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entists∩Feminists 페미회로 인터뷰 프로젝트 XVII: 아이를 키우며 식물을 연구하는 조용한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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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2일 대전에서, 국내 5개 지역거점 과학기술중심대학(DGIST, GIST, KAIST, POSTECH, UNIST)의 페미니스트 연합모임 <페미회로(영문명 FemiCircuit)>가 공식 출범했다. 페미회로는 이공계 내 젠더 불평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지속 가능한 페미니즘을 실천하려는 모임이다.
(페미회로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femicircuit)

페미회로에서는 2017년 연중 프로젝트로 이공계 내 여성 과학자, 연구원들과 우리 주변의 페미니스트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이름을 얻었거나 얻지 않았거나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연구하고 고민하며 실천하는 이공계 여성 연구자들을 통해 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우리보다 조금 뒤의 미래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공계 여학생들과 여성 연구자들은 결혼∙육아와 관련해 많은 고민을 안고 있지만, 이에 대한 경험담이나 조언을 들어볼 기회가 거의 없다. 지난 인터뷰인 <Scientists∩Feminists 페미회로 인터뷰 프로젝트 VI: 육아하는 대학원생, 연구하는 엄마>에 이어, 이번에는 연세대학교 시스템 생물학과 석박사 통합과정에 재학 중인 안희경 씨를 만났다. 졸업을 앞둔 그 역시, 식물 유전체 분야의 전문가로서 다음 단계를 꿈꾸는 ‘애 엄마’ 연구자다. 결혼하고, 아이 낳고, 키우며, 공부하는 여성 연구자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상상되지 않는 사회의 소수자인 셈이다.

페미회로 인터뷰어는 이아령, 조희수로, 모두 회로라고 표기했다. 인터뷰이 안희경은 희경으로 표기했다. 검수는 강미량, 김한솔(이상 가나다순)의 검수팀이, 최종 편집은 <걸스로봇>에서 나누어 맡았다.

 

회로: 안녕하세요, 저희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희경님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인터뷰에 응하게 된 계기에 대해 궁금합니다. 혹시 이전에 페미회로나 걸스로봇에 대해 알고 계셨나요?

희경: 안녕하세요, 저는 연세대학교 시스템생물학과 석박사 통합과정에 재학중인 안희경이라고 합니다. 내년에 졸업을 앞두고 있어요.

이번에 ESC(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 www.esckorea.org) 신입회원 행사에 참여했는데요. 윤태웅 대표님이 ‘아기를 낳은 대학원생은 ESC에 처음이에요!’라고 하시면서, 같은 자리에 있던 페미회로 강지우 회원(포스텍 교직원, 과학 커뮤니케이터)에게 인터뷰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해주셨어요. 당시 막 백은옥 한양대 교수님의 인터뷰를 읽었을 때라 ‘설마 나같은 대학원생이 인터뷰이가 되겠어?’라고 생각했는데(웃음), 대학원생이나 학부생 인터뷰도 진행하는 걸 보니 용기가 났죠.

걸스로봇에 대해선 지난 봄 연세대에서 열린 <서울국제여성영화제>를 통해 알게 됐습니다. 마침 SF가 주제였는데, 이진주 대표님이 과학기술과 여성, 로봇, 미래기술에 관한 특강을 하셨거든요. 진주님도 마침 ESC 홍보이사여서 겹치는 부분이 있었던 셈이네요. 

회로: 그렇군요. 희경님이 하고 있는 식물 연구를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희경: 저희 실험실은 애기장대를 대표 모델 식물로 써요. 보통 애기장대를 쓰는 실험은 형질 전환체를 만들어서 실험을 하는데요, 저희는 그 방법보다는 일시적으로 siRNA(small interfering RNA)를 만드는 방식으로 실험을 진행하고 있어요.

siRNA는 식물의 방어기작 중 하나에요. dsRNA(double-stranded RNA)를 만드는 바이러스가 식물에 들어오면, 식물이 dsRNA를 인지하고 다 부숴버려요. 이런 메커니즘을 역으로 이용하면 식물 유전자를 바이러스 카세트에 넣을 수 있어요. 카세트에 넣으면 식물이 카세트 속에 들어간 유전자가 본인 유전자임에도 다 부숴버려요. 이것을 유전자 침묵(Gene silencing, 상보적인 RNA 가닥 등에 의하여 유전자 일부가 비활성화 되는 것)을 유도한다고 해요. 저는 유전자침묵을 통해 세포 골격계에 관련된 연구를 하고 있어요.

회로: 연구실을 선택한 계기가 있나요?

