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entists∩Feminists 페미회로 인터뷰 프로젝트 XI: 익명의 생명과학 대학원생 3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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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의 생명과학 여성 대학원생 3인 인터뷰

지난 3월 12일 대전에서, 국내 5개 지역거점 과학기술중심대학(DGIST, GIST, KAIST, POSTECH, UNIST)의 페미니스트 연합모임 <페미회로(영문명 FemiCircuit)>가 공식 출범했다. 페미회로는 이공계 내 젠더 불평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지속 가능한 페미니즘을 실천하려는 모임이다.
(페미회로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femicircuit)

페미회로에서는 2017년 연중 프로젝트로 이공계 내 여성 과학자, 연구원들과 우리 주변의 페미니스트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이름을 얻었거나 얻지 않았거나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연구하고 고민하며 실천하는 이공계 여성 연구자들을 통해 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우리보다 조금 뒤의 미래를 살펴보고자 한다.

연구자를 목표로 공부를 하다 보면 학부에서 배우는 지식의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특히 이공계 연구자를 목표로 하는 이에게 대학원은 어찌 보면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그렇지만 학부생들에게 고작 몇 년 후의 미래를 사는 그들, 대학원생들은 같은 학교에 거주하는 것이 사실인지 의심될 정도로 도통 만나기가 힘든 존재들이다. 대학원에 진학하여 학문을 넓혀가는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나눠보는 자리를 가졌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생명과학과 대학원생 3명을 만나보았다. 이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대학원 생활의 고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까 한다.

<페미회로> 인터뷰어는 ‘회로’로, 인터뷰이는 각각 ‘민트’, ‘모카’, ‘딸기’(가명)로 표기했다. 검수는 길한석, 김한솔, 백부경, 성기봉, 지은경 (이상 가나다순)의 검수팀이 맡았다. 인터뷰의 최종 편집과 발행은 <걸스로봇>이 담당했다.

회로: 간단하게 자기 전공, 학위 소개 부탁합니다.

모카: 미생물학을 전공하고 있는 석사 졸업 예정인 모카입니다.

민트: 미생물을 전공하고 있는 석사과정 1년 차 민트입니다.

딸기: 같은 전공 석사과정 1년 차 딸기입니다.

회로: 자신의 전공을 어떻게 선택하게 되었는지 얘기해 줄 수 있을까요?

민트: 저는 원래 화학과였지만 생물학에도 관심이 있었어요. 그래서 학점교류제를 통해 집 근처 대학에서 한 학기 동안 생물학 수업을 들었는데 그때 미생물 수업을 들었어요. 처음 들어서 어려웠지만 재밌었고 이렇게 많은 미생물과 박테리아에 의해 많은 질병이 발병한다는 것을 알게 되니까 신기하고, 흥미로워서 관심을 두게 되었어요. 그 이후로 교환학생 갔을 때도 해당 분야를 공부했고 본 대학원에서 인턴을 하면서 미생물학을 공부하기로 했어요.

딸기: 중학교 때부터 생물을 공부해서 생물 분야로 가는 것에 대해 고민을 해본 적은 없어요. 고등학교 때도 대학교에서도 생물학을 전공했습니다. 학부 생활 중에 미생물실험실에서 인턴을 했어요. 조직, 세포, 줄기세포가 각광받는 분야지만 원래 인류의 건강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는데 병인이 미생물인 경우가 많아 연구 분야로 미생물을 선택했습니다.

회로: 그러면 중학교 때 생물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딸기: 생물이 제일 재밌었고 제일 잘하는 것이기도 했어요. 과고 준비할 때 다른 사람보다 잘하는 과목이 필요한데 저에게는 그게 생물이었어요.

모카: 저는 과고 준비를 너무 늦게 시작했는데 그때 준비할 시간이 제일 많이 남은 게 생물 올림피아드였을 뿐이에요. (웃음) 그렇게 생물을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재밌고 신기했어요. 생물을 공부해보니 더 잘 알고 싶어서 대학에서의 전공으로 생물을 선택했습니다. 전공과목을 듣다 보니까 미생물학이 제일 궁금해하던 분야와 맞아서 미생물실험실에 들어갔습니다.

