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entists∩Feminists 페미회로 인터뷰 프로젝트 XVI: 고양이를 부탁해, 캣맘 그리고 물리화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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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2일 대전에서, 국내 5개 지역거점 과학기술중심대학(DGIST, GIST, KAIST, POSTECH, UNIST)의 페미니스트 연합모임 <페미회로(영문명 FemiCircuit)>가 공식 출범했다. 페미회로는 이공계 내 젠더 불평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지속 가능한 페미니즘을 실천하려는 모임이다.
(페미회로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femicircuit)

페미회로에서는 2017년 연중 프로젝트로 이공계 내 여성 과학자, 연구원들과 우리 주변의 페미니스트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이름을 얻었거나 얻지 않았거나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연구하고 고민하며 실천하는 이공계 여성 연구자들을 통해 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우리보다 조금 뒤의 미래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POSTECH 페미니즘 소모임 <포스텍 페미니즘>의 회원인 박인아씨를 만나보았다. 화학과 대학원생 2년차인 박인아씨는 페미니즘과 고양이에 관심이 많은 여성 이공계인이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박인아씨가 고양이를 비롯한 동물권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 그리고 결혼과 학업의 병행 등 여성 대학원생으로서 품고 있는 고민을 나누어보았다.

페미회로 인터뷰어는 강미량, 이재윤으로, 회로라고 표기했고 인터뷰이 박인아씨는 인아로 표기했다. 최종편집과 발행은 <걸스로봇>이 담당했다.

 

회로: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 드립니다.

인아: 안녕하세요, 저는 포항공대 화학과 대학원 이론물질설계 연구실의 석박 통합 2년 차 박인아입니다. 화학과 대학원이지만 실은 물리 쪽 연구에 더 가까워요

회로: 아 그렇군요. ‘이론물질설계’는 조금 생소한데, 혹시 어떤 분야인지 간단하게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지금의 연구실에는 어떻게 들어가게 되었나요?

인아: 이론물질설계 연구실은 이름 그대로 이론으로 물질을 설계하는 곳이에요. 이론을 바탕으로 물질의 특성을 프로그램을 이용해 예측하고 계산해요. 물질의 전자 구조를 계산하거나 상평형도를 그릴 수도 있어요. 이를 바탕으로 자화율(susceptibility)이나 유효 질량, 에너지 같은 원하는 물리량들을 계산해낼 수 있죠.

이 분야와 연구실을 선택한 계기는 조금 길어요. 화학과는 학부에서 분석화학, 물리화학, 유기화학, 무기화학을 배워요. 저는 그 중에서도 물리화학이 가장 재미있었는데, 학부 수준에서는 너무 수박 겉핥기식으로 배워서 아쉬웠어요. 슈뢰딩거 방정식을 풀 때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기보다는 결과만 외우라고 하거나, 텀심볼(Term symbol; 다전자 원자의 슈뢰딩거 방정식을 풀기 위해 도입한 각운동량 양자수)의 물리적인 의미를 파고들지 않고 텀심볼을 구하는 계산 방법을 알려주는 식이었죠. 수업도 그랬고, 화학과에서 교과서로 쓰는 책도 그랬어요. 물론 처음부터 물리적인 의미를 따지고 들어가면 기초 개념을 세우기 어려워서 그랬겠지만, 저는 왜 슈뢰딩거 방정식을 풀어야 하는지, 왜 텀심볼을 지금 배우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좀 더 심화된 수업인 대학원 양자역학을 들었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다른 과목을 배울 때는 어려우면 지치고 그만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았어요. 그런데 반대로 양자는 어려운 내용과 맞닥뜨리면 막 그 산을 오르고 싶은 거예요. 그때 아, 이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양자에 관한 연구를 하게 되었어요.

회로: 말씀을 들어보니 물리적 지식이 많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인아: 맞아요. 그래서 저도 물리학과 대학원 양자역학을 듣고 고체역학도 따로 공부했어요. 지금 있는 연구실에서 연구참여를 하다 보니까 물리적 지식이 많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물성을 계산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그 계산과정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물리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거든요. 하지만 물리를 좋아한다면 그리 어렵지 않게 도전할 수 있는 분야에요. 재미있어요!

회로: 저도 화학과인데, 사람들이 ‘화학과’하면 하얀 가운을 입고 실험하는 모습을 상상하잖아요. 지금 하는 이론연구분야는 완전 그 상상과는 반대인데, 학부 때 실험을 좋아하셨나요?