희경: 저희 실험실에는 학부 연구생으로 2학년 여름방학 때 처음 들어갔어요. 1학년 1학기 때 지도교수님 수업을 들었는데, 그 때 실험 조교가 지금 랩에 같이 있는 포닥 언니에요. 조교 언니가 ‘우리 랩에서 실험해보지 않을래?’라고 제안해 1학년이 끝나자마자 교수님께 갔었죠. 그 때는 교수님께서 제가 너무 어린 것 같다고 하셔서 2학년 여름방학 때부터 참여했어요. 그 때부터 줄곧 이 곳에 있었어요.

회로: 식물을 이용한 연구에는 원래부터 관심이 있으셨던 건가요?

희경: 네, 고등학교 때부터 식물 연구를 염두에 두고 있었어요. 친정 어머니가 간호사여서 어릴 때에는 의사가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중학교 3학년 때 기아체험 행사에 참여하고 장래희망이 바뀌었어요. 정말로 하루 종일 굶길 줄은 몰랐는데(웃음) 24시간 동안 쫄쫄 굶고 나니까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러고나서 어렴풋이 생각했어요. 사람이 건강하기 위해서는 첨단 의료기술보다는 먼저 기본적으로 잘 먹어야 한다고요. 식생활의 가장 기본은 작물, 즉 식물이잖아요. 그래서 의술쪽보다 식물연구에 관심을 가졌어요. 동물실험이 잘 안 맞기도 했고요. 실험 조교를 했을 때 커리큘럼에 따라 쥐 해부 실험을 했는데요, 그 때 동물은 저에게는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웃음)

회로: 저희는 각각 쥐와 개구리를 이용해 실험을 했던 경험이 있는데요, 동물실험 후에 마무리 하는 과정이 괴롭더라고요. 동물과 마찬가지로 식물실험도 그 나름의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아요.

희경: 식물은 자라는 시간이 필요해요. 더 어려운 건 애기장대 씨가 정말 작다는 점이죠. (테이블에 놓여있던 아주 작은 과자 부스러기를 가리키며) 요 정도? 그래서 파이펫으로 심어야 해요. 흙에 심을 때에는 이쑤시개로 심기도 하고요. 이쑤시개로 씨앗을 심고 잎이 네 개가 나면, 그 때가 VIGS(*Virus Induced Gene Silencing, 바이러스에 식물 유전자를 넣어 식물 세포 내 유전자 발현을 막는 기술)를 하기에 제일 좋을 때에요. VIGS를 하려면 주사기 바늘을 떼고 압력만으로 애기장대에 액체를 주입해야 해요. 주사기와 피스톤을 살짝 눌렀다 떼면 되는데, 초보자들은 그게 잘 안되어서 애기장대를 다 뽑아버리죠. 처음에는 다들 힘들어 해요. ‘내가 어떻게 심은건데!’ 스스로 화를 내기도 하죠.(웃음) 실험 후에는 다 말려 죽이는 것으로 처리를 해요.

회로: 아… 애기장대도 결국 그렇게 된다니 생명과학을 연구하는 저희는 다 업보를 쌓고 있네요.(웃음) 세포 골격계에 관한 연구를 하고 계신다고 하셨는데, 연구주제는 어떻게 정했나요?

희경: 저는 연구실 주제와 조금 다른 연구를 하고 있어요. 저희 연구실 분야를 먼저 말씀드릴게요. 동물은 영양분을 먹어서 섭취하지만, 식물은 광합성을 통해 탄소 영양분을 직접 합성하고 질소는 외부에서 받아요. 질소와 탄소는 서로 다른 처리 과정이 필요한데, 저희는 식물이 질소의 신호와 광합성 신호를 받아서 서로 다른 단백질 번역을 어떻게 촉진하는지 신호 전달에 관한 연구를 하죠.

저는 처음에 신호 전달에 관여하리라 예측되는 요소를 전부  VIGS를 통해 관찰했어요. 그런데 그 중에 하나가 너무 신기한 모양이 나오는 거에요. 알고 보니 이게 신호 전달에 관한 요소가 아니라, 세포 골격계에 관한 요소에 돌연변이가 생긴 애인 거에요. 관심을 가진 그 때부터 고난이 시작된 거죠. (웃음) 그래도 이왕 시작을 했으니 마무리를 지어야겠다고 생각해서 계속 하기는 했는데, 저희 실험실에서 원래 다루던 게 아니니까 시약도 다 새로 사야 했고 씨앗도 새로 구해야 했어요. 이제는 기나긴 시간을 거쳐서 마무리가 되는 단계죠.

회로: ‘다시 맨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른 유전자를 더 찾아보자!’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었을 텐데 그 유전자로 계속 하신 이유가 있나요?

희경: 논문에 첫 피규어로 뭔가 우글우글하고 노랗게 된 식물이 보이면 뭔가 이목을 확 끌 수 있을 것 같아서 이 것으로 했는데, 사실 좀 힘들었어요.(웃음) 이 유전자가 무엇인지 아무도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없고 제가 다 밝혀내야 했으니까요. 처음에는 당황했었는데, 이제는 약간 애증의 관계랄까요? ‘이 유전자는 내가 끝낸다!’라는 생각으로 하고 있어요.

