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5화. AAAS 여자들 ‘학교라는 사냥터에서 #MeToo’

0

메그 어리 교수는 저명한 천체 물리학자로 2015년부터 2016년에는 전미천문학협회의 회장을, 예일대 물리학과에서는 2007년부터 2013년까지 학과장을 지냈습니다. 그의 화려한 경력을 읊으려면 원고는 금새 채워지겠습니다만, 오늘 제가 하려는 얘기는 그것은 아닙니다.

그의 경력이 궁금하시다면 예일대의 패컬티 소개 페이지를 참고하시고요, 블랙홀과 Multiwave length 에 관한 연구로 천체 물리학의 최전방에 서 있는 그의 연구가 궁금하시다면 논문을 읽어보시면 됩니다.


여성으로 서다

그는 여성으로서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AAAS에 섰습니다. 아니 더 정확히는 예일대 물리학과에서 최초로 테뉴어를 받은 여성 과학자로서, 그곳에서 살아남은 사람으로서, 그리고 자신의 분야에서 시니어가 된 전문가로서 말입니다.

‘시니어 프로페셔널’이라는 말은 자신에게 미래의 커리어와 현재의 안전을 의지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을 위해 결정적으로 시스템을 바꾸고, 개선할 수 있는 자리라는 말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그의 강연은 여성들의 고발문이기도 하지만 그 여성들의 고발에 반응하고 움직이며 변화하는 리더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메그 어리(Meg Urry) 교수

메그 어리 교수는 2015년 겨울, UC 버클리의 저명한 천문학자였던 제프 머시(Geoff Marcy)가 해고된 사건을 먼저 언급합니다.

사실 이는 2015년에 ‘발생’한 성폭력 사건은 아닙니다. 무려 2011년 제프 머시의 학생이었던 첫 번째 피해자의 고발 이후 2015년 4번째 피해자가 생길 때까지 지속적으로 묵인되어온 사건에 가깝습니다. 미 언론인 버즈피드의 고발로 사건은 비로소 표면화되었습니다.


학교라는 사냥터
(Hunting Ground)

그런데 2015년 1월에는 공교롭게도 ‘헌팅 그라운드(Hunting Ground)’라는 다큐멘터리가 개봉되었습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캠퍼스 내 성폭행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며 미국의 유명 대학들이 자신들의 명성과 기부금을 보호하기 위해 어떻게 성폭행 사건을 숨겨왔는지 드러냅니다.

고발된 성폭행 사건들이 학내 성범죄 발생 통계에 포함되지 않는 것은 개중에 가장 덜 심각한 일입니다. 학교는 성폭행 피해자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피해자가 술을 많이 마셨는지, 무슨 옷을 입고 있었는지, 왜 그 장소에 따라갔는지를 끊임없이 물으면서 질문을 가장한 질책을 퍼붓습니다.

피해자의 동의 없이 열린 교수진 회의에서 정학 처분을 받은 가해자에게 정학 취소를 선언하기도 합니다. 멀쩡하게 학교를 돌아다니는 가해자들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공포에 떠는 사람들은 피해자들입니다.

다큐멘터리에서 그들은 “캠퍼스가 나를 향해 좁혀오는 듯한 느낌”이라고 말합니다. 캠퍼스는 모든 고통스런 절규를 흡수해버리는 침묵의 블랙홀이 됩니다.

그러나 성폭행 생존자들은 이제 스스로를 돕기로 합니다. 피해 당사자인 2명의 학생을 주축으로 미 전역에서 일어나는 캠퍼스 성폭행 사건들을 고발, 아카이빙하고 피해자들의 네트워크를 만드는 운동이 일어납니다.

이 목소리는 미 전역을 휩쓸고 오바마 행정부가 30여 개의 대학을 대상으로 성폭력 사건 은폐 등에 관한 조사에 착수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물론, 제프 머시가 해고된 버클리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2015년 12월 제프 머시가 해고되기 이전 1월에 ‘헌팅 그라운드(Hunting Ground)’가 개봉한 것은 결코 ‘공교로운’ 일은 아니었던 겁니다.