인아: 이론 연구실을 택한 이유 중 하나가 실험이 싫었기 때문이에요. 저는 실험 체질이 아니었어요. 실험 과목 성적은 잘 받았는데, 실험실에 갈 때마다 너무 피곤하고 졸리고 왜 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는 타입이었죠.

우리 학교 화학과 연구실 중 이론 연구실이 두 군데가 있는데, 한 분이 학부 지도교수님이었어요. 분야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지도교수님과 잘 맞아서 그분의 연구실을 선택하게 되었어요. 교수님께서 학생들을 존중해주시는 분이에요. 덕분에 좋은 지도교수님 밑에서 재미있게 연구하고 있어요.

회로: 어, 저도 실험실에 가면 그런 생각을 했는데, 동지시네요. (웃음) 저도 실험 과목을 들을 때마다 ‘어떻게 하면 이 실험을 빨리 끝내고 저녁 먹기 전에 여기서 나갈 수 있을까?’를 고민했던 것 같아요.

이제 저희 인터뷰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가볼게요. 페미회로는 이공계 내 여성 또는 페미니스트를 만나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데요, 이전에 인터뷰를 읽어본 적이 있나요? 또, 인터뷰에 응해주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인아: 인터뷰는 몇 번 읽어본 적이 있어서 알고 있었어요. 인터뷰에 응한 이유는 딱히 없는데…… (웃음) 사실 처음에 제안을 받았을 때 ‘왜 나지?’라는 생각을 하기는 했어요. 저는 제가 평범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주위에 물어보기도 하고, 다시 생각해보니 나에게서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제안을 했겠구나 싶더라고요. 나에게는 당연한 생각들이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인터뷰에 응했어요.

회로: 감사합니다. 사실 저는 학부 때, ‘물리화학은 여학생들이 잘 못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물리화학을 배우기 전에 그런 이야기에 지레 겁먹었던 기억도 나고요. 실제로 저런 이야기들이 연구실 진학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칠 것 같은데, 연구분야나 연구실에서의 여학생 비율이 어떻게 되나요?

인아: 저희 연구실은 대학원생 15명 중 4명이 여자고, 여자 박사님 한 분이 계세요. 총 5명에 성비가 2:1 정도라, 물리 분야 치고 많은 편이에요. 연구 분야의 성비를 말하기에는 아직 학회를 많이 안 가봐서 잘 모르겠는데, 저번에 갔던 학회는 연사 8분 중 한 분이 여성이었어요. 여학생은 거의 없던 것을 보면 아마 일부러 연사 중 한 분을 여성으로 모시는 게 아닌가 해요.

최근에 한국물리학회 정기 학술대회에서 여성 특별섹션을 따로 만들었어요. 여성 물리학자를 모셔와 연구와 삶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인데요. 이런 데 가보면 의외로 물리를 전공하는 여성들이 많다는 생각을 해요. 그래도 우리 랩에 여성이 많은 편이긴 해요.

회로: 그렇군요. 다른 분들의 말씀을 들어보면, 여성 비율이 수적으로 많이 적을 때 외로워하거나 성차별을 겪기도 하는데요. 혹시 비슷한 경험이 있나요?

인아: 랩 환경이 좋아서 그런지 아직 직접 겪은 적은 없어요. 여성 선배들께서 잘 챙겨주시기도 하고, 지도교수님의 사모님께서도 물리학 박사이셔서 교수님께서 잘 배려해주시는 것 같아요. 다만 저번에 랩 내 여성끼리 모여서 같이 식사를 했을 때 나눈 이야기가 기억에 남아요. 점심에 어딘가 밖에 나가서 식사를 할 시간이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이유가 얼른 먹고 들어가서 일을 해야 일찍 퇴근해서 애를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분들께서는 별 것 아닌 듯이 이야기하셨지만, 저에게는 꽤 충격이었어요. 저는 후에 결혼도 하고 싶거든요. 그런데 나도 전문직 여성이 되어 결혼을 하면, 아이를 돌보기 위해 저렇게 바쁘게 살아야 할까, 나의 삶도 누리고 가정도 챙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회로: 혹시 그때 느낀 감정을 조금 더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인아: 저는 나중에 엄마가 되었을 때, 제 커리어와 아이 둘 중에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고 싶지 않아요. 커리어를 아이보다 우선시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커리어를 포기하고 싶지도 않고요. 아이와 커리어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균형의 문제였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지금 선배들이 겪는 모습을 보면 좋은 엄마이면서 전문직에서 좋은 성과를 얻는 게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요. 워킹맘에게는 흔히 ‘나쁜 엄마’라는 수식어가 붙잖아요. 드라마 <미생>에서도 그렇게 그려지고요.

