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entists∩Feminists 페미회로 인터뷰 프로젝트 XIV:이공계 여성들의 솔트 앤 페퍼, 백은옥 한양대학교 교수

2

지난 3월 12일 대전에서, 국내 5개 지역거점 과학기술중심대학(DGIST, GIST, KAIST, POSTECH, UNIST)의 페미니스트 연합모임 <페미회로(영문명 FemiCircuit)>가 공식 출범했다. 페미회로는 이공계 내 젠더 불평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지속 가능한 페미니즘을 실천하려는 모임이다.
(페미회로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femicircuit)

페미회로에서는 2017년 연중 프로젝트로 이공계 내 여성 과학자, 연구원들과 우리 주변의 페미니스트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이름을 얻었거나 얻지 않았거나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연구하고 고민하며 실천하는 이공계 여성 연구자들을 통해 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우리보다 조금 뒤의 미래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한양대학교 컴퓨터공학과 백은옥 교수를 만났다.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백은옥 교수는 연륜이 묻어나는 은발이었다. 특유의 너그러운 웃음을 보니 긴장이 풀어졌다. 백 교수는 미국 스탠포드에서 컴퓨터공학 박사를 마치고, 서울대 연구소 및 LG 종합기술원의 책임연구원, 서울시립대 교수를 거쳐, 한양대 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생물정보학(Bioinformatics)을 연구하는 연구자로서, 교수로서, 또 여성으로서 목격한 이공계 내 성차별을 풀어놓는다.

페미회로 인터뷰어는 김수연, 김한나로, 회로라고 표기했고 인터뷰이 백은옥 교수는 은옥으로 표기했다. 최종편집과 발행은 <걸스로봇>이 담당했다.

 

회로: 우선 전공, 학위,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간단하게 소개 부탁드려요.

은옥: 서울대 전자계산기공학과를 나와 계속 컴퓨터공학을 공부했고, 학위는 미국 스탠포드 대학에서 받았습니다. 당시 전공분야는 인공지능이었고, 귀국해서도 15년 가까이 인공지능 관련 일을 하다가 우연한 계기에 생물정보학을 시작해서 지금은 전적으로 생물정보학 연구를 하고 있어요. 생물에 관한 문제를 푸는 데 컴퓨터 공학을 활용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회로: 전산학에서 인공지능을 하시다가 생물정보학으로 옮겨가신 것 같은데요, 생물정보학을 연구하게 된 계기가 어떻게 되나요?

은옥: 전공을 옮긴 건 아주 우연한 계기였어요. 국내에 와서 4~5년은 이른바 “보따리장사”라고 부르는 시간강사를 하다가, 대기업 연구소에 들어갔어요. 한 5~6년 있다가 학교로 가게 됐어요. 다른 사람들 보다 7~8년 정도 늦게 교수가 된 거죠. 대학 나오고 바로 박사를 해서 학위는 빨리 받았는데, 원하는 직장(교수직)에 기회가 잘 안 와서 회사에 갔다가 다시 학교로 오게 된 경우였어요.

학교 와서 새로 연구 준비를 하던 중에 당시 IMT-2000 (international Mobile Telecommunications-2000의 준말로, 3세대 이동통신의 국제 표준이다.) 이라고 휴대폰 2G, 3G, 5G과 같은 시대적 버전인데요, 이와 관련해서 정부 펀딩이 있었어요. 그 IMT 기금으로 정부 각 부처가 다양한 연구를 했죠. 그 중 한 분야가 생물정보학이었어요. 스탠포드에서 친하게 지내던 선배가 IMT2000 연구과제를 하는데 도와줄 수 있냐고 해서 우연하게 시작했어요. 해보니까 재미있어서 점점 더 깊이 발을 들여놓게 됐고 십여 년 전부터는 생물정보학 연구에만 전념하고 있어요.

회로: 그 당시에 생물정보학이 많이 연구되는 분야였나요?

은옥: 많이 연구되지 않던 분야였죠. 우리나라에선 아주 초창기였기 때문에 전문가라 할만한 분들이 없어서 맨땅에 헤딩하다시피 했어요. 다행히 선진국에서 상당히 오래 전부터 휴먼 게놈 프로젝트 같은 준비들을 해오고 있었기 때문에, 공부할 것들은 많이 있었어요.