 

회로: 생명과학을 전공하고 있다 보니 공감 가는 부분이 많네요. 유익한 연구 이야기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다른 주제의 이야기로 들어가 볼게요. 여성 연구자로서 결혼과 출산에 대해 많이 고민하는데요.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결혼한 연구자로서의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나요?

희경: 저는 2008년부터 연애해 2015년에 결혼했어요. 국문학을 전공한 남편은, 이제 제가 공부하는 유전자 이름까지 알죠.(웃음) 이번 겨울에 돌을 맞는 아기가 있고요, 남편이 출판사에서 일을 하는데, 육아휴직 중이에요.

회로: 아이를 갖고 낳는 과정에서 생활이 많이 달라지셨겠지요.

희경: 배는 천천히 부르기 때문에 제가 처한 입장이 확 변하진 않았어요. 임신 7-8개월에 이만한 액체질소 통을 들고 다니기도 했으니까요.(웃음) 물론 전체적으로 생활이 조심스러워지긴 했죠. 입덧도 힘들었고요. 또, 실험실은 되게 좁으니까, 배가 많이 부른 후에는 지나갈 수 없는 통로들이 많더라구요. 그 때는 ‘아, 여긴 못 지나가겠네?’ 하고 다른 곳으로 그냥 지나갔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때 힘들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긴 해요.

그런데 신체 변화에서 오는 고민보다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주위 사람들에게 언제 어떻게 얘기 할 지가 더 큰 고민이었어요. 아이를 낳고 나서 이 아이를 어떻게 키울 지도요. 뱃속에 아이가 있을 때에는 아기가 저랑 같이 있으니 괜찮은데, 아이를 낳고 나니까 따로 더 케어를 해야 된다는 점에서 모든 고민이 시작이 되더라고요.

회로: 임신 및 출산 전 후로 특별히 육체적으로 힘든 일은 없었나요? 시약을 사용하는 연구실 특성상, 출산 전후로 모유 수유 등에서 특별히 신경쓰셨던 점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늘 실험을 하시니까, 그런 점에서도 조심하신 점이 있으셨을 것 같아요.

희경: 제가 사용하던 항생제 중에서 임신 초기에 절대로 사용하면 안 되는 약이 있었어요. 의사 선생님이 신신당부를 하셔서 제 부사수 친구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했었죠. 그런데 매번 다른 사람에게 해달라고 하기가 너무 번거롭더라고요. 그래서 위험한 시기가 지나고 임신 중기 때부터는 다시 잡았어요.

그 외에는 입덧이 가장 힘들었어요. 입덧하는 동안은 매일 아침에 눈을 뜨면 통통배를 탄 것처럼 어지러웠어요. 고기도 못 먹고, 냉장고도 못 열었어요. 허리도 굉장히 아팠고요. 애 낳고 나서는 바로 괜찮아졌지만, 당시에는 오래 앉아있기가 힘들었거든요. 또 배가 많이 나오니까 실험대에 배가 닿아서요(웃음).

출산 후 연구실로 돌아갔을 때는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어요. 다만 저는 제왕절개를 했는데요, “자연 분만은 일시불로 아프고, 제왕절개는 할부로 아프다.”는 말이 있어요. 일주일 정도는 계속 아팠어요. 한 달까지도 불안하기는 했었는데, 두 달쯤 되니까 생활에 지장이 올 정도는 아니었어요. “어? 괜찮은데?”(웃음) 그래서 교수님께서 바로 연락을 주신 것도, 낳아 보셨으니까 “이쯤 되면 괜찮을 텐데?”하고 주신 게 아닐까 해요. 연구실 돌아가서 처음에는 살살 했어요. 조금 눈이 침침해졌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아주 힘들지는 않았어요.

모유수유는 한 달 하고 말았어요. 임신 당시에는 학교에 수유실도 없었고, 실험을 하면서 유축하고 싶지도 않았거든요. 두 달 반 쉬는 동안 분유로 바꿨어요. 막상 돌아가보니 수유실이 생겼더라구요. 사실 생명과학은 시약을 액체를 많이 사용하니까 흡입할 일도 없고, 장갑을 쓰고 조심하면 돼서 다들 모유수유를 하기는 해요. 그런데 저는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모유수유가 마치 엄마의 이상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저는 엄마의 상황에 맞춰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연분만이나 모유수유 담론은 너무 ‘모성애’를 강조하는 부분이 있죠.

회로: 최근에 ESC 활동을 시작하신 것도 출산이나 육아로 인한 각성이 계기가 됐나요?