회로: 제일 궁금했던 분야가 무엇이었나요?

모카: 센트럴 도그마(central dogma; 유전 정보의 전달·발현에 관한 분자 생물학의 일반 원리. 유전 정보는 핵산으로부터 단백질로 흐르고, 역류하는 일이 없다)요. 센트럴 도그마를 제일 공부하기 쉬운 것이 미생물학이거든요. 미생물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신기하고 매력적이었어요. 미생물들이 과연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가 궁금했어요. 그래서 대학원에서의 세부 전공으로 미생물학을 선택했죠.

회로: 다들 생명 분야에 열정을 가지고 계시네요. 그럼 대학원을 진학하고 나서 연구실을 선택하는 과정은 어땠나요? 현재의 연구실을 선택한 데에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모카: 연구에 뜻이 있었다기보다는 학부 과정에서 배운 게 너무 피상적이라 대학원을 가야겠다 생각했어요. 대학을 타지에서 다녀 적응하기도 힘들었기 때문에 대학원은 익숙한 자대로 진학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해서 자대 진학을 염두에 두었어요. 또한, 학부 졸업성적 때문에 선택의 폭이 넓지도 않았고요. 그러던 차에 연구 주제도 흥미로워서 현재의 연구실을 선택했어요.

민트: 저는 학부 때 전공이랑 다르다 보니까 좋아하는 일로 취직을 하려면 좀 더 배워야 하지 않을까 해서 대학원 진학을 생각했어요. 학부 마지막 학기에 우연히 학교 포스터를 보고 인턴을 뽑는다 해서 지원했어요. 다른 학교들은 내가 늦게 알아서 기간이 끝났고 남은 곳에 지원해서 들어왔죠. 그렇게 인턴 생활을 하다 보니까 다들 열심히 자기 하고 싶은 연구하는 게 멋있어 보여서 지원했어요.

딸기: 대학 졸업 이후에 취업과 대학원 중 고민했는데, 취업하면 제가 하고 싶은 연구를 못 할 거 같아서 대학원을 선택했어요. 연구는 궁금한 걸 알아보는 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이 분야에서 뭔가를 하려면 대학원을 가야 뒤에 뭘 해도 하겠구나 싶어서 대학원을 선택했죠. 사실 미생물이라는 주제는 어디를 가도 할 수 있습니다. 현재의 연구실을 선택한 건 지금 하는 연구에 관심 있어서 온 것도 있었지만 인턴을 하면서 느꼈던 느낌, 연구실의 분위기가 좋았기 때문에 들어오게 되었어요. 연구주제는 변할 수 있지만, 사람들은 좋으나 싫으나 적어도 2~5년 정도는 함께 해야 하니 사람들을 중요하게 봤어요. 함께 하는 사람들을 선택할 수 있으면 이 사람들과 함께라면 괜찮겠다고 생각해서 선택했어요. 이후에 대학원생으로 지내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았지만.

회로: 그 당시 느꼈던 실험실 분위기가 어땠나요?

딸기: 제가 맘에 들었던 분위기 말이죠? 먼저 저에겐 울산이 타지이다 보니 마음을 붙일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좋았습니다. 두 번째로 교수님께서 하고 싶은 걸 하라는 편인 점이 좋았어요. 모든 연구실에서 그런 분위기를 제공하지는 않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이 연구실에서 생활을 해보며 ‘실험 외의 잡무를 해야 할지언정 내가 하고 싶은 연구는 할 수 있겠구나’, ‘내가 하고 싶은 걸 막는 곳이 아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분위기로는 2년 정도는 재밌게 공부하면서 지낼 수 있을 거로 생각했죠.

회로: 대학원에 진학하는 과정에서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요? 혹시 그런 반응들로부터 영향을 받았나요?

