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entists∩Feminists 페미회로 인터뷰 프로젝트 XIII:인류의 조상이 남자뿐일리가 있나요? <인류의 기원> 이상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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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2일 대전에서, 국내 5개 지역거점 과학기술중심대학(DGIST, GIST, KAIST, POSTECH, UNIST)의 페미니스트 연합모임 <페미회로(영문명 FemiCircuit)>가 공식 출범했다. 페미회로는 이공계 내 젠더 불평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지속 가능한 페미니즘을 실천하려는 모임이다.
(페미회로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femicircuit)

페미회로에서는 2017년 연중 프로젝트로 이공계 내 여성 과학자, 연구원들과 우리 주변의 페미니스트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이름을 얻었거나 얻지 않았거나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연구하고 고민하며 실천하는 이공계 여성 연구자들을 통해 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우리보다 조금 뒤의 미래를 살펴보고자 한다.

하반기 첫 인터뷰에서는 미국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 대학교 인류학과 이상희 교수를 서면으로 만나봤다. 2015년, <과학동아> 전 편집장 윤신영 기자와 함께 쓴 <인류의 기원>은 국내 과학도서로는 이례적으로 영어, 중국어, 대만어, 일본어, 스페인어, 그리고 그리스어판으로까지 저작권을 수출해 큰 화제가 됐다. 이 교수는 인류 진화의 주역으로 남성 조상만을 그려왔던 학계의 풍조에 의문을 제기해 왔는데, 10쇄부터는 남성 위주 일러스트도 교체하기로 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아직 생소한 고인류학은 어떤 분야인지, 고인류학계의 분위기는 어떠한지, 남성 중심 고인류학을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들어봤다.

이상희 교수는 서면 인터뷰 첫머리에서, 교수님 대신 이름 끝에 ‘님’만을 붙이는 평등한 화법을 시도해보자고 요청했다. 그의 뜻을 따르기로 한다. 
페미회로 인터뷰어는 곽희나, 조희수, 지은경으로 회로라고 표기했고, 인터뷰이 이상희는 상희로 표기했다. 검수는 강미량, 김한솔, 성기봉, 은윤혜 검수팀이, 최종편집과 발행은 <걸스로봇>이 담당했다.

ⓒ (주)사이언스북스, 2015

회로: 상희님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상희: 이상희입니다.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 대학교 인류학과 정교수입니다. 인류의 진화에 관한 연구와 강의를 합니다. 학부는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석·박사학위는 미국의 미시간 대학교에서 받았습니다. 그 후에는 일본의 소켄다이(総研大, 総合研究大学院大学)에서 약 2년 동안 포닥 (postdoctoral researcher; 박사후 연구원) 생활을 했습니다.

회로: 고인류학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상희: 고인류학은 인류가 어디서 왔고 왜 이런 모습으로 여기에 있는지 진화적 이론과 방법론으로 연구합니다. 전통적으로는 화석이 주된 자료였는데 지난 20-30년 동안 유전자가 놀라운 속도로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회로: 고인류학과 고고학, 인류학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상희: (미국의 인류학을 기준으로 설명하면) 인류학은 인류에 대해 탐구하는 학문인데 범위가 무궁무진하게 넓습니다. 인류학은 사회문화인류학, 고고학, 형질인류학(요즘은 생물인류학으로 학문의 이름이 바뀌고 있습니다), 언어인류학, 이렇게 네 분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사회문화인류학은 사회와 문화 전반을 연구하고, 언어인류학은 언어를 중심으로 문헌을 주로 연구하는 분야인데 사회문화인류학과 비슷합니다. 인간의 문화 활동 자체가 언어로 이뤄지기 때문이죠. 고고학은 옛사람의 자취나 흔적을 연구합니다.

