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entists∩Feminists 페미회로 인터뷰 프로젝트 V: IT 페미의 시조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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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전문가 현지영(가명) 인터뷰

지난 3월 12일 대전에서, 국내 5개 지역거점 과학기술중심대학(DGIST, GIST, KAIST, POSTECH, UNIST)의 페미니스트 연합모임 <페미회로(영문명 FemiCircuit)>가 공식 출범했다.
(페미회로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femicircuit)

페미회로는 이공계 내 젠더 불평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지속할 수 있는 페미니즘을 실천하려는 모임이다. 과학기술계에 몸담고 있는 젊은 여성들과 그들의 문제에 공감하는 남성들이 함께 목소리를 내며 현실을 바꿔 나가려 한다. 그런 실천의 한편으로, ‘테크노페미니즘’으로 호명되고 있는 새로운 페미니즘 담론을 만들어 간다는 계획이다.

페미회로에서는 2017년 연중 프로젝트로 우리 주변의 페미니스트들을 만나기로 했다. 이름을 얻었거나 얻지 않았거나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일하고 고민하며 실천하는 이공계 여성 종사자들을 통해, 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우리의 미래를 살펴보자는 것.

이번 인터뷰에서는 IT 업계에서 프리랜서로 일하는 현지영(가명) 씨를 만났다. 현지영 씨는 인터넷이 처음 보급될 때부터 컴퓨터 분야 일을 시작한 여성이다. 여성 롤모델도, 같은 지위의 동료들도 별로 없었던 곳에서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현역으로 일한다. 현지영 씨를 통해 수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소수자로서 해당 분야에서 살아남으면서 겪어온 일들과 가정을 가진 여성으로서의 고충들을 알아본다. 페미회로 인터뷰어는 김수연으로 회로라고 표기했다. 인터뷰이 현지영은 지영으로 표기했다.

 

회로: 안녕하세요?

지영: 안녕하세요

회로: 본인의 전공, 학위, 현재 하는 일을 간단하게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지영: 제가 하고있는 일은 IT 쪽 이고, 전산과를 전공했습니다. 요새는 컴퓨터 공학이라고 하지만 제가 다닐 적에는 대학 대학원 다 전산과였어요. 석사 졸업을 했습니다.

회로: 전산과로 대학, 대학원을 선택하셨다고 하셨는데 본인의 젠더가 전산과라는 학과 선택에 영향을 미치셨는지.

지영: 아버지의 영향으로 인문계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여성의 발언권이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였기 때문에 인문계에서 내가 아무리 맞는 말을 한다고 해도 인정받을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있었고,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이라고 말하는 건 내 젠더와 상관없이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공계를 선택했습니다. 물리를 하고 싶었는데 아버지의 강권으로 전산과에 들어갔어요. 이공대라서 ‘남자애들이 엄청 많을 거다’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는 여자애들이 좀 있었고, 여자애들끼리 모여서 다들 ‘나 혼자만 여자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여럿이더라’고 얘기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회로: 모였던 여학생 인원이 어느 정도였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지영: 잠깐만요 졸업사진을 봐야 알겠는데, 대학은 20명. 그때 확 늘었던 걸로 기억해요. 하지만 대학원을 갔더니 8명 정도로 좀 더 줄었죠.

회로: 대학, 대학원 때 여학우 중 지영 씨만 업계에 남아있나요?

지영: 그렇지는 않을 거예요. 학교에 남아있는 친구가 한 명 있는데, 제주대학교 교수로 결혼을 늦게 했어요. 후배들도 이 업종에 남아있는 친구들이 많지는 않은 거 같고요. 다들 애들 키우고, 학교에서 컴퓨터 선생님 하는 친구도 있죠. 직장이 있는 친구들이 많지 않아요.

회로: 저는 워낙에 세대도 다르고 과도 생명과학과라 여학생이 매우 많아서 상상이 잘 안 되는데요. 그러면 그렇게 여학생이 적은 상황에서 대학생활이나 대학원생활이 어떠셨는지요.

지영: 저는 남자애들하고 많이 다녔었어요. 오히려 여자애들보다 남자애들하고 편하게 지냈고요. 아마도 장녀라서 장남 노릇을 해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약간 준남성으로 키워지지 않았나 싶어요. 성향 자체는 여자답다고 평을 들었지만, 가정에 대한 책임감이나 세계관, 사고 자체는 남성적인 편이었던 것 같아요.

회로: 저는 대학원에 들어가서 남성사회에서의 위계질서를 느낀 케이스였는데 지영씨는 대학원의 위계질서에 거부감이 없으셨나요?

지영: 저는 아주 위계적인 가정에서 자랐고 시골 출신이었기에 위계질서에는 굉장히 익숙했어요. 그 시대는 대부분 위계가 삶이었죠. 평등한 관계라는 게 없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런 분위기에 대해서 별 감각이 없었고, 또, 여자가 상대적으로 적다 보니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것 그게 배제이기도 했지만 표면적으로는 배려 받았었기 때문에 학교 다니는 동안엔 많은 문제를 느끼지는 못했죠.

회로: 저도 곧 취직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취직시장의 여성 배제 현상이 걱정됩니다. 사실 그 옛날이면 더 심하지 않았을까 하는 데, 당시 취직할 때 힘들었던 부분은 어떤 게 있을까요?