들불처럼 일어난 생존자들의 이야기는 그렇게 세상을 바꿉니다. 오랜 기간 처벌이 지연되고 있던 범죄들을 해결하고 안전한 공간을 구축해 나가는 것이지요.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이 캠퍼스 성폭력에 맞서 “It’s On Us” 캠페인을 발표하는 장면 ⓒAljazeera

메그 어리 교수는 이렇게 변화된 분위기에 화답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2015년 전후로 60여 차례 학내 성폭력과 관련된 강연을 해 오기도 했고요.

그런데 그런 그조차도, 제프 머시 사건이 제기되었을 때 비로소 전미천문학협회의 윤리 규정들을 들여다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오로지 표절에 관한 규정들만 발견하게 됩니다.

가장 매뉴얼이 필요한 순간에 우리는 항상 매뉴얼이 부재했음을 알게 되지요. 그는 즉시 테스크 포스를 꾸립니다. 모호하고 당위적인 글자들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건의 정황을 파악, 해결하는 매뉴얼을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시 제프 머시 사건을 지켜보고 있었던 사람들에게서 800여 통이 넘는 이메일을 받기도 했습니다.

지난 경험을 통해 메그 어리 교수는 우리에게 세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1. 과학계에서 성폭력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2. 어떤 조건들이 더 성폭력이 일어나기 쉽게 만드는가.
3.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선 1번 질문에 몇 가지 예시를 들어보지요. 모두 메그 어리 교수가 언급한 실제 사건들입니다. 제프 머시 사건 이후 천문학회가 열렸습니다. 학회는 기조강연을 과학계 내 성폭력이라는 주제로 준비했고, 모든 참가자들은 등록을 할 때에 체크리스트를 받았습니다.

‘성희롱을 하지 않겠다’, ‘특정한 행동은 성폭력이다’ 등의 정보가 적혀 있었습니다. 체크리스트를 안 읽더라도 도저히 피할 수 없도록 등록 데스크 옆에는 사람 키 만한 플랜카드도 붙여놓았지요. 메시지는 분명했습니다.

“성희롱을 하지 마시오.”

그런데 학회가 시작하자 마자 문제가 터졌습니다. 한 남학생이 여학생의 포스터에 가서 “이 포스터에 너 말고 볼 게 뭐가 있냐”고 말한 겁니다.

우리는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 걸까요?
성폭력 피해 고발을 믿지 않는 세상, 성폭력 금지라는 말이 의례적인 말로 치부되는 세상이 아닌가요?


50키로 가방을
매고 뛰는 마라톤

더 큰 문제들은 교수와 학생의 권력 관계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입니다. 특히 대학원에 다니는 동안 학생들은 교수 한 사람에게 자신의 미래를 전적으로 의지합니다. 메그 어리 교수 같은 대단한 사람도, 학생 시절 자신의 지도 교수가 그야말로 이었다고 합니다. 아니, 그 사람이 대단하고 아니고와는 무관한 일이겠지요. 아카데미아의 도제식 시스템이 완벽하게 위계적인 권력 관계를 만드는 것이니까요.

교수와 학생의 연애를 상상해 볼까요? 그들이 진짜 사랑을 하고 하지 않고는 별로 중요치 않습니다. 다른 연애 관계에서라면 상대방이 나의 인생을 완전히 부술 수 있는 권력을 갖고 있지 않으므로 그녀는 항상 자신의 관계에 선택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교수와 대학원생의 관계는 다릅니다. 이미 학문과 지난한 싸움을 해야하는 아카데미아에서 이제 그녀는 연애 관계라는 복잡한 권력의 매트릭스에까지 들어가게 됩니다. 이중 삼중의 짐이 되는 거지요.

멕 어리 교수는 이를 “50키로 가방을 매고 뛰는 마라톤”에 비유했습니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입니다.

“그 관계가 진짜 사랑이라고 말하는 교수가 있다면, ‘테뉴어를 버리고 다른 학교에 가서 나와 연애를 하자’고 말해보세요.”

그러니까 이제 선생님도.. ⓒ영화 <은교> 스틸

제가 이야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권력의 자리에 있는 사람을 남성으로 언급한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정말 교수의 수는 남성이 절대적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과학 기술계에서는 말입니다. 메그 어리 교수는 무려 2001년이 되어서야 예일대 물리학과에서 최초로 테뉴어를 받은 여성 과학자입니다.