형질인류학은 사람의 몸을 연구합니다. 현재 살고 있는 사람, 옛 사람, 그리고 사람이 속한 영장류까지가 연구 범위입니다. 고인류학은 형질인류학의 한 분야입니다. 고인류학이나 고고학 모두 옛 사람을 연구하는데 고고학은 사람이 남긴 자취를 연구하고, 고인류학은 사람의 몸 자체를 연구합니다. 옛 사람의 몸 중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이 화석이죠. 화석이 된 뼈와 이의 생김새, 그리고 거기서 추출되는 유전자를 분석합니다.

회로: 흔히 ‘고인류학에는 인문학과 과학이 모두 필요하다’고 하는데, 어떤 점에서 그러한가요?

상희: 고인류학은 고생물학과 인류학을 아우르는 학문으로, 자연과학인 고생물학 이론과 방법론을 잘 알아야 하고 가설을 세우고 자료를 통해 통계학적으로 검증을 해나가는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때문에 전통적인 고인류학은 인문학 보다는 과학적인 속성이 부각되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제가 대학원을 다니던 1990년대 이후 미국 인류학에 포스트모더니즘을 위시한 인문학 바람이 강하게 불면서 반과학 정서가 커지고 과학의 객관성과 합리성에 대해 근본적인 의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과학이 인류에게 도움만 된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와 자본주의 아래서 계급 착취와 소수자 억압에 일조를 했다는 비판을 받았죠.

저는 미국에서 대학원 과정을 거치면서 계속 과학적인 사고를 훈련 받았고 과학적인 연구를 해오면서 과학의 합리성과 자료의 객관성을 의심하거나 비판하는 목소리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습니다. 아마도 제가 원래 문과 출신(고고미술사학과)이었기 때문에 생소했던 과학적인 사고를 체화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생각이 조금 달라지고 있어요. 이제는 과학의 정치성이랄지, 저나 다른 사람이 하는 연구가 정치사회적으로 어떻게 영향 받고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둘의 역동 관계에 대해 훨씬 열린 마음을 가지고 살펴보게 되는군요. 드디어 인문학도였던 제 모습과 함께 갈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회로: 지금은 ‘고인류학 박사 1호’라는 타이틀로 유명하시지만 학부에서는 고고미술사학을 전공하셨는데요. 고인류학으로 진로를 결정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전공을 바꾼다는 게 결코 쉽지 않은 일인데 우여곡절도 많았을 것 같아요.

상희: 저는 고고미술사학과에 입학해서 고고학을 선택했습니다. 미술사처럼 고상한 분야보다는 왠지 몸으로 때우는 듯한(?) 고고학에 더 끌렸어요. 발굴장을 쫓아다니면서 대학 시절을 보냈는데 3학년쯤 되니까 더 이상 고고학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발굴장에서 매일 같은 작업만 하다 보니 회의도 느끼고 헛발질한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돌파구를 찾고 있었는데 마침 한국고등교육재단 해외 유학 장학생에 선발되었습니다. 5년동안 유학 자금을 조건 없이 지원받을 수 있었어요. 어디 가서 뭘 공부할까 고민하다 지금 서울대 박물관장인 이선복 교수님께서 제게 미국에 가서 고인류학을 공부하고 오라고 강력하게 추천해주셨습니다. 정확하게는 미시간 대학교의 월포프 교수의 지도를 받고 오라고 하셨죠. 이선복 교수님은 제게 많은 영향을 주신 분이고 당시 국내 고고학계 소장파 학자로 학계의 미래를 많이 생각하셨어요.

누구든지 그러겠지만 유학 가서 피나는 고생을 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도 문과였고 사회대도 아닌 인문대에 있었기 때문에 과학을 훈련 받은 적이 거의 없었어요. 그런데 유학 가서 보니 고인류학은 기본적으로 과학이고 생물학인 거예요. 그걸 다 영어로 공부하려니까 굉장히 힘들었죠. 여름 방학에는 기초 과학 과목을 수강해서 쫓아가려고 애썼습니다.