제 꿈은 ‘좋은 엄마’이면서 내 직업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전문직 여성이에요. 그러면 아이도 엄마가 느끼는 자부심을 배울 수 있겠죠. 그런데 솔직히 제가 노력한다고 이 꿈을 이룰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더라고요. 제가 본격적인 커리어를 쌓을 5~6년 후에 그만큼 사회가 바뀔까요?

회로: 본인 분야에서 이런 부분에서 조언을 받을 만한 여성 선배가 있나요? 롤모델도 괜찮고요.

인아: 제 롤 모델은 아버지셨어요. 저희 집은 아버지께서 자녀교육을 다 책임지셨거든요. 학교에 학부모로 오시는 것도, 학교 스케줄을 꿰고 밥을 챙겨주시는 것도 다 아버지셨어요. 그러면서도 교직에서나 사업에서 성과를 잘 내시는 모습이 제게는 멋져 보였어요. 그런데 아직 그런 여성 분은 만나지 못했어요. 제 분야의 학위를 딴 여성 교수를 거의 본 적이 없기도 하고요. 학회 연사님 중에 한 분을 뵀었는데, 아직 미혼이시더라고요.

회로: 본인이 결혼을 하고 싶은데, 아직 일과 양육을 잘 병행하고 있는 분을 보지 못하셨다는 거군요.

인아: 네. 아버지께서 교수시다 보니 주변에 여성 교수님들이 많아요. 제가 결혼을 할지도 모른다고 아버지께 말씀드리니, 주변 교수님들께 딸이 결혼을 언제 하면 좋을지 많이 여쭈어보셨어요. 그런데 절대 학위를 따기 전이나 자리를 잡기 전에는 결혼하지 말라는 대답을 많이 들으셨어요. 학생 때 결혼을 하면 아무리 시부모님들이 학생 부부의 편의를 봐준다고 해도 나중에 눈치를 많이 보게 되기 때문이래요. 시부모님을 챙기거나, 부부로서 해야 하는 의무들을 하다 보면 학업 외적으로 신경쓰이는 게 많아져서 자기 커리어를 망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죠. 실제로 어떤 교수님께서는 학생 시절 자기 랩에서 가장 연구를 잘하던 여선배가 결혼을 하고 학위과정을 그만두게 되었다고 말씀하셨어요. 이런 이야기를 듣다 보니, 아버지께서도 처음 제가 결혼 이야기를 꺼냈을 때는 별말씀 안 하셨는데 이제는 결혼을 늦게 하라고 하세요.

회로: 앞으로 결혼이나 진로에 대해 고민이 많으시겠네요.

인아: 제가 고민을 별로 안 끌고 싶어하는 성격이라 언젠가 하겠지, 라는 마음으로 살고 있어요. 그래도 빨리 결혼하고 싶은 마음도 있기는 해요.

회로: 저는 박사 학위를 받기 전에 결혼하는 게 더 좋다고 들은 적이 있는데, 꼭 그렇지는 않나 보네요.

인아: 저도 남성 선배에게 학생일 때가 부담이 적어 좋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그런데 막상 결혼하신 여성 교수님들 말씀을 들어 보니 그게 꼭 모든 사람에게 같은 정도로 도움이 되는 건 아닌 것 같더라고요. 물론 학생 때는 후에 커리어를 쌓는 시기보다 상대적으로 여유시간이 많아 부담이 적을 순 있어요. 하지만 결혼을 해서 집안일, 출산, 육아 등 기존에 여성에게 부과되던 일들이 바쁜 대학원생의 삶과 겹치게 되면 그건 여유시간이 많아지는 것일까요, 아니면 부담을 가중시키는 것일까요? 어른들께서 말씀하시기를, 남자들은 일찍 결혼하면 책임감이 생기고, 덕분에 마음잡고 일을 하게 돼 성과가 오른다는데, 그게 여자한테도 똑같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회로: 그렇군요. 예전에 이상희님을 인터뷰했을 때 관련 질문이 나왔었는데, 어떤 선택을 하든 후폭풍이 있다고 답하셨어요. 대학원생 때 하나, 후에 커리어를 쌓고 하나 다 장단이 있을 것 같네요. 그때 인터뷰하신 상희님께서 결혼상담을 속 시원히 도와드린다고 하셨으니 답답하실 때 한 번 연락을 해보시면…… (웃음)