희경: 꼭 그런 건 아니에요. 아이를 가진 것과는 별개로 ESC에는 계속 관심을 가지고 있었어요. 과학기술이 경제발전의 도구가 아니며, 과학적으로 생각하는 방식이 민주시민의 기본 교양이라는 취지에도 공감했구요. 그보다는 아이를 굉장히 힘들게, 급하게 낳으면서 “지금 안하면 못할 일들이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게 컸어요. 아기 키우는게 너무 힘들어서 잊고 살다가, 실험이 조금 정리가 되고 나니 “이제는 진짜 해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서 가입했어요.

<새 여성학 강의>, 1999, 한국여성연구소 저.

페미니즘은, 학부 동아리에서 이대 언니들과 페미니즘 세미나를 하며 처음 접했어요. 그 때 읽은 책이 <새 여성학 강의>라는 책이에요. 당시에는 그 책을 접하고 나서도 별 생각이 없었어요. 그 때까지는 여성이라 큰 차별을 받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딸아이를 갖고 나니 이 아이가 살 세상은 더 좋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결혼하기 전에는 <Lean in>이라는 책을 읽었었어요. 서점에서 우연히 보고, 그 자리에서 반 정도 읽었던 것 같아요. 여학생들은 “나는 잘 못할 거야” 하고 뒤로 빠지는 태도를 보이잖아요. 어려서부터 여성들에게만 암묵적으로 강요돼왔던 태도를 넘어서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요. 그 책도 알게 모르게 저에게 영향을 준 것 같아요. 포닥 원서를 쓰면서도, 내가 여기를 쓸 수 있을까? 이 랩이 과연 나를 받아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드는데, 그걸 넘어서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회로: 다시 실험실 이야기로 돌아가볼게요. 부사수에게는 항생제 사용을 부탁하면서 임신 사실을 먼저 알렸다고 했는데요. 실험실 내 다른 분들에게는 어떻게 이야기를 꺼냈나요? 아무래도 조심스러운 면이 있었을 듯 해요.

희경: 아무리 임신이 축복받을 일이라고 해도, 실험실 사람들 입장에서는 조심스럽죠. 당사자가 한동안 쉬어야 하니까요. 지도교수님 역시 자녀를 둔 여성이에요. “임신하기에 좋은 타이밍은 없다”고 하시면서도, ‘우리 실험실에 있는 동안에는 임신 안 했으면 좋겠다’는 느낌으로 이야기를 하셨죠.

저도 실험실에 최대한 늦게 말씀 드리려고 했어요. 다른 선배도 임신 5개월 정도에 말씀하셨고요. 그런데 제가 임신 4개월 쯤에 학회를 가야 했던 거에요. 그 때 말을 안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말씀을 드렸어요. 12주차 정도가 제일 힘들거든요. 차라리 20주쯤 되면 태동이 느껴져 아기가 잘 있다는 걸 알고, 입덧도 잘 안 해요. 근데 12주는 입덧도 하고, 아기가 잘 있는지도 쉽게 알 수 없죠. 뇌가 발달하는 정말 중요한 시기이기도 하고요. 모든 게 다 스트레스인 시기인데 주변 사람들한테 말할 수가 없으니까 너무 힘들더라고요.

제가 출산을 급하게 하는 바람에 이틀 전까지 출근하고 바로 아기를 낳았어요. 목요일에 출근해서 일을 하다 보니 몸이 좀 안 좋아서, ‘저 하루 쉬고 올게요!’라고 말하고 금요일에 쉬었는데, 그러고 나서 바로 토요일에 아기를 낳았어요. 출산 전에 쉬는 것이 하나도 없었던 셈이죠. 저희 과 쪽은 다들 그런 식이었던 것 같아요.

회로: 생명과학 분야의 연구 특성이 이런 점에 많이 영향을 미치는 듯 해요. ‘세포는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말도 있잖아요. (웃음) 저희가 실험을 이렇게 미뤄놓거나, ‘이만큼만 해놓고 한 달 뒤에 다시 한다’는 게 안되잖아요.

희경: 네, 그렇죠. 저는 다행히 부사수 친구에게 부탁해서 아이 낳기 전에 최소한의 정리를 할 수 있었어요. 단독 프로젝트였다면 이걸 도와줄 사람이 없어서 더 힘들었을 것 같아요.

회로: 그런 경험을 통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셨겠네요. <Do babies matter?>라는 책을 번역하신다고 들었는데, 어떤 계기로 번역을 마음 먹게 됐나요?

희경: 원래는 저 혼자 읽고 주변에 추천하는 정도로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신랑이 번역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묻더군요. 어쩌다 보니 번역을 하게 된 거죠.(웃음) 이 책은 굉장히 현실적인 자료를 보여줘요. 예를 들어 대학원 입학은 남녀가 반반하고 있는데 교수 인원은 남자가 훨씬 많은지 등에 대해서요. 아직 출판사를 구하지 못해서 여기저기 보내보고 있어요.