회로: 전공이 바뀌고 언어도 다른 곳에 가서 공부하느라 힘드셨을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서 고인류학을 전공하고자 하는 학생들도 상희님과 비슷한 경로를 밟게 되나요? 상희님은 일본과 미국에서 학위 및 연구원 과정을 거쳤다고 하셨는데 커리어 패스에 나라마다 차이가 있는 편인지도 궁금합니다.

상희: 한국에는 고인류학이 아직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에 고인류학을 전공하려면 유학을 가야 합니다. 학부 시절에 기초 과학을 공부해두라고 강력하게 권합니다.

일본의 교육-연구 체제는 유럽을 모델로 시작했기 때문에 미국과 일본의 차이는 아마 미국과 유럽의 차이일 것입니다. 가장 큰 차이는 연구 동력의 위치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은 주로 연구 중심 대학교에서 연구가 진행됩니다. 따라서 연구 주체는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입니다. 교수는 연구 실적으로 평가를 받기 때문에 연구비를 타오고 연구팀을 먹여 살리려고 노력하죠. 반면 유럽 연구는 연구소에서 이루어집니다. 유럽의 대학교는 연구가 아닌 교육이 본연의 임무입니다. 일본은 유럽식으로 연구소 중심 연구를 시작했지만 미국의 영향을 받아 대학교에서 하는 연구가 점점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제가 포닥으로 있던 소켄다이는 연구 중심 대학원으로 연구소와 대학교를 통합하려는 일본 정부의 시도입니다.

고인류학은 미국이 압도적으로 선두적인 위치에 있었습니다. 따라서 다른 학문과 마찬가지로 미국 연구 중심 대학교의 대학원 과정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활발하고 선진적인 연구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유전학이 고인류학의 중요한 자료로 자리매김 하면서 유전학 연구소가 급부상했습니다. 현재 고인류학을 공부하려면 미국 유학보다는 독일 막스 플랑크 연구소에서 학위 과정이나 포닥을 권합니다.

회로: 이 인터뷰를 읽고 고인류학에 관심이 생긴 분들뿐만 아니라 과학을 공부하는 저희에게도 무척 좋은 정보네요. 고인류학 이야기를 듣다 보니 상희님의 연구에 대해서도 궁금해지는데요, 상희님은 요즘 어떤 주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를 하고 계신가요?

상희: 2015년 <인류의 기원>이 출판된 후 예상치 않았던 주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바로 여성입니다.

<인류의 기원>이 많은 성원을 받으면서 박물관에서 인터뷰를 제안했습니다. 놀라실지 모르지만 사실 저는 그전에는 박물관의 전시물에 관심이 별로 없었습니다. 제가 보는 것은 화석이나 뼈인데 그것에 상상력을 더해서 살을 덧입혀 전시해 놓은 모습에는 관심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인터뷰를 통해 박물관에 가서 새삼스럽게 인류의 진화 모델을 눈여겨 보게 되니까 비판의 소지가 많이 보였어요. 제가 여러 인터뷰에서도 지적했지만 [1][2]‘원시인’ 컨셉으로 만들어 놓은 초기 인류는 막상 고인류학 연구를 바탕으로 하기보다는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원시인에 대한 편견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장 쉬운 예는 남자가 인류를 대표하는 현상입니다. 그 이후로 요즘은 인류의 진화에서 그려지는 여성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그림: 토끼도둑 ⓒ (주)사이언스북스, 2017

학교에서 부학장이라는 보직을 새로 맡게 되면서 왜 학계에 여성이 적은지, 특히 학교 행정직 리더십에 왜 여성이 적은지 관심을 가지고 조사하게 되었습니다. 올해 제가 우리 학교의 “여교수회” (Women Faculty Association) 회장단을 맡고 있습니다. 여교수회에서는 그동안 새내기 조교수들을 챙기고 도와주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저는 물론 그 일도 계속하지만 올해부터는 교수가 아닌 포닥, 시간강사들에게도 손을 뻗쳐서 여교수회 안으로 끌어들일 생각입니다. 중심 조직은 교수들이지만 좀더 확장된 연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회로: 상희님의 연구를 통해 인류 여성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그동안의 고인류학 연구가 남성에 대해서 주로 다뤄왔던 데엔 고인류학계의 분위기도 한 몫 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흔히 화석을 발굴하는 과정이 필수적인 고인류학은 ‘남성적’인 분야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상희님께서 실제로 느끼신 고인류학계는 어떤 분위기인지 궁금합니다.