이제 페미니즘 이야기로 넘어가볼게요. 포스텍 내 페미니즘 소모임인 <포스텍 페미니즘>의 구성원이시라고 들었습니다.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고 모임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인아: <포스텍 페미니즘>에는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고 나서 훨씬 뒤에 들어갔어요. 선뜻 <포스텍 페미니즘> 그룹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는 제가 직접 겪은 피해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작은 일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니, 머릿속 생각을 행동으로 바꾸고 싶더라고요. 특히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겪은 성폭행이나 성차별을 들었을 때, 그러지 않을 것이라 믿었던 친한 남학우가 페이스북에 폭력적인 글을 게시했을 때 무언가 해야겠다는 마음을 굳게 먹었어요.

제가 <포스텍 페미니즘>에 들어간 뒤에 저를 피하거나 뒤에서 욕하는 친구들도 있는 것 같긴 해요. 제가 페미니즘 모임에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계속 그랬듯이 유순하고 성격 좋은 친구로만 남았겠죠. 하지만 가만히 있지 않고 <포스텍 페미니즘>에 들어가서 공부하기로 마음먹은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아요.

회로: <포스텍 페미니즘>에서 기억나는 활동이 있나요?

인아: 사실 들어간 시점이 방학이라 학술 활동을 할 기회가 거의 없었어요. 이제까지 했던 활동을 정리해보자면, 이번 여름 방학에는 페미니즘 관련 영화를 보고, 섹스 토크를 했어요. 서로 부담 없이 이런 주제를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여서 좋았어요. 이런 이야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공간이 우리 학교에 또 어디 있겠어요.

그리고 원래 여름 방학 시작 전에 <Sex Itself: The Search for Male and Female in the Human Genome>(*Sarah Richardson, 2013)라는 책을 읽고 세미나를 진행할 소모임을 모집했었잖아요. 제가 그 소모임에 지원했었어요. 마침 방학이라 시간이 남아서 소모임 시작 전에 먼저 읽어보았는데, 재미있더라고요. <Sex itself>는 성염색체가 ‘여성’과 ‘남성’을 결정한다는 생각에 사회문화적 요인이 반영되어있다는 주장을 담은 책이에요. 과학을 전공하는 저희는 염색체 그 자체가 ‘성(sex)’인 것처럼 배우잖아요. 그 생각이 그렇게 확실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주장을 읽으니까 새롭더라고요. 그 소모임이 진행되지 않아서 아쉬웠지만, 인상 깊은 책을 알게 되어 좋았어요.

회로: 아, 사실 제가 그 모임을 제안했었는데요, 다른 소모임을 진행하느라 정작 그것을 못했네요. 혹시 겨울 방학 때 직접 소모임을 운영해보실 생각이 있나요? 저번 겨울에 진행되었던 세미나에도 오셨죠?

인아: (웃음) 네, 갔었어요. 그때 샌드라 하딩의 책을 바탕으로 젠더와 과학에 관한 기초적인 내용을 발제하셨죠? 그때도 흥미로웠어요. 그때는 <포스텍 페미니즘>에 들어가기 전이었는데, 세미나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어요. 서툴지만 서로 모르는 지식을 알려주고, 고민거리나 의문점들을 나누려 노력하는 분위기가요. 생각해보니 그때부터 <포스텍 페미니즘>에 들어갈까 고민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사실 제가 소모임을 진행할 능력이 될지는 모르겠어요.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한 번 고민해볼게요.

회로: 네, 꼭 해주세요! 이제는 동물권 이야기로 넘어가보겠습니다. 고양이 보호에 관심이 많으시다고 들었습니다. 인스타그램에 #사지말고입양하세요 #길냥이를지켜주세요 등의 해시태그를 단 사진을 올리고, 실제로 학내 길고양이를 입양하기도 하셨는데요. 고양이들의 동물권을 보장하는 것이 개인에게, 혹은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인아: 질문을 받고 나서 “의미가 있다”는 표현을 생각해봤어요. 어떤 도움이 되냐고 해석할 수도 있고 왜 입양을 했는 지로 해석할 수도 있으니까요. 저는 어떤 거창하거나 특별한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동물들은 물건이 아니고 살아 숨쉬는 생명이기에 존중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인간보다 하등하다고 생각해서 함부로 대하거나, 더럽다, 소름이 끼친다는 이유만으로 고양이들을 죽이고 싶다고 생각하는 건 말이 안 돼요. 우리 스스로가 소중하듯이 그들도 이 지구의 소중한 구성원이에요.