지영: 대학원을 졸업하면서 취직이 예정된 연구소가 있었는데 졸업하고 나니 연구소가 아니라 같은 계열 IT 회사로 가야 한다고 얘기가 나왔어요. ‘그럴 거면 가지 않겠다’고 하고, 첫 연구소에 시험을 보고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우리 때만 하더라도 취직이 어려운 시대가 아니었어요. 여자라고 하더라도 이공계 전산과가 취직이 잘 되는 시기였죠. 다만 그렇게 IT 계열사로 가라고 요구 받은 경험이 있었고, 다른 연구소에 시험을 쳐서 들어갔을 때에도, 결혼하고 임신한 여자들은 일반 팀원급 밖에 없었어요. 팀장직급에 여자가 가뭄에 콩 나듯 한두 명 있었는데 다 시집갈 시기가 훨씬 지난 분들이었고 결혼한 팀장이 없었어요. 3, 4년 근무하다 보니까 여성 팀장 한 분이 결혼하셔서 첫 번째 결혼한 팀장이 됐죠. 전체적으로 취직이 어렵진 않았지만, 여성들은 승진이 어려웠던 시기였습니다.

회로: 결혼과 직장을 양립할 수 없었던 거군요.

지영: 여자들을 싼 맛에 쓰고 결혼하면 내쫓는 분위기였죠.

회로: 그 이후 퇴사하고 개인사업을 시작하셨는데 퇴사 과정은 어땠나요.

지영: 퇴사 과정이 재밌어요. 새로 옮긴 회사에서는 꽤 인정받고 자리를 잡았었는데, 첫해에는 11시, 12시에 들어갔어요. 이듬해에는 한시 두시에 들어갔습니다. 2년 뒤에는 서너 시에 집에 들어가게 됐어요. 그러고 아침에 좀 지각을 했지만, 어쨌든 그랬더니 남편이라는 자가 “네가 처음에 들어가서 11시 12시에 들어올 때는 ‘지금 회사가 생긴 지 얼마 안 돼서, 일이 많아서 그렇다. 앞으로 지날수록 더 나아질 거다’라고 얘기를 했는데 퇴근 시간이 점점 더 늦어지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하더라고요. “그 회사를 계속 다녀야 되겠냐”고 해서 생각해보니까 해마다 퇴근 시간이 늦어지고 있었다는걸 깨달았어요. ‘아 이거 문제가 있구나.’라고 생각하고 그만뒀는데, 시간이 지나고 재차 생각 해보니 당시 남편은 뭐 새벽 서너 시는 기본이고 이틀에 한 번 사흘에 한 번 집에 들어오는 상황이었거든요. 그러면서 본인은 이틀에 한 번, 사흘에 한 번 집에 들어오면서 나한테 새벽에 들어온다고 회사를 그만두라고 했다는 걸 지금 생각해보면 어이없었죠. 나중에 그 얘기를 하긴 했습니다만, 당시에는 저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을 하고, 물론 힘들기도 했지만, 그만두게 되었죠. 상사가 바뀌었는데 마초적인데다 여성을 대상화하는 차별주의자였거든요. 제가 당시 여성 직원 가운데 제일 연장자였는데 여직원회를 만들라고 하더라고요. 괜찮은 생각이다 싶어 나서서 만들었더니 그 전엔 매년 총무과에서 하던 바자회를 여직원회에서 하라는 거예요.

회로: 여자의 일은 그런 것이라는 건가요?

지영: 그렇죠. ‘이 조직은 내가 연구를 잘하고 뛰어난 성과를 내는 것보다 잡일이나 하길 바라는구나. 내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구나. 여기서는 내가 일할 수 없겠다.’고 판단하고 퇴사하게 되었습니다.

 

회로: 프리랜서로 작업하면서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인가요?

지영: 여성이 비즈니스를 한다는 게 쉽지가 않습니다. 조직이 없고, 저 같은 경우에는 1인 기업인데 이렇게 영업을 하거나 협상을 하기가 굉장히 어려워요. 사실 남자들이 영업해도 배경이나 조직의 규모에 따라서 대우가 다른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여자로서 영업 뛰기도 쉽지 않고 거래가 어렵습니다. 그래도 제가 이 분야에서 나름 초기에 시작했고, 이름을 아는 사람들이 있어서 지금까지는 어떻게 버텨내고 있는데, ‘내가 남보다 훨씬 더 잘하고 더 적게 받으니까 아직까지 살아있다’고 생각합니다.

회로: 해외로도 회의를 자주 가시는데 해외는 여성에 대한 대우가 다를 거 같아요. 어떤가요?

지영: 그렇죠. 아주 다르지는 않아도 매너는 확실히 좀 더 낫고요. 다만 백인이 아니어서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일례로 회의에서 사회자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걸 지적했을 때 그분이 ‘네가 잘못 알고 있는 거다’라고 우기더라고요. 그런데 제 옆의 처음 온 아르헨티나 백인 여성이 같은 얘기를 하자, ‘아, 그러냐’며 태도를 바꿨습니다. 프로젝트에 처음부터 참여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온 백인 여성의 말이 더 잘 받아들여진 거죠.

그렇지만 확실히 한국인과 있으면 여자 취급을 받는데 외국인들 사이에 있으면 그땐 여성 이전에 한국의 대표가 됩니다. 훨씬 더 존중 받고 내 발언권이 인정받는 느낌을 받아요. 이건 일본 여성 대표도 비슷하게 느끼는 것 같습니다.

회로: 그렇지만 유색인종으로의 차별은 있군요.