회로: 그렇다면 국내 생물정보학 분야의 선도주자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해당 분야에서 연구할 때 힘들었던 점이 있나요?

은옥: 연구하면서 힘들었던 점은 우선은 생물(과학)과 정보학(공학)의 융합분야여서, 둘 다 알아야 하는 점이지요.  또 한 가지는 공학이 과학에 비해 충분히 존중받지 못할 때가 있다는 점이에요. 공학을 과학의 도구로만 생각하는 분들도 있거든요. 초창기였던 10년 전 즈음, 서울대 모 교수님에게서 “연구 분야에서 아주 저명한 저널에 소프트웨어와 관련된 논문이 발표됐다. 그에 대한 설명과 함께 본인 연구분야를 발표해줬으면 좋겠다”고 연락이 왔어요. 논문 내용을 교류하는 일 자체는 좋으니까 하기로 했어요. 문제는 발표 후에 밥을 먹으며 가볍게 얘기하는 자리였어요.  “아 그러면 이거는 컴퓨터 엔지니어가 와서 한 일주일이면 금방 만들 수 있는 거네요?”라고 하시는 거예요. 이게 대체 무슨 소린가 싶었죠. 분석화학 쪽에서는 명성 있는 저널에 발표된 논문이었는데, 그게 실제로 만들어져서 작동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것 같았고, 무엇보다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발언이었어요.

과학과 공학의 관계를 하나의 생각으로 정리하는 것은 어렵겠지요. 하지만 공학을 도구로 보는 사람이 적지 않아요. 정반대로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당신이 없으면 안된다고 하는 분들도 있고요. 이럴 때는 역지사지를 좀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서로 존중을 좀 했으면 좋겠어요. 어느 분야든, 상대가 충분히 전문성있고 가치있는 일을 한다고 인정을 하면 같이 일하기가 쉬우니까요.

회로: 그 문제는 공학 분야이기 때문에 겪는다고 생각하시나요?

은옥: 그렇다고 생각해요. 컴퓨터 공학이라는 분야가 처음 생길 때, 기계과 사람들이 “아니 컴퓨터공학이 뭐 따로 필요해, 그러면 냉장고공학도 따로 있어야 하고 자동차공학도 따로 있어야 하는 거 아냐?”라고 했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었어요. 컴퓨터공학이 수학적 배경과 이론적 배경을 가진 새로운 분야임을 인정하지 않는 거죠.

회로: 혹시 전공을 바꿀 때 새로운 것을 한다는 두려움이나 걱정은 없었는지요?

은옥: 당연히 두려웠지만, 새로운 걸 배우는 기쁨도 있었어요. 과학과 공학이 참 다르다는 걸 많이 느껴요. 생물학이 최근에 와서 급격히 발전하면서 우리가 알던 것들이 한 쪽에서는 무너지고 새로운 이론이 만들어지는 상황이에요. 그래서 계속 배울 것이 많아서 재밌어요.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게 된 데는 두 가지 요인이 있어요.

첫째는, 좋은 동료가 있다는 거에요. 저는 처음에 함께 일한 교수님과 지금도 공동연구를 하는데, 대학원 다닐 때 힘든 시기를 나눴던 엄청 친한 사이라 걱정없이 무엇이든 물어볼 수 있어요. ‘이 질문을 했을 때 날 바보취급을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없이 아무 때나 전화해서 아무렇게나 물어봐도 두렵지 않은 상대가 있는 것은 행운이라 생각해요.

또 한 가지는 진입장벽이 있는 분야라는 점이에요. ‘이 분야는 들어가기가 어려우니 다른 사람은 잘 못 들어오겠다’ 하는 생각이죠. (웃음)  그런데 실제로 IMT2000 기금 연구 때문에 컴퓨터 공학하는 다른 사람들도 생물정보학 연구를 많이들 시작했었는데 해보니까 쉽지 않아서인지 많이 빠져나갔어요. IT 분야는 돈이 많아서 상대적으로 다른 쪽으로 쉽게 갈 수 있으니까 굳이 여기에서 고생할 필요가 없었던 거죠. 반면에 국내 제약회사는 이런 규모의 연구를 할만한 여력이 안돼서 이 분야 연구가 굉장히 적거든요. 산업 주도 연구가 적고 정부 주도 연구가 대부분이에요. 지금은 비교적 작은 커뮤니티에서 진행되는 편이에요. 하지만 저는 동전에 양면이 있듯이, 진입이 어려운 만큼 다른 사람들이 쉽게 못 들어온다는 점에서 매우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회로: 교수님께서는 상당히 많은 직장을 거치셨네요. 서울대 컴퓨터신기술공동연구소, LG 종합기술원, 서울시립대를 거쳐 현재는 한양대학교에서 교수로서 연구하고 계신데, 현재 위치에서 연구하는 것은 지난 직장/연구환경에 비해 어떻게 다른 지, 장단점 등을 들을 수 있을까요?