대학원 생활을 하면 대학원생들만이 체감하는 일들이 있죠, ‘우리 과에는 여자 교수님들이 없어’라는 식으로요. 그런데 그게 실제로 그런 건지, 그냥 내 느낌이 그런 것인지는 알기 힘들어요. 이 책은 그걸 직접 통계로 보여주고 있어요. 특히나 여성들이 학계에서 이탈하는 포인트가 언제인지 잘 보여주고 있는데요, 결혼이나 출산 등의 포인트 등에서의 변화를 통계적으로 입증해주죠. 이공계뿐만 아니라 대학원생 전반에 걸쳐서 보여주고 있는데, 수학과나 물리학과 등 남초 사회인 곳에 대해서는 또 특별히 강조해서 보여주고 있기도 해요.

회로: 퇴근 이후의 또 다른 일인 셈이군요.

희경: 네, 다행히 아이가 일찍 자는 편이라 9시에서 11시, 이 사이에 잠깐씩 하고 있어요. 진도가 많이 나가지는 않지만 조금씩 하는 게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회로: 실제로 경험한 일이라 공감도 크겠어요.

희경: 아이를 갖기 전까지 제가 여성이라서 불평등한 차별을 받고 있다고는 생각을 해본 적이 드물었어요. 결혼하기 전까지는 똑같이 공부하고, 똑같이 실험하고, 똑같이 결과를 내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고 나니 점점 사회의 차별이 보이더라고요.

책에 많이 공감했지요. 지금은 남편이 육아휴직을 하고 있는 중이라 아직은 괜찮지만, 남편의 육아휴직이 끝나면 “누가 아이를 키울 것인가”의 문제에 부딪힐거에요. ‘나도 이탈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책이 테뉴어 심사를 유예해 준다거나, 학위수여를 유예해 준다거나 하는 대안을 제시하기는 하는데, 사실 그런 대안이 생명과학을 연구하는 입장에서는 충분하지는 않잖아요. 생명과학은 유난히 경쟁이 심하고, 하루가 다르게 바뀌니까요. 제도가 ‘1년이라는 시간을 당신이 육아를 할 수 있도록 시간을 줄게’라고 하더라도 본인이 연구를 놓을 수가 없어서 그 유예기간을 완전히 쓸 수 없는 경우가 많을 것 같아요. 저도 두 달 반만 쉬고 연구실로 다시 복귀했거든요. 차라리 육아보조나 아니면 여러 명이 함께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방향이 훨씬 도움이 될 것 같아요.

회로: 이 책을 특별히 추천해주고 싶으신 분들이 있나요?

희경: 대학원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다 읽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여성 분들은 물론이고 남성 분들도요. 여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남자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을 알아줬으면 해요. 예전에야 남성이 외벌이를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맞벌이를 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둘 다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는데 누구 한 사람에게 커리어를 그만두라고 할 수는 없어요. 사실 제일 읽었으면 하는 사람들은 정부에서 관련 정책을 만드는 분들이긴 하죠. (웃음)

회로: 예전에는 ‘연구를 하려면 이걸 이해해줄 만한 사람을 만나야 할텐데, 그러면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을 만나는 게 좋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어요. 다른 전공을 한 남편 분과 어떤 식으로 소통을 하시는지 궁금해요.

희경: 연애 직후에 실험실에 들어갔기 때문에 남편이 많이 익숙해 진 것 같아요. ‘퇴근할게~’라고 말한 후에도 30분 정도는 실험실에서 정리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등이요. (웃음)

지금은 내년에 졸업을 하고 해외로 포닥을 나가려고 원서를 쓰는 중이에요. 이제 이런 점들을 고민하는 단계인 것 같아요. 같이 나갈 수 있는 건지, 아니면 떨어져 있어야 하는지, 떨어져 있게 된다면 아기는 누구와 함께 있어야 하는 건지 등에 대해서요.

회로: 그 과정에서 아무래도 시설이나 복지에 대해서도 많이 관심을 갖게 되실 것 같아요.

희경: 네, 많이 알아보는 중이에요. 근데 연구소를 소개할 때에 복지시설을 많이 알려주지는 않더라고요. (웃음) 보통 연구시설에 대해서 많이 소개를 하지, ‘우리는 이렇게 복지가 잘 되어 있어요!’라고 말하지는 않아요. ‘사람 사는 곳인데, 다 있겠지!’라고 생각하고 있긴 한데, 아무래도 미국보다는 유럽 쪽을 더 선호하게 되는 것 같아요. 유럽은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다고 하니까 실험을 하는 사람이더라도 아이를 키우기에 좀 더 낫지 않을까 기대해요.

회로: 혹시 희경님 주변의 경우에는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셨나요? 최근 이런 부분에 대해서 제도적인 차원에서 해결해야 된다는 목소리가 많이 나오고 있는데요, 실제로 희경님께서 받으신 조언이나, 제도적 도움이 있나요?