상희: 대부분의 학계가 그렇듯 고인류학은 남성중심적입니다. 화석을 발굴하는 현장 생활이 몸에 힘드니까 남성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그 이유 때문이 아닙니다. 고인류학은 남성중심적인 사회의 일부분으로서 권력을 가지고 있는 자리에 남성들이 많고 그 동안 남성들을 육성해서 세대 교체를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좀더 많은 여성들이 학계로 진출하면서 권력을 이용한 차별과 폭력이 발생했고 그것들이 문제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고인류학은 다른 학문과 그렇게 다르지 않습니다.

회로: 다른 학문과 그렇게 다르지 않다는 말이 가슴에 박히네요. 어느 분야이든 학계는 남성중심적인 모습을 띄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작년 문화예술계 여러 분야에서 성폭력/성추행 문제가 공론화되어 많은 파문이 있었습니다. 고인류학계에서도 작년에 성폭력 사건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고 들었어요. 혹시 이에 대해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상희: 정말 잘 나가던 고인류학자가 있었어요. 활발한 연구 활동으로 탄탄한 커리어를 쌓고 거물급 학자의 후원 하에 유수의 대학교에서 교수 생활을 하다가 미국자연사박물관에 연구원으로 자리잡았죠. 그는 2014년에 유럽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했는데 함께 갔던 부하직원이 그를 성폭력 혐의로 고발했습니다. 어느 날 저녁 부하직원이 그와 술을 마시다가 과음을 했고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그의 호텔방에 누워 그가 성관계를 강제하고 있었다고 증언했어요.

한국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으레 그러듯이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여성인 부하직원의 “행실”에게 화살이 겨누어졌지요. 그런데 이 사건이 공론화되면서 그 동안 이 학자에게 당했던 여성들이 앞으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연이은 증언에도 불구하고 박물관 측은 조사를 미루다가 마지 못해 그에게 유급 정직 처분을 내렸습니다. 그 후 이 사람의 수많은 논문들을 더이상 인용하지 말자는 움직임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그 사람과 공저자로 들어갔던 대학원생들이나 경력 초기의 연구자들의 커리어에 차질을 빚게 되는데요, 그런 처벌방식이 정당한지, 학자의 사생활과 학문적 성과를 따로 떼어서 볼 수 있는지 논란이 계속 진행되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고인류학계 내 성폭력/성추행이 표면에 부상하고 사이언스지 표지에도 다루어졌죠. 공론화와 연대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사건입니다.

회로: 범죄를 저질렀다면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한데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서는 이렇게 여러 명이 나서야 공론화될 수 있다는 게 슬퍼요.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는 낙인찍기와 같은 2차 피해로 인해 나서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연대의 힘으로 이러한 상황을 바꾸어 나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남성이 대부분인 고인류학 연구실에서 공부하며 생활한 상희님의 개인적인 경험담이 궁금합니다. 주변의 남성 동료들과 조금 다른 경험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학생인 저희는 이공계 사회의 여성이라는 이유로 꽃밭, 공대 아름이와 같은 이야기를 자주 듣고, 생활에도 꽤 영향을 미치거든요.