딸기: 들어올 때 가장 영향을 끼쳤던 건 그 당시 교수님과 연구실 사람들과 같이 이 분야의 사람들이 제게 해줬던 잘할 거라는 평가들이 가장 큰 요인이었어요. 가족, 친구, 동료 중에서 동료들이 가장 큰 요인이었죠.

부모님은 제가 하고 싶은 일이 있고 필요한 과정이라면, 그리고 할 수 있으면 하라고 하셨어요. 부모님은 제가 하는 것에 대해서 좌지우지하려 하지 않아서 중간에 포기하지 않을 수 있으면 하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친구들은 제가 정확히 뭐 하는지 몰라요. 친구 중에서 제가 가장 빨리 졸업을 해서 오히려 제가 의견을 주는 쪽이었기 때문에 대학원을 진학하면서 친구들로부터는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어요.

모카: 저는 부모님의 가정교육 자체가 “무슨 일을 하든 간에 네가 그 일을 해서 행복하다면 반대는 하지 않겠다. 그러니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해라” 이여서 ‘내가 그걸 해서 행복할 것인가’만이 기준이었어요. 남들은 다 휴학하는데 휴학 없이 바로 졸업했으니 조언을 해줄 만한 누군가도 없었고 아는 선배들은 다들 전공이 달라서 그냥 오로지 저 혼자서 선택했어요. 취업하는 것보단 연구하는 것이 행복할 것 같았어요.

민트: 저도 가족들이 제 선택에 크게 불만이 없었고 대학원을 진학하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직장생활을 할 수 있을 거 같아서 진학하게 되었어요. 오히려 가족들은 제가 공부를 더 한다는 것 자체를 좋아했어요.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요즘에 석사 졸업해서 뭘 하냐’, ‘굳이 가야 하냐’라고 했고요. 대학원 진학하는 친구들이 꽤 있어서 얘기를 나누긴 했었어요.

회로: 그러면 대학원에 들어와서 어느 부분에서 가장 힘들었는지 얘기해 볼 수 있을까요?

모카: 처음 들어와서 제일 힘들었던 건 사수 없이 연구를 시작해야 했다는 것이었어요. 사수 선배는 졸업해서 나갔는데 실험은 해야 하고 나에게 피드백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게 힘들었어요. 그 이후 1년 반 동안은 인간관계가 힘들었어요. 지금은 많아졌지만 처음 1년엔 여학생이 정말 없었거든요. 있어도 친해지는 데 오래 걸려서 그동안 섬세하지 못한 선배들 때문에 섬세한 내가 고통받는 것이 힘들었어요.

민트: 처음 들어와서 제일 힘들었던 게 내 시간이 없어지는 거였어요. 여기서 학부생활을 하고 온 사람들은 3, 4학년, 혹은 그보다도 빨리 랩 생활을 시작해서 잘 적응하는 거 같은데, 저는 모든 게 처음이라 배울 것도 많은데 실험 때문에 주말에도 나와야 했거든요. 실험이 그렇게 설계될 수밖에 없는 걸 알긴 알지만, 저녁에도 주말에도 실험실에 나와야 하니까 편하게 집에서 쉴 수도 없고 약속도 잡기 힘들고… 다른 사람들은 그걸 당연하게 여기고, 저로서는 랩 생활이 나의 전부가 되는 것이 너무 싫었어요. 공부가 하고 싶어서 왔지만 24시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닌데. 공부와 연구만 해도 시간이 부족한 게 스트레스에요. 지금은 딸기와 격주로 나와서 나아지고 있고,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어요…

딸기: 전 제 맘대로 안되는 게 많아서 힘들었어요. 내 시간 내 맘대로 안되고 연구도 내 맘대로 안 되고. 물론 연구야 원래 맘대로 안 되는 것이긴 한데 결과 나온 것을 쓸 수 없을 때 “내 시간을 버리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인턴 때는 그 결과를 내가 책임지지 않으니까 배우면서 하면 됐었는데 대학원생은 결과분석도 내가 하고 결론도 내가 내고 앞으로 무슨 실험을 해야 할지 생각해야 하는 게 생소했어요. 결과가 제대로 안 나오는 거. 저도 빨리해서 빨리 결과를 내고 싶은데 배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지만, 이유를 알 수 없이 나오지 않는 결과들은 왜 하는지를 놓쳐버리는 게 되는 게 갑갑해요.