은옥: 우선 회사는 회사가 필요로 하는 것을 해야 하니까 내가 하고 싶은 연구를 마음대로 할 수는 없어요. 그런데 자신이 하고 싶은 연구와 회사가 원하는 연구가 잘 맞으면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어요. 모든 지원을 다 해주니까요.

학교에서는 행정적인 서포트가 회사에 비해 잘 안 돼요. 학과 단위 행정직원도 정규직이 없는 학교가 많아요. 그래서 많은 부분을 학과장 교수 등이 맡아야 하는 경우가 많죠. 학교에서는 자기가 직접 펀드를 받으러 다녀야 하는데 비해 회사에서는 재정적, 행정적 지원을 든든하게 해주지요. 회사에서는 내가 완전히 기술개발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연구 정당화는 내 위에 있는 사람들이 해주기도 해요. 그게 임원들 역할이죠.

근데 자신이 원하는 연구와 회사가 원하는 연구가 잘 맞기가 쉽지가 않아요. 세상이 계속 바뀌어서 예측하기도 쉽지 않고요. 회사도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 잘 모르기 때문에,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연구를 하려면 회사에 계속 있기는 쉽지 않죠. 자신이 원하는 것에 따라 어디가 맞느냐는 다를 수 있어요.

시립대에서 한양대로 옮기면서 굉장히 드라마틱한 변화를 겪었어요. 시립대는 공립학교이고 한양대는 사립대 중에서도 규모가 크고 설립자의 영향력이 살아있는 학교에요. 그래서 공립과 사립의 양 극단을 보고 있죠. 결국 이것도 나에게 무엇이 잘 맞는가의 문제인데, 공립학교에서는 되는 일이 없어요. (웃음) 학교에서 의지를 가지고 어떤 일을 추진하기는 매우 어려운 반면에, 어느 한 개인이 극렬하게 반대하면 추진되던 일도 엎어지기가 쉬워요. 지금은 떠나온 지 6년쯤 되어서 어떨지 모르겠지만 학교의 규모가 작고 분위기도 가족적이어서 누구든 뭐가 마음에 안 들면 직접 총장님께 찾아가서 불만을 토로하곤 했어요. 가족이 가지는 장단점을 학교에서 보는 특이한 상황이죠.

한양대는 학교규모도 다르고 운영 방식이 매우 회사같아요. 총장님이 한 달에 한번 모든 교수들한테 경영 성과 보고서를 보내요. 학과 또한 총장님께 학과발전계획을 보고하고 보직교수들 앞에서 발표해야 해요. 굉장히 기업형이죠. 모든 것을 수치화해서 불편하기도 하지만 학과, 교수에 대해 합리적인 평가시스템이 있어서 편안한 점도 있어요. 인사고과 받듯이 평가를 받고 그에 따라 인센티브도 학과별로 다르게 줍니다.

회로: 시립대에 계실 때는 컴퓨터공학과가 아니라 기계정보공학과에 계셨지요?.

은옥: 네, 맞아요. 서울시립대에 처음 갈 때는 속했던 학과가 기계정보공학과였어요. 제 전공이 메이저인 학과가 아니었죠. 여교수님들을 잘 살펴보면 자신의 실제 전공과 어긋나 있는 곳에 재직하고 계신 경우가 종종 있어요. 한번 유심히 보세요. 예를 들면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는데 멀티미디어 학과, 미디어융합학과 등 학교에서 새로운 걸 시도하면서 만든 학과에 소속된 분들이 적지 않아요. 예전에 직업능력개발원에서 자신의 직무가 전공분야와 얼마나 맞는지를 조사한 결과를 본 적이 있는데, 여성이 전공을 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남성보다 많아요. 저도 시립대에서 한양대로 옮기면서 제 전공인 컴퓨터공학과에 재직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런 면에서 한양대에 와있는 게 더 행복하긴 하네요.