지영: 물론 사람 따라 차이가 있긴 하죠. 어느 아시안 국가에서 남성 발표자가 “여성들이 이 분야에 일자리를 구하고 싶어 하지 않아 한다”라고 해서 충격을 받았었어요. 제 발표 차례에 시간을 할애해서 여자가 이 분야에 일자리를 구하지 않는 게 꼭 원하지 않아서는 아니다, 나는 보통 여성 문제를 일터에서 말하지 않는데 그게 내가 할 말이 없어서는 아니다 하며 지적했더니 나중에 와서 사과하더라고요.

그리고 뭐 좀 오래된 얘기지만 여자라는 것을 분명한 이유로 내세우며 배제를 하셨던 분도 계셨어요. 저를 인정은 하시지만, 일찍 들어가라고 먼저 보내고 자신이 찍은 남자는 사후에 회식을 같이 가며 일을 가르치는 그런 사람이셨어요. 사람을 키우는 거죠. 그분과 같이 회식을 하던 때였는데, 많은 남자분이 이렇게 하더라구요. 나를 앉혀 놓고 “지영씨는 정말 똑똑하고 남자못지 않은 여자다.” (이게 칭찬이라는 거죠. 원래 여자는 남자보다 못한 게 정상이라는 가정하에서만 나올 수 있는 말인데) “여자가 이렇게 똑똑해서 요새는 여성 상위다”라는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여자들이 원래 남자들보다 똑똑하다. 그래서 여자를 가르치면 남자들이 기를 못 편다. 그래서 여자를 가르치면 안 된다.”고 했어요. 저는 정말 그 순간 찬물을 끼얹는다고 하죠. 소름이 쫙 끼쳤어요. 저 사람이 진심으로 여성에게서 동등한 교육 기회를 박탈하길 원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어느 날은 또 식사를 하면서 저를 칭찬하고서는 요새는 여성 상위라는 거에요. 그 순간 그 식당에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 중에 여자는 나 혼자였어요. 꽤 큰 식당에 앉아있는 여자는 나 혼자, 그리고 그 식당에 서서 돌아다니며 음식 나르는 사람들은 모두 여자였어요. 그때 든 생각이 내가 일어서서 서빙을 하고 있고 거기 다 남자만 앉아있었더라면 그분이 한번 쫙 둘러보시고 “아 이제야 남녀가 좀 평등하네”하고 만족해 하시겠구나 싶었어요.

엊그제 갔던 회의에서도 여자가 몇 명 있었는데 대부분 보조 연구원, 대리였어요. 여자들은 다 직급이 낮고 정규 멤버는 저 하나였죠. 그런 경우가 참 많습니다. 요새는 내가 나이까지 많아서 더 어디 못 가요. 나이가 들면서 더 일에서 배제된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젊은 남자들을 선호해요.

회로: 나이든 남성도 비슷한 배제를 받나요?

지영: 아예 그 자리에 끼지를 못하죠. 거기 있는 나이든 남성들은 걸맞은 상위 지위를 가지고 있는 거죠. 대학교수, 부장, 팀장.

회로: 좀 착잡하시겠어요. 일하시는 것을 보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뛰어나다는 느낌을 받는데요.

지영: 더 뛰어나지 않으면 여성들은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어요. 물론 아주 고위직급 여성들 중 능력만으로 가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친인척일 경우 가장 안정적으로 있을 수 있고 최소한은 빽이 있는 경우들이 있고요.

회로: 사실 저도 대학원에 다니면서 주변 동기들을 보면서 제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고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데요. 잘하고 열심히 하는 동기들 많은데 그 와중에 정말 게으르게 하는 후배가 있어요. 그 후배는 실험실에서 게임 영상 보고 실적이 없어서 결국 교수님께서 석*박 통합에서 석사과정으로 바꾸게 하셨는데, 저는 제가 박사를 할 능력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석사 과정으로 바꿨거든요. ‘왜 나는 그렇게 뻔뻔하게 박사까지 못하고 랩에 폐를 끼친다는 생각을 하나’ 싶어요.

지영: 여성들이 항상 ‘이 자리가 내 자리가 아니다. 이 자리에 있기 위해서 뭔가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죠. 태어날 때부터 그런 취급을 받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태어났을 때부터 남자들은 보물 취급을 받으면서 그 자리를 당연하게 대우를 해주고 모든 권리를 당연하게 받지만, 여성들은 늘 ‘네가 여기서 자리를 차지하고 살아있어도 될 근거를 보여라’라고 요구 받게 되죠. 저도 늘 자신이 살아있을 만한 가치 있는 존재임을 증명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있습니다.

 

회로: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지영씨는 일과 육아를 어떻게 병행하셨나요?

지영: 못했으니까 회사를 나왔어야 했고 가정으로 일을 끌어들이면서 프리랜서 비슷하게 개인사업을 하게 된 거죠. 여성이 비즈니스 하는 것이 힘들어서 1인 기업을 하는 거고요. ‘그나마 아직까지 명맥을 유지하는 게 용하다’라고는 생각하지만 내가 남자였으면 지금 이렇게 살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해요. 시부모님이 도와주시기는 했지만 나도 내 커리어를 희생했다고 생각해요. 가사 부분에 있어서도 남편과 비율이 굉장히 다르죠. 최근에는 아무것도 안 하려고 하지만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서 가사노동의 양 자체가 줄어든 상태가 되어버렸어요.

회로: 아이들이 어릴 땐 힘드셨을 거 같은데요.

지영: 육아를 시부모님이 도와주셨는데, 그래도 집에서 좀 힘들었어요. 한동안 같은 방향으로 남편과 같이 출퇴근을 했었어요. 하루는 저녁에 들어왔더니 아기가 아파서 약을 먹여야 하는데 어디 있는지 모르겠는 거예요. 근데 남편이 “엄마가 돼서 약이 어딨는지도 모르느냐”고 하는 거예요. 같이 출근했다가 같이 들어왔는데, 본인도 모르면서!