그리고 내 시간이 없는 것도 힘들죠. 사람들을 만나서 충전하는 시간이 없다는 것과 연구실 밖의 사람들이랑 연구와 관련되지 않은 이야기를 할 시간이 줄다 보니 그 사람들이랑 조금씩 멀어지는 게 힘들죠. 그중 지금 가장 힘든 건 인간관계예요. 연구실에서 장시간 함께 연구하다 보니 친밀감이 쉽게 쌓이지만, 그 친밀감이 독이 된다는 느낌이 들어요. 연구는 답이 있잖아요. 잘못한 게 있으면 다시 하면 되는데. 사람 관계는 한번 실수하면 서로 용서할 수는 있어도 없던 일로 할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정답이 없으니까 더 힘들죠. 물론 확실히 그른 것도 있기는 해요. 몇몇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맘에 안 드는데 저는 그걸 고칠 수 없는 위치라는 것이 또 힘들죠. 좀 더 발언권이 있는 위치라면 이야기할 텐데 지금 나는 그런 입장이 안 되어서 제가 하고 싶은 것은 많은 데 할 수 없는 상황이 답답하네요.

모카: 실험 망해서 다시 하는 것은 각오하고 들어와서 불만이 없었는데, 정작 견뎌야 하는 것은 내가 남들에게 대하는 것과 같은 수준으로 대해 지지 못한다는 것, 혹은 내가 생각했던 반응과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이었어요. 같은 행동에 대한 반응조차도 시시때때로 달라지니까 선후배 문제 이전에 기준 없이 종잡을 수 없는 반응을 하는 사람을 대하는 것이 제일 힘들었어요.

딸기: 그건 한 사람보다 연구실 전반적으로 그런 거 같아요.

민트: 아무리 선배라도 해도 될 말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하는 말이 있는데 이건 어느 직장이나 인간관계에서도 다 똑같은 거잖아요. 그렇게 얘기하면 상처받는 사람이 생기는데 선후배 관계라 한 사람만 일방적으로 상처받고요.

회로: 그런 걸 학부생 때는 느끼기 힘들었을 텐데. 대학원에 진학하려는 학부생들에게 조언한다면?

모카: 교수나 대학원생 갑을관계에 대해 많이 알고 있어서 각오하고 들어와도 실험실 안의 말도 안 되는 위계질서 때문에 힘든 경우도 있어요. 일반 회사보다 동료들과 부대끼는 시간이 많다 보니 더 스트레스를 받는 부분이 있어서 어느 정도 각오하지 않고는 차라리 가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요.

딸기: 자기 성격을 잘 파악하는 것도 중요해요. 저는 계획대로 안 되면 초조하고 답답해하는 성격이에요. 연구 자체가 생각한 대로 안 되고 계획대로 안 되는 게 당연합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서 다시 해보면 되고 시간 많은 거 알지만 여전히 계획이 틀어지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가 커요. 들어오기 전까지는 알기 힘든 것이지만 생각해 봐야 할 요인들인 것 같아요.

모카: 사실 이 분야의 새로운 발견을 알아가는 걸 좋아하는 거라면 최신 논문만 읽으면 돼요! 연구는 성격에 맞는 사람이 있는 거 같아요.

민트: 과학자나 연구자는 자신만 열심히 하고 자기 혼자 생각하면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줄 알았어요. 이렇게 생각하고 사람들과 부대끼기 싫어서 연구 분야로 왔는데 막상 들어와 보니까 다 협력해야 해서 힘들었어요. 이런 점도 생각해봐야 해요.