희경: 지도교수님은 석 달을 쉬고, 아기를 바로 어린이집에 맡겼다고 하셨어요. 저도 그렇게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남편이 마침 육아 휴직을 써보겠다고 해서, 어렵게 허락을 받아 1년 휴직을 했어요. 그 회사에서 남자로서는 처음이라고 하더라고요. 주위에는 양가 부모님들께 도움을 받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임신 당시에 저희 양가 부모님들께서도 다들 일을 하고 계신 상태였기 때문에 저희는 생각을 못했지만요. 사실 제가 되게 특이한 케이스인 것 같긴 해요. 아직은 남자가 육아 휴직을 하는 경우가 많이 없으니까요.

연세대학교는 그래도 대학원생 인권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 제도가 어느 정도 되어 있기는 해요. 최근에 수유실도 생겼고 교직원 어린이집에 대학원생 부모도 아이를 보낼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지금 그 곳을 알아보고 있어요. 다른 국립 어린이집은 사설 어린이집보다 보내기 어려워요. 모든 어린이집은 부모의 상황에 따라 입학 우선 순위가 있는데요, 국공립 어린이집은 대부분 대기 인원이 100명이 넘고, 사설 어린이집도 대부분 대기 번호를 받아요. 그런데 대학원생은 4대 보험에 가입되지 않고 노동자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주부로 간주돼요. 그래도 2015년에는 부부 중 한쪽이 취업 준비 중일 경우, 맞벌이 가정에 포함되도록 정책이 바뀌었어요. 노동인구로 분류되지는 않아도, 어린이집에서는 맞벌이로 인정해주니 그나마 좀 다행이죠.

 

회로: 대학원생 입장에서는 대학교에서 제공하는 복지 시스템이 정말 중요한 상황이네요. 대학원생들이 노동 인구냐 아니냐 하는 문제에 관해서 아직 논의가 진행중이다 보니, 합리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을 많이 겪게 되는 것 같아요.

희경: 아무래도 인문계 대학원생들은 저희처럼 하루 종일 출근을 해서 일을 해야 하는 건 아니다보니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을 했어요. 이공계는 하루 종일 실험을 해야 하는데도 아직은 다르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 같아요.

회로: 부부 교수님들을 보면 아이가 없으신 분들이 많은 것처럼 보여요. 두 분 다 연구를 하고 계속 커리어를 이어 나가려면 어쩔 수 없는 일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포스텍에도 이번에 교내 구성원 어린이집이 생겼는데, 듣기로는 대학원생들의 우선 순위가 낮아서 아이를 들여보내기가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희경: 그나마 대학원생으로서의 장점이 있다면, 교수님이 허락하는 한에서는 시간을 유동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저희 실험실 선배님 중에서는 새벽 5시에 출근을 하셔서 오후 네다섯 시에 퇴근하신 후에 아기와 시간을 보내시는 분도 있었어요. 물론 출퇴근 방식 등은 지도 교수님께서 어떤 스타일인지에 따라서 또 달라지긴 하지만요.

회로: 대학이라는 공간이 가족친화적이지는 않은 것 같네요. 두 달 반 쉬는 동안 어떤 신분이었나요? 임신, 출산 과정에서 학교로부터 받았던 제도적인 도움에 대해 궁금합니다.

희경: 딱 방학이었고, 연구학기라 수업을 듣지 않아서 큰 문제는 없었어요. 또 연구원으로 등록이 되어 있어서 월급도 들어왔었어요. 석 달이 보장된 건 아니지만 유급 출산휴가니까 그것만 있어도 굉장히 좋잖아요. 물론 학교에 임신휴학 제도가 있기는 해요. 그런데 이공계는 보통 랩 단위로 돌아가니까, 제도가 있어도 지도 교수님께서 허락을 안 해주시면 휴학을 쓸 수 없죠. 휴학이 가능하더라도, 휴학을 하면  등록이 안 되어있기 때문에 월급까지 기대할 수가 없어요. 학교에서는 제도를 만들어 놓긴 하지만, 제도를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방안이 별로 없는 상황이죠. 일종의 사각지대에요.

사실 학생들이 결혼을 하든 임신을 하든 학교에서 학생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 잘 없어요. 만약 학교에서 알면, 강제적으로 교수한테 압력을 가할 수 있겠지만요. 뭐 어쨌든 학생이 임신했다, 결혼했다고 학교에 알리려고 하면 지도교수 사인이 필요하겠죠? 학교 입장에서는 지도교수의 관리를 받는 학생들이니까 어쩔 수 없을 거고요. 실질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제도라 안타까워요.