상희: 한국의 발굴 현장을 겪은 후에 미국과 일본으로 갔기 때문인지 주변 남성 동료들에 비해 튄다는 느낌은 오히려 적었어요. 일단 미국에서는 여성에 대한 차별적인 언동을 하면 제재를 받을 것을 각오해야 하고, 아카데미아 안의 사람들은 특히 조심합니다. 미국 유학 생활이나 일본 포닥 생활에서는 여성으로서 겪는 특수한 경험보다는 소수민족으로서 겪는 특수한 경험이 훨씬 더 피부에 와 닿았습니다. 물론 인터섹셔널(intersectional)하게 소수민족과 여성으로서의 소수자성이 교차되어 겪는 특수한 경험도 있었겠죠.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살면서 자신은 성별을 초월한 존재라고, 아니 그래야 한다고 의식적으로 생각했어요. 좀 80년대스러운 생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게 여성이라는 자의식은 마흔이 넘어서야 표면으로 드러났습니다. 결혼을 하고 딸내미를 낳고 허겁지겁 살기 시작했어요. 내 한 몸뚱아리만 추스리면 되던 싱글 라이프와는 차원이 완전히 다른 삶이 시작되었죠. 어느 날 따져보니 저와 함께 같은 대학에서 같은 조교수급으로 시작했던 동료 교수들은 저보다 6-7년 앞섰더군요. 승진 속도에 어느 정도는 차이가 있을 줄 알았지만 그 정도로 클 줄은 몰랐죠. 페이스북에도 <경단녀 아닌 경단녀> 라는 제목으로 올렸던 포스팅은 이런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한번 그렇게 보기 시작하니까 많은 것이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웃음)

회로: 사실 저희 주위에도 이런 문제로 고민을 하는 사람이 많아요. 결혼을 결심하기도 전부터 ‘결혼을 하면 내 커리어에 문제가 생기겠지?’라고 겁을 먹으니까 결혼 자체에 반감이 생기기까지 하더라구요. 연구자는 타 직업과 일상이 다른 경우가 많으니 이것을 파트너가 이해할 수 있을지, 이해한다 하더라도 잘 맞춰나갈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어요. 요즘은 친구들끼리 ‘비혼 비출산이 답이다’라고 말을 하기도 하는데, 결혼과 출산의 경험이 있으신 상희님께서는 이런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상희: 연애상담 결혼상담 커리어상담 해드립니다. 속 시원히 도와드립니다. (웃음) 위에 해 주신 질문을 몇 번이고 읽어봤습니다. ‘비혼 비출산이 답이다’ 아니요, 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선택을 해도 후폭풍이 있습니다. 결혼을 하든 안하든, 지금 하든 나중에 하든, 아이를 낳든 안 낳든, 키우든, 안 키우든… 어떤 선택을 해도 거기에 따라오는 결과물이 있어요. 그게 삶이죠. ‘결혼을 하면 내 커리어에 문제가 생기겠지?’ 결혼을 하지 않아도 문제는 생깁니다. 시키는 대로 야근 꼬박꼬박하면서 연구 실적 낸다고 커리어가 승승장구하는 것도 아닙니다.

‘파트너가 연구자라는 직업을 이해할 수 있을지? 잘 맞춰나갈 수 있을지?’ 같은 질문은 조금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해하든 말든,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잘 맞춰나가긴요. 하나도 맞추지 않아도 됩니다. 그보다는 둘이 결정한 바에 따라 각자 맡은 부분을 몸을 움직여서 하는가? 그 점을 살펴야 합니다. 저는 사람은 행동하는 만큼만 봅니다. 그리고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이 하나도 변하지 않아도 괜찮겠습니까?

저는 가장 안타까운 부분이 “최고의 선택”에 대한 환상입니다. 배우자로 선택한 한 사람이 배타적인 섹스 파트너인 동시에, 속마음을 터놓는 베프이고, 살림과 육아를 함께 하는 도우미이며, 커리어 컨설턴트이고, 동시에 노후를 함께 할 동반자라는 모든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기대하니까, 너무 결정이 커지고 엄두가 안 나는 것은 아닐까요? 이 모든 역할을 “한 남자”라는 패키지에서 찾을 수 있다는 기대는 핵가족 이데올로기의 부산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지극히 사회적인 동물입니다.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삶의 모든 것을 핵가족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은 반여성적, 반인간적입니다.