회로: 저도 그게 제일 힘들었던 것 같아요. 실험은 나 혼자 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함께 해야 하는 것이 많고 같이 실험하는 사람이 있다 보니 싸우기도 하고, 남 탓도 쉽게 하게 되고.

모카: 우리가 생각하는 과학자는 1960년대에 다 끝난 거 같아요. 이제는 과제 따 오려면 손 비벼가며 따와야 하고(웃음)

딸기: 어느 직업이든 내가 생각한 것을 100% 만족하게 하는 직업은 없을 거예요. 직업의 여러 면을 보고 ‘생각한 것과 다르더라도 괜찮다, 버틸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와도 후회하지 않을 거로 생각해요. 하지만 하나만 보고 들어왔는데 그게 아니라면 좀 많이 힘들지 않을까…

모카: 학부생 때 넘치는 게 시간인데 이때 자아 탐색의 시간을 가져야 해요.

회로: 그러면 여러분들이 대학원에서 부당한 대우를 겪었던 적이 있나요?

모카: 가장 많이 화가 났던 건 저는 근거를 가지고 설명하는 데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을 때. 제도 제 손에 뭔가 잘못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스스로 검증까지 한 이후에 물어보는 건데 너무 단정적으로 밑도 끝도 없이 “그거 아니야”라고 해 버리는 게 실험을 해 온 시간을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어 더 화났어요. ‘내가 더 많이 한 분야인데 왜 날 무시해’ 싶은 거죠. 자기가 선배라고 무시하는 것도 싫고. 전반적으로 내가 들인 노력과 시간을 무시하는 행동이 화났어요.

민트: 부당한 건진 모르겠는데 처음 배우는 분야이고 모르는 게 많은 건 당연한데. 계속 무시당하는 느낌이 드니까, 일도 하기 싫어져요. 하물며 교수님도 모르는 것을 질문하거나 얘기했던 걸 다시 여쭤봐도 무시하지 않는데, 선배가 무시하니까 짜증 나지요.

딸기: 제가 그 사람보다 잘 모르는 건 그걸 경험해 볼 기회가 적었기 때문일 뿐인데 자신이 더 잘 알고 있다고 해서 그걸로 남 무시하고 깎아내리고 위세 부릴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거기에 좀 더 화나는 상황은 그 사람의 경험을 무시할 수 없으니까 반박할 수 없을 때. 다른 경우라면 제가 아는 사실에 기초해서 아니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한 상황이 많아요. 그런 대우를 받다 보니 스스로 깎아내리게 되고요. 그 외에도 업적을 가져간 다던지 일 시켜놓고 진행을 안 한다든가 하는 건 어디든 다들 있으니까요.

회로: 그런 부당한 경험이 자신의 위치나 성별 때문이라고 느끼신 적이 있나요?

모카: 그분은 후배에게 ‘광역 도발’을 해서 성별 때문이라고 느끼진 않았어요. 그 사람의 발언에서 성차별적인 면을 못 느낀 건 아녜요. 사적인 자리에서 “난 애를 안 낳고 싶다”라 했을 때 “당연히 애 가져야지”하는 건 들었어요. 하지만 연구에서는 교수님도 평등을 지향하시다 보니 성별에 따른 차별은 느끼지 못했어요. 아직 대학원생이라 잘 못 느끼는 걸 수도 있지만.

회로: 각자 다른 배경에서 공대에 오게 된 것으로 알고 있어요. 공대에 와서 느낀 변화나 여학생으로서의 경험이 있다면?

모카: 여고를 나왔는데 고3 때 미리 대학 원서를 써야 한다고 담임선생님께 가서 “선생님 이게 제 자소서입니다. 추천서 써 주세요.” 했더니 담임선생님이 벌컥 화를 내는 거예요. 자기 일이 바쁘다고 여자가 시집만 잘 가면 되지 왜 대학 원서 쓴다고 귀찮게 구냐며 옆자리 선생님이 말릴 정도로 화를 냈어요. 그 때문에 자존심 상해서 더 이 악물고 공부하긴 했습니다. 제 꿈이 남편을 셔터맨으로 두는 것인데. “여자가 시집만 잘 가면 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 꿈이 구체화 되었죠.