회로: 학교 전체 성비에 비해 생명과학과에는 여학생들이 굉장히 많은 편이에요. 50대 50을 넘어가는 학교도 많죠. 그럼에도 스무 명 남짓 되는 교수님 중 여교수님은 서너 분 밖에 없는 걸 알고 굉장히 충격을 받았어요. 여학생이 많은 분야에서도 고위직에 올라갈수록 여성 인력이 부족한 현상 역시도 그런 제도 문제 때문일까요?

희경: 번역 중인 책 <Do babies matter?>에서도 자세히 나와 있는데요. 사회적으로 아직도 남성은 가정 내 경제를 관장하고, 여성은 육아와 집안일을 담당하는 것과 같은 성역할 편견이 많다 보니, 여성이 내외적인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이탈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제 동기 여학생들은 다들 비슷한 시기에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는데요. 대학원 때도 그렇고, 포닥 때도 그렇고,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러고 있는가’ 하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제 생각엔, 남학생이었으면 적어도 그런 생각은 덜 했을 것 같아요. 보통 남성들은 ‘열심히 해서 성공해야지, 돈을 많이 벌어야지, 가족을 먹여살려야지’ 이런 식으로 주체적으로 생각하도록 유도되는 데 반해서, 여성에겐 경력이 단절되도록 유도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어요.

회로: 저도 문이과를 선택할 때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어요. 문과가 잘 맞는다고 스스로 생각하다가 정작 이과로 대학을 온 뒤에 생각해보니, 어린 시절 수학 과학을 생각보다 굉장히 잘했는데도 아무도 칭찬해주지 않았어요. 이제서야 드는 의문은, “왜 여자아이들에게 ‘너는 문과 성향이야’라고 말할까?” 하는 거에요. 여학생들에게 가해지는 암묵적인 압력이 확실히 존재하는 것 같아요. 일반적으로 여성들이 출산 때문에 많이들 이탈한다고 했는데, 그 뒤에 원래 자리로 돌아갈 수는 있나요? 어떻게 돌아가나요?

희경: 저희 선배님들 중에는 출산한 뒤에도 연구실에 남아 계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제가 말하기가 조심스럽긴 하지만, 대부분 집에서 그냥 쉬는 것 같아요. 안타깝지만 전공을 살리지 못하고 다른 일을 하게 되기도 하고요. 이공계 특성상, 대학원을 졸업하면 제가 있는 위치에 남기 매우 어려워지잖아요. 전문 연구소들이 대개 각 지역에 분포돼 있어서 포닥을 다른 곳으로 가야 하니까요. 저는 서울 출신이다보니 포닥을 하든, 연구소에 취직을 하든, 서울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사실이 걱정스러워요. 이공계 연구소는 보통 서울 밖에 있는데, 남편은 직장이 서울이잖아요. 보통은 이 지점에서 계산을 시작해요. 내 일이 남편과 떨어져서까지 해야 하는 일인가 고민하죠. 결국엔 일을 그만두는 경우가 왕왕 생기는 것 같아요. 저는 사실 아버지가 해외를 자주 나가셨고, 그 때마다 어머니의 경력이 단절되었어요. 다행히 간호사라는 직종의 특성상 매번 새로 직장을 잡으실 수 있으셨어요. 그래서인지 제가 일을 하지 않고 집에 있는 경우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회로: 결혼 전에 남편과 이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셨나요?

희경: 네, 저는 이렇게 살 거고, 집에 자주 없을 수도 있고, 밤 늦게까지 실험을 할 수도 있다고요.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해서 서로 익숙했는데, 아기를 낳은 뒤에는 적응 중이에요. 아이가 더 어렸을 때는 밤에 실험하는 건 상상도 못했어요. 아무래도 절대적인 워킹타임이 많이 줄었다 보니 제 마음대로 실험도 안 됐었구요. 요새는 다시 밤에도 실험실에 나가는 등 생활패턴을 조절 중이에요. 이해해 주는 남편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 남편이 불만을 가졌다면 힘들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회로: 어린이집 이야기도 그렇고, 결혼 뒤에 복지 문제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된 것 같은데요. 아무래도 출산이나 육아에 직접 맞닥뜨리기 전까지는 계획을 세우기가 어려워보여요.

희경: 맞아요. 아기가 생기고 나서는, 복지제도를 정말 많이 알아봤어요. 아기를 갖기 전에는 수유실이 있는지에도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데 아이를 갖고 나니, ‘모유수유도 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떡하지?’ 자연스럽게 고민이 됐어요.