회로: 엄청난 책임회피네요. 전혀 상황 개선에 도움도 안 되는데, 그게 당연한 사회 규범처럼, 본인은 모르는 게 당연하고

지영: 남은 알아야 하는 게 당연하고, 그런 이중규범이 당연하다고 굳게 믿던 시대였죠. 그런 일이 많았어요. 아 남편 흉보는 인터뷰가 된 것 같은데(웃음)

회로: 원래 그런 게 맛이지 않나요? (웃음)

지영: 정말 어이없던 일 중의 하나가 결혼 5년 만에 처음으로 여행계획을 세웠어요. 둘이 제주도를 간다고 비행기 표를 준비했는데 남편이 시누한테 갔다 오더니 한다는 소리가 “너는 애들을 시부모님께 맡기고 놀러 가는 게 그렇게 좋으냐”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가네, 안가네 난리를 치다 가긴 갔는데, 그 이후로 저는 뭔가 좀 좋을 만 하면 그 생각이 나면서 싸하게 식어버리는데 이 사람은 좋다고 돌아다니더라고요. 두고두고 나오는 얘기지만 같이 부모에게 애 맡기고 가는 입장에 나한테만 뭐라고 말을 하는 게 어이가 없었습니다.

회로: 본인이 돌보겠다는 것도 아니고! 상상 이상이네요. 아직도 그런 사람들이 많아요.

지영: 처음 분가했을 때는 일 봐주는 분이 계셔서 정말 천국이었어요. 시댁에 드리는 것의 절반 정도 금액을 드려도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대접을 받는데, 시댁에 살 때는 그 금액을 기본으로 드리고도 장 보러 가거나 애들 옷 사면 내가 계산하고, 그러면서도 죄스러운, 키워주셔서 감사 해야하는 입장인 거죠. 그래서 분가 후가 천국이었는데 더 편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남편이었죠.

회로: 거기서 전혀 심적인 부담감이 계속 없었던 거잖아요. 변화를 못 느끼셨을 거 같은데요?

지영: 그런데 더 편해졌다. 자기가 편하다고 얘기하는 부분에 놀랐어요. 부모님 집에서도 대우받고 살았다고 생각을 했는데 이 사람은 어른이 없어지니까, 일요일 교회 갈 필요가 없어지니까 만고에 편해진 거지요. 자기 위가 없어졌으니까요. 상당히 충격이었어요. 그래서 여자가 편해지면 남자도 편해져요. 근데 대부분 남자가 여자가 편해지는 꼴을 못보죠. 자기 편해지는 건 생각을 못 하고요.

회로: 그러면 상주하면서 일하시는 분이 없어진 이후에는 힘드셨을 거 같은데

지영: 맞아요. 그때 아침 했던걸 생각하면…(한숨). 막내가 중학교를 안 다니면서 더 많은 애정과 관심이 필요했는데 저는 그걸 다 해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서로 힘들었는데, 정작 아무 생각 없이 “싫으면 관둬”라고 했던 사람(남편)이 제일 편히 있었던 거예요.

회로: 정말 일말의 의무감도 안보이네요. 이러면 너무 성토대회가 되나요? (웃음)

지영: 인터뷰가 결국은 그거 아니겠습니까. 미리 상황(현실)을 알아보고 대응책을 찾아내는 것.

회로: 인터뷰를 말씀드렸을 때 익명을 요구하시기도 하셨고, 페미니즘이 아직까지 낙인으로 작용하는 데다 지영씨 세대에서는 생소할 수 있는 주제인데 어떻게 인터뷰에 어떻게 응하게 되셨나요?

지영: 여성 이슈들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가정에서 겪은 것이기 때문에 페미니즘에 대한 의심은 한치도 없습니다. 한편 그런 상황에서 성장하면서 ‘내가 생각하는 것을 권력자들에게 드러내면 피해를 보고 배제를 당한다’는 게 내재화되어있어서 발언을 극히 조심해요. 생존 전략이죠. 현재도 국가 지원을 받아서 일하고 있고, 사업을 하려면 결국 남자들을 상대해야 하니까 지향성이 노출되면 일을 받기가 어려울 것 같다는 두려움이 있어요. 처음 선임을 달았을 때 상사가 남자직원들만 따로 모아서 신고식이랍시고 도우미를 부르는 술집에 데리고 갔던 적이 있어요. 저는 그게 여성을 다루는 방법을 가르친 것으로 생각해요. 지금도 아주 특별하게 배제되는 경험을 하고 있어요. 이유가 분명하지 않은 싸한 경험들을 하고 있습니다.

 

회로: 페미니즘에 어떻게 관심을 가지게 되셨나요?

지영: 아버지가 사흘에 한 번씩 한밤중에 들어와서 어머니에게 소리를 지르고, 폭력을 행사하고, 자다가 깨면 다시 자는 척하고 부들부들 떨며 살아왔으니까요. 어렸을 때 제가 ‘아버지 싫다’고 했을 때 아버지가 ‘딸은 아버지를 좋아해야 하는데 네가 이상한 애다’라고 한 기억이 있어요. “고모는 때려서 가르치면 고맙다고 하는데, 너랑 네 엄마는 고마운 줄을 모른다.” 이런 얘기를 듣고 컸거든요. 근데 그 어릴 때 저는 그걸 굉장히 충격으로 받아들였어요. 충격이라는 것은 나는 그걸 전혀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고 아버지가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런 맥락에서 저는 계속 페미니스트였습니다.