민트: 나이가 많으신 분이었나요?

모카: 한 50대 중반 60대 정도였어요.

민트: 여고였는데도 나이 많은 분들은 그런 면이 있었어요. 여자들은 뛰어나게 잘하는 게 아니면 시집가면 된다는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여자애들이 많으니까 성추행이 많았어요.

회로: 선생이 그런다고요?

모카: 있어요!

민트: 은근하게 등이나 어깨를 만져서 대놓고 “하지 마세요”라 말하기 힘든 경우가 많았어요. 나서서 말하기 힘들고 저도 그런 성격이 아니었으니까. 그때는 친구들이 얘기하고 넘어갔어요. 도가 지나친 선생님도 계셨는데 그분은 징계를 받으셨어요. 그러고 다시 복직하셨지요. 많지는 않았지만, 은근히 있었습니다.

회로: 그 이후 이공계 대학/대학원을 오면서 느낀 변화가 있나요?

모카: 여중, 여고를 나오다 보니 대학 진학 후에 이성 친구가 처음 생겼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또 다른 것이 너무 신기했어요. 대학을 타지로 와서 밤늦게까지 놀 수 있는 것도 좋았고. 성격도 많이 달라졌어요. 고등학교 때는 낯도 많이 가렸는데 대학 와서는 다른 사람에게 말 거는 게 덜 힘들어진 느낌이었어요. 그건 고등학교와 대학교가 분위기가 달라서 그랬던 것 같아요.

민트: 저는 사고방식이 많이 바뀌었어요. 고등학생 때는 공부뿐이었다면 대학에서는 내가 직접 선택할 수 있고 그 선택에 따라 내 인생이 바뀐다는 것, 주도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어요. 자유로워졌고, 자신감도 생기고, 혼자 하는 것,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졌죠.

딸기: 저도 여중을 나왔지만 놀기 바빠서 그런 부분은 느끼지 못했어요. 대학이나 고등학교는 분위기가 별 차이가 없었어요. 전 여성스러운 성격도 아니니까 남자들이 많은 환경이라 해도 위화감을 느끼진 않았어요. “좋은 동료 하나 생겼네” 정도.

모카: 여중 여고를 나오다 보니 남자애들이 어떤지 몰랐어요. 옆에 있는 남고에서는 한겨울에 홀딱 벗고 축구하고, 또 남고에 있다가 오신 선생님이 “우리(남자)는 되게 더럽고 냄새나는데 너희는 너무 사람”이라고 하셔서 남학생들이 신기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대학 와서 보니 생각보다 사람이었던 것, 그리고 연애의 대상으로만 생각했는데 우정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도 신기했습니다.

딸기: 저는 반대였어요. 남자애들이랑 형제처럼 지내와서 아무래도 대학교 와서도 그런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 해왔던 듯이 대학 와서 똑같이 행동했는데 다른 애들은 “둘이 사귀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어디서 그런 생각이 드는지 궁금할 정도로 요만큼의 감동도 없는 그냥 형제인데, ‘너 같으면 형제랑 사귀겠니?’ 싶은데, 고등학생 때와 같은 행동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오해할 때 ‘우정이었는데 오해받을 수 있구나, 조심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민트: 남자인 친구가 많이 생기다 보니 오해도 많이 생길 수도 있고 학교가 좁다 보니 소문도 쉽게 돌고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지요.

모카: 대학 동아리를 처음으로 들어갔는데 저 포함해서 여자가 2명이었어요. 남자애들도 그냥 친구라고 생각하고 다 같이 놀았는데 한 여자애가 “어떻게 하면 남자애들을 달고 다닐 수 있어?”라는 식으로 물어본 적이 있어요. 그 당시에는 “그냥 친구처럼 지내는 거지” 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까 어장관리 한다는 뉘앙스였던 거 같아요. 서로 연애대상으로 안 보는 사이인데 말이죠. 그 친구와는 멀어지게 되었죠. 그런 가십이 되게 신경 쓰여요.