회로: 그러니까 인권을 지키는 것만큼이나 생명이 있는 동물을 존중을 하는 게 당연하다는 말씀이시죠?

인아: 그렇죠. ‘타초경사(打艸驚巳)’라는 말이 있어요. 풀을 때려 뱀을 놀라게 한다는 말로, 공연한 행동으로 남을 경계하게 만든다는 뜻인데요. 이 뜻과는 좀 다르지만, 저희 아버지께서는 묘에 가서 벌초를 하거나 과수원에서 제초 작업을 할 때 미리 풀을 때려 뱀이나 벌레들에게 도망갈 시간을 주셨어요. 저는 이런 행동들에서 생명에 대한 배려를 배웠어요.

회로: 그렇다면 동물 중에서도 고양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무엇인가요?

인아: 어렸을 때 아버지께서 동물들을 자꾸 집에 데려오셨어요. 귀여워서가 아니라, 누가 돌보아주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한 상태였기 때문이었어요. 교통사고를 당한 슈나우저를 길에서 발견하고는 동물병원에 데려가 치료한 뒤 입양 보낸 적도 있고요, 검정 비닐봉지에 담겨 공중전화박스에 버려진 새끼 닥스훈트를 데려와 살린 적도 있어요. 또 고속도로에 위태롭게 있는 새끼 고양이나 어미에게 버림받은 새끼 고양이를 구조한 적도 많아요. 꺼져가는 생명을 보고 마땅히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렇게 동물들을 구조하면서 점점 동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늘어났어요.

어렸을 때만 해도 강아지를 좀 더 좋아했는데, 저희 집에 반려묘가 들어오면서 고양이에 관심이 늘었어요. 설아와 꼼아라는 친구들인데요. 설아는 아버지께서 재직 중이셨던 대학교에 떠돌던 고양이였어요. 어미 고양이에게 버림받고 며칠째 눈밭을 떠돌기에 그대로 더 두었다가는 목숨이 위험하겠다 싶어서 데려왔어요. 꼼아는 설아 일이 있고 나서 1년 뒤에 데려온 아이예요. 아버지 지인이 딸이 키우고 싶다고 고양이를 한 마리 집에 데리고 갔는데, 아내가 반대해서 보호소에 버린다는 거예요. 그런데 보호소에서는 전염병 때문에 잘 죽거든요. 그래서 살리고 싶어서 데려온 친구가 꼼아에요. 이렇게 두 마리를 키우게 되면서 고양이에 대한 관심이 많이 생겼어요.

길고양이를 돌보게 된 건 한참 뒤에 자취를 하고 나서부터예요. 원룸 앞에서 음식물 쓰레기통을 뒤지며 회색이 다 된 상한 햄을 먹고 있는 고양이를 보고 불쌍해서 사료를 챙겨주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보니 위태롭게 살고 있는 길고양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더라고요.

회로: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네요.

인아: 아버지뿐만 아니라, 저희 친가 외가가 모두 동물에 거부감이 없어요. 외할머니께서도 마을 길고양이들 밥 챙겨주시고 그랬으니까요. 할아버지도 불쌍한 동물들 보살펴주시고. 이런 경험들이 제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어요.

회로: 최근에 학교를 떠돌던 유기묘(칠팔이, 오륙이)를 입양했다고 들었는데 잘 키우고 계시나요?

인아: 잘 있어요. 칠팔이와 오륙이는 학교에 유기되어 몇 달을 밖에서 보낸 삼색냥이와 그 아이가 거둬들인 새끼 치즈냥이인데요. 지금은 이름을 쩜이와 쭈리로 바꾸었어요. 쩜이는 지금 다이어트 중이에요. 학교에 있을 때 사람들이 준 밥을 너무 많이 먹어서 비만이 됐거든요. 쭈리가 쩜이를 쫓아다니면서 운동을 시키고 있죠. 둘 다 집고양이가 다 되어서, 낯선 사람이 들어오면 제 옷 밑으로 숨어요. 안 그래도 칠팔이 페이지 관리자에게 사진을 보냈는데, 안 올라왔다고 하더라고요.