과학 기술계의 성비 불균형은 여학생들의 비율이 학위 수준이 올라갈수록 급격하게 감소한다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학부에서 40%에 이르렀던 여학생들의 비율은 박사과정에 이르러 25%까지 하락합니다. 전공에 따라 편차는 있지만 박사학위를 받을 때와, 포스트 닥터에서 조교수로 올라가는 단계에서는 특히나 비율이 급락했습니다.

누군가는 강연장에서 이렇게 질문하기도 했습니다.

“학부에서 여학생들의 비율과 박사를 받는 여학생들의 비율이 다른 것이 왜 문제인가?”
“여성들이 학교 밖에서 더 매력적인 직업을 찾아 나간게 아닌가?”

메그 어리 교수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왜 아카데미아는 여성들에게 더 매력적인 곳이 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가’라고 말입니다.

아카데미아가 안전하지 않아서 여성들이 다른 직업을 찾아 나선다면, 그것을 과연 ‘선택’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더군다나 대학은 학생을 가르치는 공간입니다. 학생들은 이미 다양한 젠더와 인종, 계급 출신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이런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이 백인 남성뿐이라면 어떤가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느새 마지막 질문에 봉착합니다. 성폭력 사건이 학과 내 젠더 불균형, 아카데미아의 강력한 위계 질서 등과 연관이 되어 있다면 과학 기술계 안의 우리는 이제부터 무엇을 해야 할까요?


백신맞기

메그 어리 교수가 제안하는 사안들은 간단하지만 중요합니다.

1. 명확한 규칙 만들기: 성폭력을 저지르는 행위는 연구 능력 결여와 같다
| Sexual Misconduct = Research Misconduct

많은 성폭력 사건들이 가해자가 소위 ‘능력 있는’ 사람이기에 무마되고는 합니다.

그가 상을 받은 수영 선수이기 때문에, 노벨상을 받을지도 모르는 작가이기 때문에, 프랑스에서 유명한 영화 감독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들의 ‘능력’을 말할 때 왜 우리는 피해 여성의 ‘능력’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을까요?

성폭력 가해자들은 보통 한 사람에게 하나의 사건만 저지르지 않습니다. 제프 머시가 그랬고, 지금 우리의 #MeToo 운동이 목도하고 있는 바도 그러하지요. 그들이 고통으로 내몰아 결국 과학계에서도, 영화계에서도, 문단에서도, 스포츠계에서도 쫓아냈던 훌륭한 여성들에 대해 우리는 더 이야기해야 합니다.

자신의 권력과 지위를 이용해 타인의 재능과 커리어를 죽인 사람의 연구는 ‘훌륭할’수 없습니다.

미국은 현재 연구자들의 펀딩과 연관된 단체인 국립과학재단(National Science Foundation;NSF)에 성폭력 고발이 곧바로 보고되는 시스템을 갖추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연구비를 지원하는 모든 관련 기관에 해당 연구자에 대한 성폭력 고발을 보고를 의무화해야 합니다.

2. 더 많은 여성들이 힘 있는 자리에 오를 수 있어야 한다

학생들이 마주하는 교육자의 모습은 학생들만큼이나, 아니 그들이 꿈꿀 수 있는 모습만큼이나 다양해야 합니다. 힘을 가진 여성들은 힘을 가지는 데에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말과 행동을 실천해야 합니다.

대학의 본질은 학생을 교육하고 보호하는 데에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합니다. 이미 구축되어 있는 호모소셜한 문화를 부수고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연결을 엮어 나가야 합니다.

3. 그리고 여성들을 무장시킵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성들을 무장시킵시다. 이 말은 지난한 고민 끝에 등장했습니다.

과학 기술계 내 여성이 얼마나 성폭력과 성차별에 노출되는지를 끊임없이 고발하면서도 더 많은 여성들에게 과학 기술계에 와서 살아남으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딜레마 속에서 말이지요. 이는 걸스로봇이 느끼는 딜레마와도 일치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우리는 어느 쪽도 숨기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진실을 말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아야 한다고도 말하면서요. 여성들은 백신을 맞고 갑옷을 입듯 더 강하게 이겨낼 것입니다.

Share.

About Author

Girls' Robot

댓글 남기기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