회로: 그러면 본인을 페미니스트라고 정체화하시게 된 계기는

지영: 대학 때는 반독재 민주화 투쟁이 일반적인 것이었고, 그래서 인간의 권리에 대해서는 늘 생각했어요. 그래도 여성 문제에 대해서 제대로 된 토론을 처음 접한 것은 첫 회사에 다니던 시절, 하이텔 게시판이었죠. 애를 키우면서 힘들게 회사에 다니던 때니까 여러가지 공감하면서 논의를 할 수 있었죠.

회로: 그러면 당시에도 인터넷을 통한 논의가 활발했던 거네요?

지영: 남편이 통신용 에뮬레이터를 만들었었고 모뎀을 이용한 흑백의 통신 텍스트 게시판이 생긴 게 대학 졸업 이후였어요. 회사 다닐 때 하이텔 게시판 활동을 했고, 95년에 당시 처음 나온 웹 브라우저 모질라를 누가 받았어요. 근데 에러가 나고 안된다고 그러더라고요. 제가 보고 어떤 에러인지 확인하고 고쳐서 구동하게 했죠. 그래서 모두 인터넷을 쓰게 됐어요. 단순 에러였지만 자랑스러운 기억이네요. 당시 연구소 서버를 이용해서 KETEL(PC통신 서비스인 하이텔의 전신. 1989년 서비스 시작)의 KIDS 게시판(국내 최초의 인터넷 기반 전자 게시판. 1991년 개설)이 생겼고요

회로: <히든 피겨스(1960년대 NASA의 최초 우주인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흑인 여성 3인에 관한 미국 영화. 2016)> 주인공 같네요.

지영: 아니요 읽어보면 알 수 있는 단순한 에러였어요. 전화를 걸어서 그 웹을 구동시키고, 인터넷이 있기는 하지만 집집마다 있진 않고. 회사에 그런 인터넷 서버가 있으면 거기 전화를 받아서 모뎀을 통해서 인터넷 브라우저를 구동시키는 그런 때였습니다.

회로: 역사의 산증인이시네요. 사실 본인 분야에서 겪었거나 목격한 성차별적 경험을 충분히 얘기해 주신 것 같지만 추가적인 게 있을까요?

지영: 옛날 회사에 다닐 때 CCTV를 설치하기 시작했어요. 중요한 업무를 한다고 해서 깔게 됐는데 문제는 관리하는 경비 직원이었어요. 그때는 회사에 서무를 봐주는 일반직 여직원이 팀당 1명씩 있었어요. 이 직원들이 화장실을 가는 걸 CCTV로 보고 여자들한테 또 화장실 가냐는 식으로 말을 한다는 거예요. 그걸 일반직 여직원이 나에게 얘길 해 줬어요. 그런데 연구직 여직원에게는 못하고 만만한 일반직 여직원에게만 그랬다는 거죠. 그 얘기를 듣고 팀장에게 전달했어요. 그랬더니 “그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라는 답변이 돌아오더라구요. 나한테도 이야기를 안했는데 남자인 팀장에게 그런 태도를 보였을리가 없잖아요. 얘기를 했으니 뭔가 조치가 되겠지 하고 잊고 있었어요. 나중에 그 여직원과 저 둘 다 회사를 그만둔 뒤에 다시 보게 되었을 때 다시 이야기를 듣게 됐습니다. 그 후에도 경비직원은 계속 성희롱을 하고 아무런 조치가 없어서 자기들은 힘들었다고요. 그래도 나에게 얘기를 했으니까 뭔가 조치가 되겠지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거예요. 그 얘기 듣고 너무 미안했어요. 나도 내가 겪지 않으니 몰랐다는 것, 그걸 확인할 생각도 못 했다는 게 미안하죠.

다른 일화도 있어요. 남자직원 하나가 야동을 CD에 담아서 공유한다는 거예요. 회식자리에서 팀장이 그 친구에게 ‘그런 거 돌린다며, 나도 하나 줘라’ 하는 거예요. 나와 그 팀장만 빼고 돌린 거였죠. 그 얘기를 했을 때 회사에서 그런 불법적인 일을 하냐며 내가 버럭했어요.  그 말 듣고는 팀장이 그래도 “아, 내가 실수했네요 우리 그런 거 하지 맙시다.”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게라도 말한 그분은 좀 믿는 편이에요. 남성들은 여성혐오를 공유하며 남성 연대를 확인하고 남자라도 거기 가담하지 않으면 배제를 당해요. 성희롱도 상대와 나와의 권력 격차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요. 한번은 엠티를 갔는데, 최고 책임자가 팀 방마다 돌아다니면서 술 마시고 인사하고 가면서 여직원 방에서 인사로 포옹을 하자는 거에요. 나는 별 생각 없이 했고 별다른 느낌이 없었어요.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팀 회식에서 술을 마시고 노래방에 갔는데 이 책임자가 그 팀의 가장 어린 일반직 여직원을 계속 끌어안았다는 거예요. 그 여직원이 도움을 요청하려고 그 팀에 다른 사람들을 봤는데 다들 고개 돌리고 TV만 봤다는 말을 들었어요. 나한테는 그렇게 하지도 않았고 했더라도 그렇게 심한 수준은 아니었던거죠. 같은 여직원이라도 나는 연구직으로서 조그만 권력이 있었던 거예요.