회로: 랩으로 출근하는 사이에는 고양이들만 있을 텐데, 잘 지내나요?

인아: 네, 잘 지내요. 고양이들은 원래 독립적이에요. 자기가 원할 때만 사람에게 오고, 귀찮으면 가버려요. 또 야행성이라 저녁에는 밥 먹고 노는데 낮에는 하루 종일 자거든요. 주말 낮에 집에 있으면 애들이 어디 있는지도 모를 정도에요. 그래서 밤에 충분히 놀아주기만 하면 낮에 랩에 가는 건 괜찮아요.

회로: 최근 대나무 숲에서 교내 유기묘들에게 밥을 주는 것에 대해 논란이 불거졌었죠. 이런 논란에 대해 교내 구성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인아: 우선 저도 고양이 소음 때문에 잠을 못 잔다거나, 깜짝 놀란다는 등의 고충을 알아요. 저부터도 제 원룸 아랫동네에 고양이가 많아서 소리가 들리거든요. 그래서 저같이 고양이를 챙겨주는 사람들은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과 대화를 해서 절충을 하고 싶어해요. 그래야 고양이도 잘 사니까요. 그런데 참 어려워요. 그 이유 중 하나가 대부분의 컴플레인이 대나무숲에 올라간다는 점인데요. 익명이라 컴플레인 당사자를 찾을 수가 없어요. 교내 신문사에서도 길고양이 관련해서 인터뷰를 하려고 했었는데, 반대쪽 사람은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깊은 대화를 못 하니 절충안을 찾는 게 생각보다 많이 어렵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희도 노력하고 싶어요. 그런데 이게 불편하겠지? 하는 막연한 추측에 의해서만 일하다 보니까 갈등이 해결되는지도 모르겠어요.

요즘에는 지역 캣맘들(고양이를 돌보는 여성을 일컬음) 협조로 기숙사 지역 TNR을 하고 있어요. 아마 기숙사 지역에서 귀가 컷팅 된 고양이들을 여럿 보실 수 있을 거예요. TNR은 Track, Neutralization, Return의 약자인데요, 포획해서 중성화수술을 한 뒤 방사하는 거에요. 중성화수술을 하면 발정음이 사라지기 때문에 수면에 방해되는 소음이 줄어들어요. 또 발정기 동안 예민한 게 사라져서 고양이들끼리 싸우는 것도 덜해요. 그런데 이게 빨리 하고 싶다고 해서 빨리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주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길고양이를 싫어하거나 미워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농약을 먹이겠다느니, 없애버리겠다느니 하는 말은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 길고양이들은 우리가 싫다고 치워버릴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 생명이에요. 우리만큼이나 그 생명들도 생명으로서 존중받아야 하고, 말을 할 수 없다고 해서 혹은 쉽게 해를 가할 수 있다고 해서 함부로 해를 가해도 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회로: 지금 그럼 캣맘 활동을 하고 계시는 군요. 혹시 어려움이 있나요?

인아: 고양이를 돌보는 여자를 캣맘, 남자를 캣대디라고 해요. 그런데 캣맘만 욕을 먹고 폭력을 겪어요. 얼마 전에는 한 여성분이 캣맘인 걸 알고는 그 여성의 지역주민이 돌로 고양이를 찍어 죽이고는 캣맘 차에 버린 일이 있었어요. 고양이 밥을 주다가 아저씨나 할아버지들께 욕을 먹는 일도 다반사고요. 이런 문제를 캣대디는 거의 안 겪어요. 저도 처음에는 시무룩하기만 하다가 이제는 같이 싸워요.

흔히 겪는 오해들도 활동을 어렵게 해요. 밥을 주니까 마을이 더 더러워진다, 밥을 주니까 더 고양이가 꼬인다고 말을 해요. 그런데 사실은 완전히 반대에요. 밥을 주니까 고양이가 음식물 쓰레기통을 안 뒤져서 길바닥에 음식물이 너부러져 있지 않아요. 또 고양이 행동을 분석하는 전문가들에 따르면, 정기적으로 밥을 챙겨주면 고양이가 사람들 시선에 노출되는 시간이 줄어든대요. 고양이는 원래 잠을 많이 자는데, 밥을 먹지 못하면 잠을 못 자고 음식을 찾아 돌아다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정해진 곳에서 밥을 주면 그 밥을 먹고 잠만 자는 거죠. 그리고 고양이는 밤에 밥을 먹어요. 그래서 낮에 챙겨준다고 해서 주거지역에 많이 출몰하거나 그러지 않아요.