회로: 아, 그런 점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요. 말씀을 듣고 보니 교수 임용 과정에서 겪으신 어려움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은옥: 당연히 많았죠. 학위받고 와서 4-5년 동안 교수를 하려고 시도하던 시기에 겪은 일이 최악이었어요. 25년전이니까 지금하고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죠. 당시에 “교수를 뽑을 때 서울대 나온 여자는 늘 들러리다.”라는 자조적인 말이 있었어요. 학과에서 뽑고 싶은 남자 후보를 총장 면접에 올릴 때, 같이 면접 볼 다른 후보로 정말 경쟁이 될 만한 남자를 올리지 않고 경쟁력이 있는 서울대 출신 여성을 올린다는 거에요. 그렇게 하고 상대 후보가 여자니까 남자를 뽑는다고 하면 별 문제가 없다는 얘기이지요. 실제로 면접을 가면 별 소리를 다 들어요. “애가 어린데 야간 수업을 할 수 있냐”, “목소리가 작아서 강의가 들리겠냐” 등등. 지금은 다른 남자 교수님들은 수업시간에 마이크를 써도 저는 거의 안 써요. 말도 안 되는 억지였지만, 그런 질문을 공공연히 하는 시대였어요.

회로: 정말 어려움이 많으셨네요. 그러고 보니까 제가 재학 중인 카이스트를 보면 50대 여교수님은 찾기 힘든 것 같아요. 저희 과는 최근에 부임하신 분들 중에 여자 교수님이 있으시고요, 어느 정도 연륜 있으신 교수님들은 전부 남자분들이세요. 그걸 보면 교수님 세대에선 성별로 인한 유리천장을 극복하기가 더더욱 힘드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또, 아무래도 이렇게 어딜 가나 여성이 소수이다 보니까 교수 임용이 되었다고 문제가 없어지는 건 아닐 것 같아요. 교수로 재직하면서 겪는 애로사항이 있으신지요?

은옥:제일 어려운 점은 너무 많은 일에 참여를 요구 받는다는 거예요. 지금도 서울시 성평등위원회에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과학기술계에서 온 사람이 없어서 할 수 없이 가요. 이렇게 여성계 요구가 있으면 참여해야 하고요. 이공계에서는 학회든 연구조직이든 여성으로서의 목소리를 내야 하는 자리에 가면 대개 여성은 저 하나에요. 제가 안 가면 그 자리에 다른 여성을 채워넣는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다 참여하도록 노력하게 돼요. 어떤 방식으로든지 여성이 목소리를 낼 만한 자리가 줄어들면 안되잖아요. 근데 또 제 연구와 강의를 게을리할 수는 없으니 힘들죠. 사회적으로 요구를 받는 역할이 너무 많아요.

한 가지 사례를 더 들자면, 작년에 교육부에서 하는 “여성공학인재양성(WE-UP) 사업”이라고 공대 여학생을 지원하는 사업 계획이 나왔어요. 그런데 그 계획서를 쓰자면서 공대에 있는 여교수만 전부 불러모은 거에요. 왜 여학생 지원 사업에 대한 계획서를 여교수들만 써야 하느냔 말이에요. 한양대 공대 교수가 300명이 조금 안 되는데 정년트랙 여교수는 6명 밖에 없어요. 그럼 여학생들은 대부분 남교수 밑에서 공부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남교수님들이 더 참여해야 할 사업인데, 너무 당연하다는 듯 여자 교수님들만 불렀다는 것이 너무나 성차별적이었어요.

회로: 정말 여성 전문가로서 살아가기 어려운 세상이네요. 지금까지 여성으로서 교수 임용 과정과 교수로서 지내면서 겪었던 어려운 점들을 말씀해주셨는데요, 혹시 그 이전 학과/진로 선택을 하실 때에도 교수님의 젠더가 영향을 미친 점이 있나요?