반대 사례를 들어보면 정부부처 과장과 식사하고 2차를 갔던 기억이 있어요. 노래방에서 블루스를 추다가 너무 끌어당겨서 나와버렸는데, 나중에 그 팀 사람들이 나한테 ‘과장님이 오늘 좀 이상하다.’고 하더라고요. 이게 권력 격차가 크면 그런 상황들을 일으키는데,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자원이 내게 있고 상대가 인지하고 있다면 끝까지 가지 않는다는 거죠. 성희롱으로 잘린 최고책임자의 경우 많은 가해사실들이 있어서 노조에 호소하고 상황이 다 알려졌음에도 대부분의 피해자가 자신을 드러내지 못했어요. 당시 고발했던 분은 남편이 의사라 그 자리가 불안해지는 것에 연연하지 않고 고소할 수 있었다고 해요. 책임자는 자기보다 낮은 여자라고만 생각하고 고발할 수 있는 자원이 있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던 거죠.

그래서 외양 때문에 차별을 받기도 하고, 외양을 가장함으로써 권력이 있는 것처럼 지위를 차지할 수도 있어요. 그게 현실의 더러움이죠. 그래서 차라리 학교가 나아요. 학교에서도 뻔한 권력들이 있는데, 그래도 공부하는 입장이니까요. 여학생들에게도 다른 것들이 아니라 일을 잘할 걸 요구하잖아요. 그게 학교의 장점이에요. 사회는 여성에게 일을 기대할 줄 모르는 인간들이 매우 많습니다. 그래서 난 다른 걸 줄 수 있는 인간이란 걸 보여야 해요. 이게 여성성을 부정하고 열정페이를 하는 꼴이 됩니다. 그런데 남자라면 뒤에 돌아오는 게 있고 키워주는 게 있는데 여성들은 이렇게 해도 그걸 기대하기 힘들어요. 사회 전반의 마음가짐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해요.

회로: 그러면 본인이 학교, 회사에 다닐 때와 현재를 비교한다면? 많이 변했다고 보시나요?

지영: 많이 변했죠. 여성들이 변했죠. 남성들은 좀 더 찌질해 진 것 같아요. 신자유주의 덕을 많이 봤고요. 독자적 수입을 얻게 된 여성들이 많아졌어요. 수입이 항상 우선적으로 확보되어야 하는 가치인데 결코 확보할 수 없는 여성들도 남아있고요.

회로: 앞으로도 그런 경제적인 재원을 여성들이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지영: 여성 연대가 필요하다고 봐요. 여성들 간의 네트워크가 많아져야 하고요. 물론 여성이라고 다 믿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똑같은 사람이기에 문제들이 생길 거예요. 그렇지만 연대를 하고 인간의 좋은 면을 개발하려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겠죠. 얼마 전에 응고지도 트랜스 젠더 관련 발언하면서 넘어졌잖아요? 우리는 모두 특권을 가진 사람이고 자기 특권에 대해 인식하고 계속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회로: 저도 모임에서 한 번 여성만의 자치기구, 여성들끼리 어떤 과제를 수행하고 성공하는 사회적인 장소가 필요하다는 얘기를 했다가, 트랜스 여성이나 바이젠더(남자, 여자 두 가지 젠더를 각각 개별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는 어떻게 해야 하는 가, 여성을 무엇이라 정의하고 비수술 트렌스 젠더, FTM(트랜스 남성)을 어떻게 하는가, 그런 질문들을 받았거든요.

지영: 여성이란게 사회적으로 구성된 존재기 때문에 우리가 그걸 규정할 필요는 없고, 저는 남성이 아니면 모두 여성이라 생각해요. 그 여성들이 매우 다양하죠. 원래 인간이란 건 다양한 거예요.

장애인 상담공부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느낀 것이 장애가 근대화 이전 인간의 본래 모습이었던 게 아닌가. 근대화를 통해 인간이 건장한 백인 시스젠더 헤테로 남성으로 표준화되고 거기서 벗어나는 사람들은 젠더로 차별받거나 장애인이 되는 거죠. 인간이라는 것이 분포가 있잖아요. 표준이 있고 그 바깥의 스펙트럼이 있는 거죠. 사실은 모든 사람이 표준에서 각자의 방향으로 맞지 않는다는것, 각자의 특별함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보편성이 있는 거죠. 사실 저도 많은 장애를 가지고 있는데, 나이에 따라 발생하는 장애도 있고 타고난 성격이나 한계도 있어요. 표준화된 모습에 맞추는 척 하는 한, 동등한 인간 취급을 받고 권리를 누릴 수 있지요. 하지만 사실은 장애와 차이가 있는 것이 본연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을 해요. 남성들도 사실은 보편적 남성이 되어야 한다는 강요를 받잖아요. 표준화된 남성이 거의 없는 것이고, 그것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인정하고 존중해야죠. 그런데 표준이 인간 대우와 연결되는 것을 당연시하고, 표준에 들어맞는 척 경쟁 하고 있으니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런데도 현실은 본인의 선택이 아니라 외양으로 차별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여성으로 패싱되는 사람들이 모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인간으로 대우받는 경험을 하기 위해서요. 게이 커뮤니티나 성적 취향이 특별한 사람들이 규정을 세우면서도 위험한 지점들이 존재하고, 헤테로같이 충분한 권력을 쥔 사람들이 소수자 정체성을 가장하고 커뮤니티에 잠입해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잖아요. 어쨌든 남성으로 패싱되는 사람들이 남성적인 권력에 익숙한 부분이 있기도 하고요. 아무리 남성이 자기는 페미니스트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페미니스트 모임에서 여자들보다 더 많은 발언권을 습관적으로 가져가게 된다는 거예요.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여성으로 패싱되는 사람들이 모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패싱과 연결되는 배제의 경험들이 있고 이걸 경험하지 못한 분들과의 차이도 분명해요. 그렇지 않은 분들은 자신의 다른 소수성을 존중할 수 있는 모임에서 당사자 모임을 하는 게 전술적으로, 단기적으로 필요한 방식이라 생각해요. 여성주의 모임에서 남성이 단 1명이 있어도 (여성이) 발언권을 잃어요. 제가 아는 모임에서도 괜찮은 페미니스트 남성이 있었어요. 남성이 그분 하나인 여성주의 모임에서 그분이 1/n 이상의 훨씬 큰 발언권을 갖습니다. 그걸 내가 정말 싫어했어요. 남성 페미니스트는 여성주의 모임에서는 들어야 해요. 그걸 규칙으로 하지 않는 이상은 힘듭니다. 그리고 여성 페미니스트들도 남성 페미니스트에게 1/n 이상으로 의견을 물어요. 물을 수도 있지만 일단은 남성은 듣기만하거나 참여시키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회로: 여담이지만 ‘프로불편러 훈련소이라는 영상에서 혐오 발언에 대응을 어떻게 하는가를 테스트하는데 그중에 인종차별에 대한 발언 앞에서 백인 남성이 입을 딱 다물어요.