민트: 어릴 때부터 친구였던 남자애들과 만나도 성적인 이야기는 잘 안 했는데 성인이 되니까 나랑 그렇게 친하지도 않은 남자애들이 성적인 부분에서 도를 넘어서 말을 하는 경우가 있어 충격이었어요. “너도 성인이고 나도 성인이니까 괜찮지”라고 하지만…

회로: 신뢰 관계가 쌓여야 할 수 있는 얘기도 있잖아요.

민트: 그런 부분도 있고 대화주제가 많이 바뀌었는데도 제가 기분이 나쁠 정도로 다시 성적인 주제로 넘어가는 경우가 몇몇 있었어요. 은근히 친하지도 않은데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모카: 남자친구를 동아리에서 사귀고 내 친구 관계가 동아리 안에서 형성된 그 와중에 동아리에 남자애들만의 단톡방이 있는 걸 알게 되었어요. ‘내가 끼거나 끼지 않을 때 대화 주제가 좀 달라지겠구나, 불편하겠다’ 싶어서 일부러 빠질 때도 있어요.

회로: 본인은 그런 부분에서 불편하지 않았나요?

모카: 저는 상관이 없는 데 남자친구는 불편해하니까 남자애들이 저에 대해 조심하죠. 아예 얘기 안 하진 않아도 선이 그어진 느낌. 그런데 가끔은 남자친구 때문에 다른 남자인 친구들과 그런 얘기 못 하는 게 답답해요. 바로 얼마 전에 동아리 친구랑 만나서 연애 얘기하다가 성적인 얘기로 넘어가려는 상황에서 상대가 자기검열을 하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웠죠.

회로: 그게 애매해요. 친구들과 오픈한 이후에 남자친구를 만나서 이게 개인적으로 갈 수도 있는 얘기다 보니 자제하다 보니까 쓸쓸해지더라고요. (웃음) 다음 질문이 ‘학교가 변했으면 하는 점’에 대해서인데 이런 대화 하다가 학교가 변했으면 하는 점 물어보면….

모카: 이런 내용을 좀 더 오픈할 수 있었으면? 오티 때 성교육을 하긴 하는 데 너무 피상적이에요. 대학 와서 처음 연애하는 애들이 많은 데 연인 사이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아예 정규 교양으로 생겼으면 좋겠어요.

민트: 여기는 없나요? 제가 나온 대학은 그런 과목이 있는데 교수님이 재미있게 강의하셔서 항상 만석이었어요.

회로: 네 이 학교는 그런 수업이 없어요. 저는 중학교 때 교환학생을 가서 Relationship(관계)이라는 수업을 들었는데 학생들끼리도 편하게 얘기하고 단순한 지식만 아니라 관계 형성에 관해 이야기해서 좋았어요.

모카: 남자애들은 성적 지식을 불법적인 경로로 접하다 보니 잘 모르거나 잘못 아는 경우가 많아서 성교육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초등학교 때는 생리대 어떻게 쓰는지 가르쳐 줬는데 여고 오니까 “안 돼요.” “하지 마세요.” 이런 것만 가르쳐서 여자애 중 심각한 애들은 고등학생들은 손만 잡아도 아기가 생기는 줄 아는 경우도 있었어요.

민트: 저도 초등학교 때는 이론상으로는 배워도 교육만을 통해서는 잘 몰랐고 중학교 와서 알게 되었어요.

모카: 소통할 수 있는 자리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남자 여자가 모여 앉아서 서로 궁금한 게 있으니까 공공적인 차원에서 있어야 해요. 그리고 교내 성범죄 사건들에 대해 제가 아는 사례만도 여럿 있었는데 여자 대학원생을 위한 대책 기구나 단체도 필요한 거 같아요.

민트: 없는 학교가 있는지 몰랐어요.