은옥: 대학을 졸업하기 전까지는 자신이 차별받고 있다는 각성 자체를 못했어요. 여중, 여고를 다녔기 때문에 그전에는 그럴 일이 없었고요. 또 학부 때는 여학생이 대부분 공부를 더 잘했어요. 대한민국에서 학생은 공부를 잘하는 게 기득권이니까 그 권위에 도전을 하지 않아요. 그래서 늘 스스로 주류라고 생각하고 살았죠. 남학생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지라도요. 그때는 차별받고 있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어요. 처음 성차별에 대해 인식하게 된 것은 유학가서 박사과정 여학생들끼리 모여서 점심식사하는 <브라운 백 런치>에서였어요. 실리콘밸리가 스탠포드 근처에 있으니까 그쪽에서 일하는 선배 여자를 모셔서 얘기 듣는 등 서로의 얘기를 나누는 자리였어요. 거기에서 각자의 경험담을 나누면서  ‘아 세상에 이런 차별이 있구나’하고 그때 처음 깨달았어요. 그러니 대학에서 학과를 고를 때는 제가 여자라는 것이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죠. 여자가 살아남기 힘든 분야라는 걸 잘 알았다면 공대를 안 갔을 것 같아요(웃음). 그리고 세부전공을 고를 때에도 성별이 영향을 미친 건 전혀 없는 것 같아요.

생물정보학을 하면서 좋았던 점은 생물학 쪽에는 여자분들이 많다는 거예요. 너무 놀라워요. 이젠 학회갈 때 누구랑 방을 같이 쓰자고 할 수도 있고, 음악회를 같이 보러 가는 등 여성 학자들끼리의 커뮤니티가 생길 수 있는 게 너무 기뻐요. 여성의 숫자가 주는 차이를 너무나 절실하게 느꼈어요. 기쁘더라고요.

회로(수연): 단순히 숫자만으로도 애로사항이 해결되는 군요.

회로(한나): 네 맞아요! 여학생 숫자는 정말 중요해요. 연구실에 여학생이 한 명 있는 곳과 두 명 있는 곳, 세 명 있는 곳의 경험이 다 달라요. 저는 연구실에 여자가 저 혼자여서 말 한 마디 할 때도 조심하게 되고 별 생각 없이 한 행동인데도 이상하게 받아들여 지는데, 두 명만 돼도 훨씬 낫더라고요.

회로(수연): 지금까지 이야기해주신 것을 보면 사회에 존재하는 성차별에 대해 많이 인식하고 계시고, 또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셨던 것 같아요. 혹시 교수님 스스로를 본인을 어떻게 정체화 하시는지요? 혹시 페미니스트라고 정체화 하시는지 궁금해요.

은옥: 안 그래도 페미회로와 인터뷰를 하기로 한 후에 ‘음… 아, 내가 페미니스트인가? 그런데 페미니스트가 뭐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인터넷에 찾아봤어요. 크게 두 가지 뜻이 나오던데요, 일단은 여성이 받는 억압을 인식하고 구속으로부터 해방하기 위한 운동을 하는 사람. 또 하나는 모든 종류의 성적인 차별을 일으키는 제도, 정치, 관념 등을 타파하려고 하는 이념을 추구하는 사람. 이렇게 운동과 이념에 대한 뜻이 나오던데, 굳이 저보고 페미니스트라고 묻는다면 “생활페미니스트”라고 해야 할 것 같아요.(웃음) 저희 때는 한 번도 여성학을 공부해본 적이 없어요. 근데 그렇다고 해서 여성이 억압받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나, 여성억압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요. ‘여성이 겪는 차별은 옳지 않고, 정의롭지 않다. 그렇기에 다같이 행복한 정의로운 세상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라고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당연히 페미니스트가 맞는가 싶은데요. 어떤 이론을 바탕으로 여성주의 운동을 했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저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는 것에서 조금 고민이 되는 거 같아요. 하지만 장애, 성적지향, 성별 등 모든 종류의 차별에 반대하고, 그걸 깨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회로: 저희도 그런 고민이 있어요. 비전공자로서 페미니스트라고 할 수 있는가.

