문에 주제의 다양성이 제한되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회로: 혹시 롤모델로 삼고 있는 연구자가 있나요?

이은: 특별히 롤모델은 없어요. 여성으로서 연구하는 것에 대해서 같이 고민을 논의할 수 있는 친구가 연구실에도 한 명 있고 독일에도 한 명 있긴 한데.. 그 친구들은 육아하면서 연구를 하는 경우는 아직 아니여서요. 그 친구들은 함께 이런 상황들에 대해 고민하는 동지입니다.

회로: 저는 아직 결혼과 육아를 경험하진 않았지만 인생 전체를 놓고 볼 때 이 부분은 미리 고민할수록 좋다는 생각이 들어요. 연구도 중요하지만 연구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니까요. 자기가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무에게나 물어볼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고 물어볼 수 있는 사람도 적다 보니까 답답함을 많이 느끼죠. 결혼, 출산, 육아와 관련한 고민들은 현재진행형일 수밖에 없지만 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을 알고 좀 더 현실적인 부분들을 논의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진다면 좋겠어요.

대학원 과정에서 어떤 것을 얻었다는 생각이 드시나요.

이은: 처음 대학원에 들어올 때는 전문지식을 쌓고 학위를 받는 것이 목표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대학원에서 결혼, 출산, 육아와 같은 인생의 발달과업을 지나오면서 인생에 필요한 유연성이나 인생에서 공부해야 하는 것이 무엇일까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어요. 추상적인 이야기인 것 같지만 그게 진짜인 것 같아요. 박사과정 동안 사회에 대해서도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고, 저와 비슷한 입장에서 출산, 육아의 과정을 함께 하는 여성들의 어려움에 공감할 수 있는 경험이 쌓였다는 것도 제가 얻은 점이라고 생각해요. 졸업할 때쯤 되니까 전문지식보다는 그런 것들이 귀하게 느껴지네요.

회로: 졸업 후에는 계속 복잡계 이론 쪽으로 공부하실 예정인가요? 졸업 후의 진로에 대해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은: 계속 공부하고 연구하고 싶어요. 복잡계와 사회학 쪽에서 불균형한 자원의 분배와 구조적 연관성에 대해 알아보고, 그게 어떻게 사람들의 인지와 행동에 영향을 주는지 연구하고 싶어요. 주변의 친한 사람들에게는 가끔 농담처럼 나중에 사립 연구소를 차릴 거라고 이야기하곤 해요. 육아와 가정, 연구가 양립할 수 있는 대안적인 연구 체제를 찾고 싶다고 (웃음) 먼저 기존의 연구 체제에서 좀 더 경험을 쌓은 뒤 연륜이 쌓이면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대안적인 연구 체제에 대한 실험을 해보면 좋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회로: 결혼이나 육아에 대해 고민하는 동료, 후배들이 많을 거에요. 이공계 여학생 후배님들께 특별히 조언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요?

이은: 저도 정답을 아는 사람이 아니지만 미리 경험한 사람으로서 먼저 이야기하고 싶은 건 모든 결정에는 포기해야 하는 것이 생긴다는 거예요. 이건 비단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커리어보다 가정을 우선시하는 삶을 선택하면 커리어에서는 포기할 부분이 생길 수 밖에 없을 거에요. 저는 생명을 만들어낼 수 있는 여성의 능력이 위대하다고 생각하고, 매일 아침 아이를 보면서 가장 큰 성취감과 생명의 신비를 느껴요. 밤마다 미안함과 자괴감을 느끼는 건 문제가 있지만 이것 또한 제가 선택한 일에 대해 지금의 상황에서는 따라오는 일이니까요. 여자 후배님들이 살아갈 사회는 자신이 선택한 나름의 삶의 방식이 지지받을 수 있는 곳이면 좋겠어요. 각자 마주하는 상황이 어려울 때 주변에서 같이 이야기할 사람을 찾고 그런 목소리를 쌓아나간다면 다음 세대는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요? 포기할 것은 분명히 있지만, 몰랐던 세상이 열리는 것이니만큼 선택에 대해 너무 겁먹지 않았으면 좋겠고요.

이공계 여자 대학원생으로서 인터뷰 기회를 얻을 수 있어서 감사해요. 삶의 과업이 공부냐 아이냐 같은 극단적인 결정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사회 전반적으로 육아와 출산, 가정생활을 돌보는 것이 단순 경력의 단절이 아니라 인생에서의 강조점이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동안 균형을 맞춰가는 과정의 일부로서 이해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생산성이라는 관점에서만 삶을 보는 건 너무 자본주의적 관점인 것 같아요. 이런 이해에 기반을 두면 가정에서 자신의 일로, 자신의 일에서 가정으로 무게중심을 옮겨가며 균형을 맞추는 삶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자리를 빌어, 그동안 육아와 학업을 병행할 수 있도록 저를 이해해주시고 함께 해주신 가족들과 교수님, 동료 연구자 분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회로: 페미니즘을 넓게 생각한다면 다양한 개인이 존중받는 사회일 거에요. 수많은 여학생들이 고민하지만 잘 알지 못하고 여기에 대해 발화하는 분들도 많지 않아요. 오늘 말씀하신 내용을 다른 분들이 많이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주변에서 종종 듣지만 그 입장이 되어보지 않아 잘 몰랐던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고, 사회에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비단 이공계뿐만 아니라 어떤 학문에 정진하고자 하는 많은 여학생들이 자신의 커리어와 결혼, 임신, 육아를 어떻게 함께 안고 갈 수 있을지 고민한다. 학계에 남아있는 여성은 수적으로 극히 적고, 설사 있다 하더라도 미혼이거나 아이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생 선배’가 없는 상황에서 이렇다 할 해답을 찾지 못한 여학생들은 길을 잃고 헤매다 사라진다. 연구자인 동시에,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로 존재하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려울까? 연구자인 동시에, 누군가의 남편이자 아빠인 경우는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말이다.

육아하는 대학원생, 연구하는 엄마인 이은님의 이야기가, 학자의 삶과 여성의 삶 사이에서 고민하는 여학생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여성으로서, 대학원생으로서 , 그 이야기를 듣고 연대하는 우리들의 존재가 이은님의 앞길에도 작은 응원이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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