회로: 과기원 같은 연구중심 대학들에 대개 여학생 단체가 없어요. 포스텍에는 총여학생회가 있고 카이스트에는 인권단체가 있죠.

모카: 인권단체가 필요할 거 같아요. 외국인들도 많고 장애인도 있는데. 알게 모르게 퍼져있는 남혐, 여혐도 문제지만 인종차별도 있잖아요. 외국인 단체가 있는 데 그 안에 속한 외국인만 활동하고 외국인 개개인에 대한 관리는 안 되는 거 같아요.

회로: 학교 자체가 폐쇄적이다 보니 묻히는 게 많은 거 같아요. 이런 게 잘 되어 있어도 문제가 생기기 쉬우니까요. 그 외에도 구조적으로 개편해야 할 것들이 무엇이 있을까요? 우리가 좀 더 수평적인 관계에서 실험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면 좋지 않을까요?

모카: 우리가 받아야 하는 온라인 성교육 그 안에 필요한 내용이 다 있기는 한데 안 보잖아요. 틀어놓고 다른 데 가 있고요. 대학원생 오티도 오티답게 했으면 좋겠어요.

딸기: 제일 바뀌었으면 하는 건 알람이에요. 알람이 제대로 작동했으면 좋겠어요. 아무 일이 없음에도 알람이 울리는 일이 잦은데 정말로 위험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할 건지. 학교 전반적으로 실험에서의 사고 말고도 뭔가 터졌을 때 폐쇄적인 분위기가 있죠. 그렇지만 우리 학교는 젠더 측면에서 보았을 때 교수 채용에서는 잘하고 있다고 알고 있어요. 물론 학부생이나 대학원생 차원에서는 문제가 있을 수 있지요. 그렇지만 개개인의 생각이 다르므로 그런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려면 강의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회로: 앞으로 대학원을 졸업한 이후 계획이 어떻게 되나요? 학업 및 결혼 계획이 있나요?

모카: 놀았으면…. 결혼은 잘 모르겠고, 사실… 계속 공부는 하고 싶은데 경제적인 문제가 제일 걱정이예요. 돈과 공부 사이에 타협점을 찾아야 하는 단계입니다.

회로: 그 상황에 결혼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건가요?

모카: 결혼이 결국 돈 문제죠. 입이 두 개가 되면 혼자 먹는 것보다는 돈이 들어가고 사는 거랑 주거를 신경 써야 하니까요. 일단은 내 한 몸 유지해야 정해지겠죠.

민트: 저도 놀고 취직할 생각인데 어디든 한국은 아니었으면 해요. 여기보다 노동자의 권리가 높은 데서 일을 하고 싶어요. 그런 과정 중에 여건이 되면 결혼할 수도 있겠는데 아직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결혼이라는 거 자체가 책임과 연관되어 있어서 두렵기도 하고 요즘은 결혼을 꼭 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 같이 살고 싶으면 같이 살고? 확신은 없습니다.

딸기: 공부는 계속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기서 할지 해외로 나갈지는 고민 중이고 중간에 못하겠으면 이 생활을 때려치우고 취업하겠죠. 결혼은 하겠다는 생각이 아직은 없습니다. 꼭 해야 하는 필요성을 못 느끼겠어요.

회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민트: 대학원 오지 마!!

모카: 퇴근하고 싶다

딸기: 커피 더 마시고 싶다.

회로: (웃음) 장시간 인터뷰 감사합니다!

우리는 세 대학원생과 인터뷰에서 대학원을 선택하는 과정, 대학원 내부에서 느낀 연구원의 삶, 그리고 대학 내 인권 및 젠더교육의 필요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과학자를 향한 여정에 첫 발걸음을 내민 그들의 걸음을 함께 걸어보며 그들의 열정과 고충을 조금이나마 볼 수 있었다. 이들의 얘기를 들으며 그들의 열정이 꺼지지 않도록 북돋고 고통은 덜 수 있는 학내 시스템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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