한 번은 또 이런 적이 있었어요. 제가 사는 동네의 음식물 쓰레기 통 주변에는 까치가 많아요. 제가 그 근처에 고양이 밥을 줬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아저씨 한 분께서 오셔서 그 밥 때문에 까치가 꼬인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 전에도 까치가 꼬였는데도 말이에요. 그런 말도 안 되는 억지 주장을 펼쳐서 고양이를 쫓아낼 때도 있어요. 그럴 때 힘들어요. 제 생각에는 생활하면서 불편한 점을 표출하기 쉬운 상대가 길고양이인 것 같아요. 지켜주는 사람도 별로 없지, 힘도 약하지.

회로: 혹시 이런 활동이 페미니즘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인아: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 굉장히 지배적인 위치에 있고 강한 권력을 갖고 있어요. 이런 불균형적인 권력 관계가 페미니즘에서 다루는 젠더권력 관계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남성과 여성의 관계를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바로 투영시켜서 생각하기는 어렵긴 하겠죠. 인간과 인간이 아닌 종이라는 요인이 하나 더 들어가니까요. 그래서 어느 정도의 불균형적인 권력 관계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우리가 가진 권력이 과하게 폭력적일 때, 그리고 그런 폭력적인 권력을 행사할 때 그것이 초래할 결과를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회로: 정말 관계에 대한 문제는 어려운 것 같아요. 타종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은 타인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지를 묻는 것만큼이나 어렵고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제 마지막 부분으로 넘어가볼게요. 지금 석사과정이라고 하셨는데, 향후 진로는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가요?

인아: 박사까지는 생각하고 있어요. 원래는 교수가 되어 연구나 교육활동을 하려고 단순히 생각했었는데, 요즘에는 좀 더 유연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 하는 연구 분야가 아닌 다른 학계도 괜찮고, 학계에 남더라도 교수가 아닌 다른 직업도 괜찮고, 아예 학계 밖으로 나가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박사 따기 전까지는 모를 것 같아요. 만약 박사를 따고 난 뒤에 맞는 분야가 있다면 박사 후 연구를 해볼 생각도 있어요.

회로: 향후 진로를 넓게 잡고 계신데요, 혹시 생각하고 계신 ‘다른 직업’을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인아: 너무 책 속에 빠져 있는 게 아니라, 과학을 공부해도 사회랑 맞닿아 있는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직업이요. 자리는 과학에 두더라도, 페미니즘을 비롯한 여러 사회문제들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고 싶어요. 어떤 식으로 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지만요.

회로: 그렇군요. 인아님의 앞길을 응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인터뷰를 읽을 후배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인아: 아무리 바빠도 잠깐이라도 쉬면서 주위를 둘러봤으면 좋겠어요. 특히 우리학교 학생들은 자기 공부나 과제 때문에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가 나중에 사회에 나가 중요한 일을 할 때 그 일들을 바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게 하는 건 책에서 배운 지식이 아니라, 내가 사회와 사람들에 대해 얼마나 많이 경험하고 이해를 하고 있느냐라고 생각해요. 저희 부모님은 항상 얼마나 빨리 가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처음에 맞는 방향으로 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씀하시거든요. 책 속에 파묻혀 공부만 하는 것보다는 다른 것에도 관심을 가지고 올바른 방향을 찾았으면 좋겠어요. 또 물리화학을 전공하고 싶은 여학생들에게도 한마디 하고 싶은데요. 겁먹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주위 보면 잘하는 여학생들도 많아요. 그리고 어차피 어려워하는 건 남학생들도 똑같으니까요(웃음). 잘 할 수 있어요. 제게 연락하면 좀 더 많은 이야기를 해줄게요!

 

박인아씨는 인간이 다른 동물에 가질 수 있는 권력을 생각하고, 우리의 행동이 사회에 끼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왔다. 이는 박인아씨의 말처럼, 자신의 연구분야에만 파묻혀 살기보다는 잠시 고개를 들어 주변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가능하였을 것이다.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종을 학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과학’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에 참여하는 시민의 의무를 망각하고 있던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고민해보며 인터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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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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