은옥: 맞아요. 페미니스트로서 지식, 인식, 사회 현황도 충분히 잘 알고 있는 게 아닌 것 같기 때문에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규정하기가 망설여져요. 현실에서 성적 차별이 옳지 않다고 인식하고 이를 벗어나려는 행동에 동참하는 건 맞는데, 체계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요즘 “생활보수”라는 말이 있던데요, 그에 비유하자면 저는 “생활페미니스트”다, 뭐 그렇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웃음)

회로(수연): 이게 하나의 학문이다 보니 거리감이 들어요. 운동으로서 생각하면 지향하는 것 만으로도 운동에 힘이 되기 때문에 페미니스트 선언을 하지 않았나 싶어요. 일단 이 분야에서 비전공자로서 비전문적이라는 죄책감은 접어두고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회로(한나): 저는 대학원을 다니면서 페미회로 활동을 하고 있어요. 페미니즘으로 무장한 공학도가 되고자 하는 데요, 페미니즘에 신경을 쏟다보면 전공공부에 치이고, 전공공부에 힘쓰다보면 페미니즘 관련 공부와 활동이 소홀해 지는 것 같아요. 페미니스트 이공계 대학원생으로서 시간과 정신적 에너지 안배에 고민이 많이 들어요.

은옥: 저도 지금까지도 고민을 하고 있죠. 조언을 한다면, 나이대에 따라서 그때에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있는 것 같아요. 전공 공부와 여성학 공부 모두 지금하고 그만둘 것이 아니니까요. 앞으로 쭉 끌고 간다고 생각을 해보면, 대학원 다닐 때 공부를 제대로 안하면 끝까지 갈 수가 없잖아요. 어디서 균형을 잡느냐가 쉽지는 않겠지만, 지금 하는 분야에서 커리어를 쌓으려면, 전공공부에 지장을 주지 않는 정도로 잘 해야 해요. 제 삶을 생각해 보면 20대에는 정말 공부만 했어요. 30대에는 애키우며 직장 다니느라 아무 기억도 안 나요. 남편이 많이 도와주는 사람인데도 살아남느라 아등바등하고, 문화적으로도 단절됐었다고 생각해요.

그 후에 여성 관련 활동을 하고 실무를 했던 게 40대에 와서부터였어요.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라고 주로 대덕연구단지의 박사급 여성들의 모임에서 10여년 간 실무적인 일을 했고, 그 후에 한국정보과학회에서 여성위원장,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등에서도 활동했어요. 50대에는… 어떻게 하고 있지? (긁적) 제 성격이 계획하고 사는 사람이 아니어서요. 여성주의 활동을 하면서 40대에는 실무적인 일을 맡았다면 50대에는 리더를 해줘야 맞는데, 계획을 안하고 살다보니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도와주는 건 할 수 있겠다 싶어서 다방면으로 도우려 하고 있죠.

그 밸런스는 자기가 찾아야 해요. 어디가 적절한 지점인가를 시도해 보면서 장기적으로 계획할 필요가 있어요. 지금 안 하면 나중에 못하는 일이 있다면 그걸 놓치면 곤란해요. 지금만 보지 말고 길게 보면서 계획하면 밸런스를 잡기 쉬울 것 같아요.

회로: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저 뿐만 아니라 자신의 본업과 페미니즘 활동 사이에서 갈등을 느끼는 많은 분들이 이 조언을 참고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밸런스를 잘 맞춰라.”

공대에 계시다보니 학생들 또한 성비가 불균형할 텐데요. 그런 상황에서 학생들 지도할 때 여교수로서 특별히 신경쓰는 부분이나 애로사항이 있는지 궁금해요.

은옥:사소한 예를 들면. 엊그제 학과 워크샵이 있었는데 네 팀으로 나눠서 족구를 하게 됐어요. 그럴 때면 각 팀에 여학생을 반드시 넣자고 하는 게 좋을지 아닌지, 굉장히 고민스러워요. 그런 말을 안 하면 당연히 남학생끼리 할 테고요. 근데 여학생을 넣자고 하면 하고 싶지 않은 여학생들이 억지로 끌려나올 가능성도 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어떤 방식이 바람직한 건지 고민스럽고 어려워요.

수업시간에도 저는 질문을 많이 하는데, 여학생에게 질문을 하면 더 당황하는 경우가 많아요. 여학생들은 평소에 질문을 덜 받는가 봐요. 그래서 질문하는 학생을 지목할 때는, “이쪽 줄에 앉은 학생들 뒤에서부터 한 명씩 답해볼까요.” 하면서 결국은 랜덤하게 제 편견이 영향을 주지 않도록 해요.