지영: 그렇죠. 그래야 해요. 그래서 워마드에 30대 이상은 못 들어가게 하는 데 매우 아쉽지만 젊은 여성 부트 캠프에 내가 갈 수 없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나도 꼰대고, 이 나이대 사람들이 가진 문제를 저도 갖고 있거든요. 그런 얘기들을 트위터에서는 쉽게 얘기하지만, 실제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는 안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회로: 사실 이번에 고민인 게 저희 교내 페미니즘 모임에서 이번에 신입회원을 받으면서 남성 회원들이 많이 들어오기도 했고 남성분들이 더 잘 나오시더라고요.

지영: 사회적으로 여성이 가진 책임이 남성들보다 더 많아요. 제가 두 주 동안 회의를 다녀왔는데 다녀와서 집안 상태를 보고 ‘아니 청소노동자분이 왔을 텐데 왜 이렇게 지저분할까’ 했거든요. 그 다음 주에 청소 노동자분이 연락하셔서 ‘지난주에는 일이 별로 없다고 안 와도 된다고 하셨는데 이번 주에는 가도 되나요?’라고 하길래 제발 와달라고 했어요. 남편이 생각하는 청결 수준과 내가 생각하는 청결 수준이 달라요. 나는 그에 대해 비용을 지급할 용의가 있지만, 남편은 나 때문에 하는 거예요. 체력도 있고, 살아온 습관도 있고, 나는 남자들은 따로 모아놓고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회로: 저 자신도 대학원에 들어오기 전까지 페미니즘이 남의 운동이라 생각했던 적이 있었으니까요. 사실 첫 모임에서 당황한 부분이 몇몇 있었어요. 어쨌든 그 문제는 제 문제이죠.

지영: 그 문제가 사실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통의 문제인 게, 여자끼리만 모인 페미니즘 모임에서도 내가 얼마나 얘기해도 되는지를 재요. 어쩔 수가 없어요. 남편의 돈으로 먹고살 수 있는 분과 자신이 일해야 먹고 살 수 있는 분 간의 알력이 있을 수 있어요. 섹스도 있죠. 많이 하느냐 적게 하느냐도 있고, 결혼 전후의 성관계에 대해서 얘기하는 사람도 있고 아무리 남들이 얘기해도 못 하는 사람이 있어요. 안전이 담보되는 닫힌 모임에서 훈련하는 게 필요해요. 그 모임에서도 처음 레즈비언 아주머니가 참여했을 때 시스젠더 헤테로 유부녀들의 모임에서 자신을 드러내도 되는지, 얼마나 드러낼 수 있는지 굉장히 힘들어하시더라고요. 모든 사람이 다 차이가 있고 그걸 존중하는 게 결국 우리가 하려고 하는 거지만, 조금씩 한계를 넓혀 가면서 경험해 보지 않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부분들이 있어요. 규정을 정하고 합의하고 그걸 지키며 이끌어 나가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경험이 분명히 필요하다는 거죠. 그냥 원칙만 가지고 공개적으로 넓혀 나가는 건 위험이 따릅니다.

회로: 이공계에 어떤 페미니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

지영: 100사람에겐 100가지 페미니즘이 있다고 생각해요. 기본적으로 모든 여성이 남자들에게 의존하도록 키워지지만, 이공계 여성들이 주로 남자들을 많이 보기 때문에 남자 롤모델이 굉장히 가시화되고, 정말 훌륭한 남자 모델이 있다면 아무래도 많이 의존하게 될 것 같아요. 이런 대상들에 대해서 ‘똑같은 인간이다’라고 자신을 다 잡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제 경우에 그랬고요.