회로: 정말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사실 저희가 지금까지 한 선택들도 많은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지만 이후에 후회가 되지 않았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결혼이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최고의 선택”을 하려고 훨씬 전부터 괜한 걱정만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완벽한 것에 대한 강박을 버리고 스스로가 원하는 것부터 제대로 돌아보며 맞춰가고 싶습니다.

저희가 상희님께 인터뷰를 요청하게 된 계기이기도 한데요, 저희는 상희님이 <인류의 기원>에 실린, 남성 중심으로 인류 진화를 그려낸 일러스트를 바꿔보자고 출판사에 제안하셨다는 점이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이 외에도 인터뷰나 SNS 등에서 꾸준히 남성 중심적인 고인류학 지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계신데요. 고인류학 지식의 이런 경향에 대해 특별히 눈을 뜨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상희: 사실은 <인류의 기원> 출판을 계기로 특별히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이론적으로 알았지만 저와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원론적인 주제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인류의 기원> 책을 받아보고 놀랐어요. 저는 사실 책의 디자인에 대해서는 개입을 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글을 쓰는 역할이고 디자인과 그림은 책을 많이 다루어온 출판사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책이 나와서 죽 들춰보는데 삽화가 눈에 띄었어요. 그런데 삽화 대부분이 남자로 표현되어 있었어요. 그게 눈에 확 띄더군요. 그때는 그냥 짧게 한마디하고 지나갔어요. 제가 뭐라고 할 만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어차피 성별을 알 수 없는 화석 이야기인데 큰 상관이 없다고 속으로 합리화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제 강연에 오신 여성 한 분이 강연이 끝난 뒤 여자아이를 데리고 저에게 오셨어요. 딸에게 여자도 과학을 하고 여자도 과학책을 쓴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고 싶었다고 하더군요. 제 딸내미 또래의 여자아이를 보면서 뭔가 뭉클한 것을 느꼈습니다.

그 다음에 어린이 책을 감수할 기회가 생겼을 때 삽화에 관해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제 의견이 수용되더군요. 이번에 영문판 출판하면서 삽화에 관해 주장했더니 역시 제 의견이 수용되었어요. 그래서 깨달았답니다. 아, 목소리를 내야 하겠구나, 하고요. 그 이후에는 책을 계약할 때 디자인과 삽화에 제 의견을 개입하도록 아예 계약서에 명시하고 있습니다.

회로: 최근에는 고인류학계에도 여성들의 진출이 늘어나고 있다고 들었는데요, 이런 변화가 고인류학 지식을 어떤 식으로 변화시켜 왔는지 듣고 싶습니다.

상희: 여성 진출은 늘어났지만, 여성주의적인 관점은 미미합니다. 다른 분야인 사회문화 인류학, 언어 인류학, 심지어 고고학에서도 여성주의 관점이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데, 형질 생물 인류학, 특히 고인류학은 미미합니다.

회로: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이네요. 하지만 상희님이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고 계시니, 조금씩 변화가 시작될 것이라고 기대해봅니다. 저희도 상희님의 책과 SNS에 올리신 글을 읽고 고인류학의 문제에 눈을 뜨게 되었으니까요! (웃음) 도서출판, SNS 등 대중과의 소통을 활발히 하는 연구자이신데, 이런 활동을 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상희: SNS를 시작하게 된 것은 공교롭게도 부모님이 돌아가신 다음부터입니다. 그즈음 한글로 소통하는 일이 너무도 그리워졌어요. 그래서 미국에 있는 동문회 인터넷 신문에도 글을 쓰고, 윤신영 기자님이 제안한 과학동아 연재도 선뜻 수락했지요. 그리고 <인류의 기원> 책이 나오자 SNS를 통해서 현재의 독자들 및 미래의 독자들과 소통을 하고 싶었어요.