그런 여러 가지가 고민이죠. 틀림없이 여학생이 소수이고, 어떤 면에서는 보호와 배려를 받아야 하는 면이 있어요. 그런데 보호와 배려가 또 너무 강조되면 정말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만들기 때문에, 반드시 균형을 잘 잡아야 하는데 또 그게 너무 어렵죠. 그래도 남교수들은 절대 보지 않는 것들 – 예를 들어 족구 할 때도 여학생 참여 문제가 안 보였을 거에요 – 을 여교수로서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이니까, 한 번쯤은 그런 점들을 알리는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야 해요. 족구는 결국 같이 하기는 했어요. 여학생들이 소극적이더라도 어쩔 수 없이 본인에게 공이 오면 당황하다가도 또 잘 해내기도 하더라고요. 결과적으론 좋았어요.

회로: 학부생들을 대할 때 고민하는 점들을 얘기해주셨는데요, 대학원생을 대할 때는 어떤 고민이 있으신지 궁금해요.

은옥:학생들이 질문하는 걸 어려워하는 게 고민이에요. 기본적으로 학문을 하는 사람은 생각이 자유롭지 않으면 학문을 할 수 없어요. 본질적으로 학문은 새로운 걸 생각하고 기존의 틀을 깨야 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학생들이 그런 틀을 벗어나기를 기대하는데 틀을 깨기가 참 어려워요. 질문 좀 하라고 애걸복걸을 하는데도 질문을 안해요! 대학원 학생들과 논문을 같이 읽으면 논문내용에 대해서 비판적인 토론을 하고 자기가 하는 연구랑 연결지어서 참고/발전할 게 있을지 얘기해보고 싶은데, 말하기 자체를 두려워하더라고요. 한국의 초중고 교육을 생각하면 학생들의 사고가 어느 정도 갇혀있는 것은 이해되는데, 그걸 깨는 게 참 어렵더라고요. 어떻게 도와줄지 모르겠어서 제일 고민이에요. 그게 돼야 공부를 잘할 텐데.

또, 학생들이 교수를 너무 어려워하고 떠받들려고 해요. 학생들이 항상 제 가방을 들어주려고 해요. 제발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에요! 학생들이 교수를 위해서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좀 건방져도 괜찮으니까, 아닌 건 아니라고 얘기하고 권위에도 좀 도전했으면 좋겠어요. 학문을 하는 것 자체가 권위에 도전하는 거잖아요. 스스로는 그런 분위기를 충분히 만들려고 노력한다고 생각하는데 학생들이 그렇게 안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저는 재미있자고 농담으로 한 말인데 학생이 죄송하다고 답하는 경우도 있어서 좀 안타깝고요. 함께 공부하는 인간 대 인간으로 편하게 지내는 사이였으면 좋겠는데 그게 잘 안되네요.

회로(수연): 대한민국 전체적인 분위기가 군사주의, 위계질서를 강화하죠. 저희 때만 해도 체벌 시스템이 있었으니까요. 수업 시간에 질문하면 튀는 학생이 돼서 눈치를 받고, 스스로 검열하게 돼요. 선생님께서 질문을 독려해도 학생들끼리의 위계가 또 있어서. 다른 학교 얘기 들어보니까 선후배간 위계질서가 상당하더라고요. 그걸 내면화하면서 평등한 관계의 형성이 힘들지 않나 싶어요.

회로(한나): 저희 연구실도 좀 그래요. 교수님이 정말 좋은 분이시고, 어떤 권위를 행사하려는 행동은 안하시고 학생들을 정말 인간적으로 대해주세요. 그런데도 처음 연구실 갔을 때 정말 놀란 게, 선배들이 교수님을 너무 어려워하는 거에요. 아무래도 교수가 학생의 졸업과 진로 등을 좌우할 수 있다는 한국 대학원의 분위기가 있다보니까, 학생 입장에서 교수 대하는 것이 너무 어려울 수 밖에 없는 부분은 있는 것 같아요.

회로: 좋은 얘기 많이 해주셨는데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신지요?.