또 하나는 이공계 밖 다른 분야의 여성들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누군가 “탁월함이 모든 차별을 압도한다고 믿었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물론 이런 착각이 여성만의 것은 아니고 그것으로 자신이 다른 여자들과 다르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게 자존심의 근원이 되고요. 그렇지만 그걸 가지지 못한 여성도 여성이고 그렇습니다. 예뻐서 다른 여자랑 다르고 남자들한테 특별한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고, 똑똑한 여자들은 자기가 똑똑하기 때문에 인간이라고 생각할 위험이 있어요. 우리는 그냥 인간이고 이공계 여성들이 이공계 안에서만 페미니즘을 할 수도 없고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니죠. 다른 분야의 여성들과 같이해야 하는데 이런 식으로 자신이 우월하다는 생각에 빠져 있으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여깁니다. 이공인은 ‘똑똑하면 우월하다’고 주입 받고 이공인의 도덕성처럼 되어버리죠. 그렇지만 페미니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이런 우월성에 대한 잘못된 가치관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회로: 그러면 앞으로 은퇴를 바라보실 나이가 돼가시는데 계획이 어떻게 되는 지.

지영: 무계획입니다. 은퇴를 할 수 있을까요? 한국 사회에서 은퇴라는 것이 결국 도태가 아닌가. 현재 사회에서 축적한 자산없이 은퇴하면 생존에 영향이 가잖아요. 먹고 사는 게 해결되면 다른 분야의 공부를 하고 싶지만, (그러려면) 로또나 사야겠죠. 앞으로의 계획은 로또를 사는 겁니다. (웃음)

회로: 이공분야에서 전문가를 꿈꾸는 학생들이 많은데요.

지영: 이공분야 전문가가 먹고 살기 힘든 세상입니다. 경영 마인드라고 해야 되나,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자본이 있어야 힘이 있어요. 지금은 젊으니까 지식으로 힘을 만든다고 생각을 하는 데, 지식도 돈에 팔리고 젊음도 돈에 팔려요. 이 구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경영마인드를 가지라고 하기보다는 자본주의 사회를 좀 더 인간적인 사회로 바꾸는 것에 대해 다 같이 고민을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합니다. 예를 들자면, 공부하시느라 다들 영어 잘하시겠지만, 각 개인의 영어공부에 들어가는 재화가 번역기 만들기에 투자된다면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결과를 낼 수 있지 않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자신이 사는 사회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게 필요해요. 연구소의 나이든 박사님들이 회한을 하는 것을 가끔 봅니다. 연구소 구석 자리에서 더는 연구할 능력도 없고 벌어 둔 돈도 없는 분들이 꽤 있어요. 그렇게 눈에 보이지 않게 사라져 가는 사람들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회로: 그런 문제에 대한 해결점이 지영씨가 보시기에 기술적인 건가요?

지영: 아니요. 기술은 도구일 뿐이라 생각해요. 그 도구가 어떻게 쓰이는지를 정하는 것은 사회입니다. 현재의 기술과 학문이라는 것 자체가 남성과 국가 위주로 만들어져 있고 투자도 결국 이런 환경 아래 어떤 목적을 가지고 진행되죠. 기술이 자연적으로 여성을 해방시켜주지 않습니다. 이 기술을 여성 해방과 인간화에 쓰겠다고 덤벼들어야 될까 말까 하지요. 기술보다는 그 기술을 가능하게 하는, 특정 기술에 투자하게 하는 현실의 배경을 보는 훈련을 우리 이공계분들이 더 하셔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기술에 대한 훈련은 충분히 받았다고 생각하니까요.

회로: 이공분야에서 전문가를 꿈꾸며 가정도 얻고 싶은 학생에게 어떤 얘길 하고 싶으신지

지영: 여성들에게는 아직 둘 다 허용되지 않습니다. 그 현실은 분명히 보셔야 합니다. 마누라가 있으면 됩니다. 전업주부 엄마든지 우리 집이 부자든지 남편이 부자고 그 돈을 맘대로 쓸 수 있는 상황인지. 시댁이 부자라도 그 돈 쓰기 힘든 경우가 많아요. 제가 본 어떤 분은 박사과정을 하겠다니까 시어머니께서 공부하라고 수천만 원을 주셨다고 했어요. 좋은 시부모님이시지만 그래도 역시 출산, 직장, 공부가 겹치면서 굉장히 힘들었다고 합니다. 저는 안 낳으시는 걸 권고드리고요. 굳이 하시겠다면 마누라를 마련하셔야 하고. 안 그러면 자신의 수명, 체력을 갈아 넣으셔야 합니다. 현실은 그런 거 같습니다.

회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지영: 응원합니다.

회로: (웃음)저희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정폭력에서 생존하여 성차별적인 연구소 환경, 육아를 위해 커리어를 포기하기를 요구받아왔음에도 불구하고 IT 업계에서 시니어 여성으로 살아 남아온 현지영씨의 인생은 그 자체로 투쟁의 역사라 할 수 있다. IT 분야에서 현지영씨 만큼의 커리어를 쌓은 여성을 찾기 힘들지만, 그녀가 걸어온 길은 낯설지 않다. 이공계에는 수많은 현지영씨들이 자신의 자리를 쟁취하기 위해 오늘도 싸우고 있을 것이다.

이공계인으로서 여성운동을 하면서 이공인이라는 틀에 갇히는 것을 경계하고 다른 분야의 여성들과도 연대하며, 기술의 페미니즘적 운용을 고민할 것. 시니어 페미니스트로서 그녀의 통찰이 녹아든 조언이 이공계에서 페미니스트로서 싸워나가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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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rls' Robot

댓글 4 개

  1. 많이 공감하면서 읽었습니다. 우월성의 논리에 어느새 빠져있었는데, ‘똑같은 인간이다.’를 계속 되새겨야겠네요

    • Girls' Robot

      고맙습니다. 그렇죠, 우리는 똑같은 사람이지요. 어떤 취향과 지향과 재능과 외모를 갖고 태어났어도 말입니다! 앞으로도 즐거이, 함께 해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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