회로: <인류의 기원>을 읽으면서 고인류학 관련 지식이 없는 평범한 독자라도 쉽게 이해하고 흥미를 잃지 않을 수 있도록 노력하신 흔적이 보였습니다. 첫 번째 책인 만큼 어려움도 있으셨을 것 같은데요, 대중을 위한 글을 쓰면서 힘들었던 점이 있으셨나요?

상희: 구체성을 포기하는 것이 처음에는 힘들었습니다. 연구자는 문장 하나하나 토를 달고 주석을 달도록 훈련 받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쓰면 누가 읽겠어요? 처음에는 그런 자세한 내용을 쓰지 않으면 속이는 것 같아서 괴로웠습니다. 그런데 연습을 계속하면서 자세하지 않아도 정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대중과의 소통을 거듭하면서 글쓰기 말하기 철칙이 생겼습니다. 간결함입니다. 처음에는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글에 특별히 신경 써서 지키려고 했습니다. 제 글의 숨이 길어지면 샛길로 빗나가는 댓글이 달리는 것을 보면서 깨닫게 된 원칙입니다. 그렇게 말과 글을 다듬다 보니 제 소통 대상이 대중이든, 학생이든, 동료 학자이든 어떤 글에서도 어떤 말에서도 지켜야 할 원칙임을 깨달았습니다.

회로: 상희님의 글을 읽으면 페미니즘적 관점이 많이 드러나고, 실제로 SNS에서도 관련 주제에 관해 활발하게 언급하고 계신데요. 개인적으로 글을 보면서 매우 사이다였습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올리신 관련 주제의 글 중에 제일 기억에 남는 글은 어떤 것인가요? 그리고 그 글들에 대한 반응은 어땠는지도 궁금합니다.

상희: 여기 캡쳐한 글들이 대표적이고요, 두어 개 더 있습니다. 페북보다는 트위터가 140자라는 매력 때문에 더 상쾌한 표현이 가능한 듯합니다.

반응은 뻔합니다. 아무래도 페북은 실명이 많으니까 ‘빻은 소리’는 거의 댓글로 달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크게 터진 적도 있습니다. 생리대 트윗을 페북으로 가져왔는데 어떤 사람이 자기 담벼락으로 가져가서 제법 긴 비판 글을 썼습니다. 그런 글이 떴다고 제게 제보가 들어왔어요. 가봤더니 댓글이 참 재미있었습니다. 저를 욕하는 댓글들도 꽤 있었고, 제 편을 드는 사람들도 있어서 댓글 전쟁이 일어나고 좀 시끄러웠었죠. (웃음)

트위터에서는 인용 리트윗으로 가끔 두드려 맞기도 합니다. 저격성 글을 읽으면서 마음을 다스리는 연습도 하고 맷집을 키운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어떻게 대응할까 속으로 연습하고 겉으로는 대응하지 않습니다. 가끔 펀치를 주고받은 적은 있지만요.

이상희 교수는 한 사람의 고인류학 연구자로서, 또 먼저 결혼과 출산을 겪은 인생 선배로서 최대한 솔직하게 인터뷰에 응했다. 특히, 결혼을 둘러싼 최고의 선택에 대한 환상을 일깨우는 답변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이미 짓눌려 있는 우리들의 숨통을 뚫어주는 듯 했다. 평등한 호칭과 일러스트처럼, 문제의식을 가지고 조금씩 자기 주위의 것들을 바꿔나가는 페미니스트들이  더 많은 학문과 더 많은 영역에서 활동했으면 한다.

 

[1] 조선일보, “박물관에 전시된 현생인류는 모두 백인남자, 정말 화나요”
[2] 시사인, “한국인 고인류학 박사 1호, 이상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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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rls' Rob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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