은옥:이 나이에 계획이요? (웃음) 요새 보는 티비 프로 중에 “효리네 민박”을 되게 재밌게 보는 중인데, 아이유 덕분에 이효리가 자기가 천천히 내려오는 연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얘기하는 장면이 있었어요. 저도 이제 슬슬 내려갈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앞으로 한 5년은 계속 열심히 하다가, 60대가 되면 슬슬 내려갈 준비를 해야죠. 그 사이에 뭘 잘 해야 할까 생각을 해보면 사회참여를 좀더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제가 사회적 역할을 하기 시작했던 게 40대니까 사회에 진 빚이 많아요. 제가 20대일 때 주변에 학생운동을 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그 사람들 덕분에 우리 사회가 민주화가 되어서 이런 삶을 살고 있는 거니까요. 내가 대학교 다닐 때가 전두환 정권 때여서 엄청나게 데모를 했던 시기였는데도 저는 학교 다니는 내내 민주화운동, 광주에서 일어난 일 등에 대해서는 잘 몰랐어요. 유학 나가서 처음 알았죠.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학생들은 힘이 없는데 저렇게 운동해서 무슨 영향을 미칠 수 있나, 나중에 사회 나가서 힘이 있을 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 맞지 않나’하는 어줍잖은 생각을 했었어요. 그렇게 스스로 합리화하고 내 공부만 신경썼죠. 그러니까 그 때의 내가 미루어둔 사회적 책임이 지금의 나에게 있는 거에요.

그 동안은 주로 여성과학기술인과 관련된 일을 했어요. 사실 여성과학기술인 관련 활동을 하면서 고민을 했던 게 ‘여성’도 소수고 ‘과학기술인’도 소수인데 ‘여성과학기술인’만의 고유한 이슈가 있을까? 하는 점이죠.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너무 소수여서 목소리도 잘 안 들리는 것 같고요. 최근 “변화를 위한 과학기술인(Engineers and Scientists for Change, ESC)”라는 단체가 만들어지면서 저와 생각이 비슷한 과학기술인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리가 만들어졌어요. 스피커가 커졌다는 느낌이 들어서 굉장히 좋아요. 당분간은 그런 활동들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회로: 마지막으로 이공계에서 전문가가 되기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은옥:우선은 여학생들이 겁내지 않고 엔지니어로 더 많이 들어왔으면 좋겠어요. 또 한 가지 조언을 하자면, 학생들이 자신의 커리어를 잘 계획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제가 그런 걸 못했기 때문에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었어요. 늘 사람은 자기가 못 간 길을 아쉬워하니까요.(웃음)  저는 그냥 주어진 상황에서는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지만 상황을 개척해야겠다는 생각은 많이 못하고 살았어요. 자신이 뭐가 되고 싶은지 생각해보고, 뭐가 필요한지 스스로 알아보고 고민하고 조금 더 야망을 가지고, 커리어를 계획했으면 좋겠어요. 모든 일이 계획한대로 되지는 않지만, 계획이 있고 없고는 매우 다르니까요. 여성이라는 이유로 주저하지 말고, 도전적으로 커리어를 쌓아나가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얘기하면, 살다보면 어려울 때도 있고 굉장히 잘 나갈 때도 있는데, 자기자신에게 좀 더 너그러웠으면 좋겠어요. 어떤 시기에는 살아남기만으로도 벅차서,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 수밖에 없는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살아남기만 한 것도 기특하다’ 이런 생각을 하면 좋겠어요. 오히려 조심해야 할 때는 잘나갈 때에요. ‘왜 이렇게 잘되지?’ 잠깐 멈춰 서서 혹시 뭐 잘못하는 게 없는지, 어떤 걸 조심해야 하는지 생각해봐야 해요. 살다보면 업 앤 다운이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걸 받아들이면 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나 싶어요.

회로: 좋은 말씀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백은옥 교수는 이번 인터뷰를 통해, 50대 여성 공학인으로서의 우여곡절을 들려주었다. 전례가 없기에 듣기 힘들었던 이야기였기에 더욱 소중한 시간이었다. 여성으로서 과학/공학 분야의 전문가로 커리어를 쌓아간다는 것, 예전이나 지금이나 녹록치 않은 일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한다. 그야 말로 “살아남았던 것만으로도 기특한”일이 아닌가 싶다. 더 이상 유리천장도, 그 어떤 성차별도 없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기다리며, 그때까지 모든 여성과학기술인들이 무사히 살아남기를 바라며 인터뷰를 마무리한다.

Share.

About Author

Girls' Robot

댓글 2 개

댓글 남기기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