낳아 본 분들이 이런 것, 저런 것들이 필요하다 거침 없이 말씀해 주시면 좋을 텐데, 개인적으로 무능해 보이거나 조직에 불평불만을 말하는 것처럼 비춰질까봐 더욱 말을 아끼게 되는 것 같아요. 선배 중에도 육아 중인 분이 계신데, 연구실에서는 항상 평안해 보이셔서 육아가 이렇게 난리인지 전혀 몰랐어요(웃음). 아까 아기가 잠들고 나서 9시부터 두 시간 정도 제 개인적인 일을 한다고 했는데, 사실 일주일 중에 2~3일은 그 시간도 이유식 만드는데 할애하구요. 또 하루는 논문 읽고 하다 보면, 번역에 할애할 시간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 엄마들은 마음 놓고 화장실 갈 시간도 없다고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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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로: 남편의 육아휴직 이야기를 좀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희경: 회사와 엄청 실랑이가 있었대요. 출판사에는 여성 직원이 굉장히 많아요. 특히 남편이 속한 팀에 유독 그렇고요. 그 분들은 전부 육아휴직을 사용했는데, 남성 직원에게는 전례가 없었어요. ‘남자니까 안 된다’라고 하는 건 불합리하잖아요. 그래서 첫 테이프를 끊었죠.

사회적인 뉘앙스에도 확실히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부모님을 뵈러 갔을 때, 아이가 하루 종일 아빠랑 있으니까 아빠를 더 좋아하는 건 당연하잖아요. 근데, “애가 아빠한테만 간다!” 같은 말씀을 들으면 마음이 좀 그렇죠. 일상의 매우 소소한 부분이어서 그냥 넘어가기는 하지만요. 그래도, 나머지 일들, 예를 들어 이유식을 만든다거나 하는 건 제가 다 하고 있어요. 제가 완전히 집안일을 안하는 건 아니에요.

회로: 남성 육아휴직의 전례로 좋은 사례가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먼저 한 명이 용기를 내야 그게 선례가 돼서 다음 사람도 또 쓰고, 선순환이 일어나죠. 여성 복지가 좋은 회사들은 입소문이 나서 여성 분들이 계속 들어가고 여성 복지가 더 좋아진다더군요.

출산 뒤 2개월 만에 연구실로 복귀했고, 또 다른 연구실 선배도 3개월 만에 연구실로 돌아갔다고 했는데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라도 있었나요?

희경: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돌아간 것 같아요. 일단, 정확히는 2개월 반 만에 연구실로 돌아갔는데요. 애기 낳고 두 달쯤 지났을 때 교수님께 연락이 왔었어요. 원래 석 달 예정되어 있기도 했고, 남편의 육아휴직이 그 시기에 맞춰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언제 돌아오냐는 물음에, “석 달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렸죠. 교수님께서, 굉장히 기막혀 하신 것 같기는 하지만(웃음), 어쩔 수 없잖아요. 아이가 집에 혼자 있을 수는 없으니까. 그런데 원래는 2주 정도 남편과 함께 아이를 보면서 필요한 걸 좀 넘겨주고, 알려주고 일종의 인수인계를 계획하고 있었거든요. 그만큼의 시간을 포기하고 조금 더 일찍 출근하게 됐죠.

사실 저는 원래 애기 낳기 전에 논문을 내고 싶었어요. 원고도 다 쓰고, 마지막으로 필요한 실험도 하는 중이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아직도 안 끝나서. 2주 더 쉰다고 달라질 건 없었겠지만, 마음이 급했던 것 같아요. 대학원 졸업을 하고, 포닥을 해야 안정적인 직업을 가질 기회가 생기는 거니까요.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빨리 돌아가야겠다 마음 먹게 됐죠.

회로: 여성 이공계인으로서 도움을 받았던, 혹은 닮고 싶었던 롤모델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희경: ‘Women in Science”라고 여성의 날을 맞이해서 한 인터뷰에 나온 한 분이, 식물 연구자였어요. 이 분에 대해 서치하다가 인터뷰를 읽게 됐어요. 아이가 둘이나 있는 여성 연구자가 어떻게 일과 가정을 양립했나 하는 내용이에요. 한 마디, 한 마디가 저한테 많이 기억이 남았어요.

또 2013년에 학회 갔을 때, 룸 셰어를 통해 알게 된 스페인 연구자가 있어요. 당시에는 포닥이었고, 지금은 중국에서 그룹 리더를 하고 계세요. 이 분은 결혼을 안 했고, 아이도 없어요. 미국이나 유럽에선 보통 안정적인 상황이 된 뒤에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더라고요. 여성으로서 과학자의 삶을 살아가는데 어려움이나 장점들을 많이 이야기해주세요. 롤모델이라고 한다면 그 분이 롤모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회로: 비슷한 상황에 있는 분들께 조언 부탁 드립니다.

희경: 저도 뚫고 나가고 있는 입장이라 얼마나 도움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다들 그렇게 했으면 좋겠어요. 길은 항상 있으니까요. 먼저 지레 길이 없을 거라 우려해서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특히 외국으로 나가야 하면, 남편이랑 떨어져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 길은 항상 있으니까 정말 하고 싶은 일이라면 주변 상황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해보자고 말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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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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