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4화. AAAS 여자들 ‘스티븐 호킹 밖에 모르는 당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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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밖에서

연일 참담한 말들을 쏟아내는 TV를 끄고 노트북 앞에 앉았습니다. 어디서부터 써야 할지, 쓸 수 있기는 한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두통약을 챙겨먹고 모니터를 들여다볼 뿐입니다. 뉴스는 계속해서 ‘성추문’이라는 단어를 불러냅니다. 성추문은 그저 ‘sex scandal’이라 ‘번역’됩니다. 성희롱과 성폭력, 그리고 성폭행. 가해자와 피해자가 존재하는 이 끔찍한 범죄들은 섹스 스캔들로 둔갑해 유통됩니다. 마찬가지로 #MeToo는 ‘나도 당했다’로 번역되고 말지요. ‘나도 고발한다’는 당사자의 용기와 의지는 사라져버리고 맙니다.

아버지는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운동하던 1980년대만 해도 군부독재와 싸우느라 저런 일은 없었는데,
요즘은 참 이상한 애들이 많구나.”

부글부글하는 마음을 간신히 가라앉히고 지금 드러나는 일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이른바 관행으로, 문화로, 심지어 유산으로 이어져왔는지 설명해보려 했습니다. #운동권_내_성폭력, 그 뼈 아픈 고발의 목소리들이, 아버지처럼 한 때 운동에 투신했던 작은 영웅들에게는 들리지 않았다면, 그 추억을 곱씹으며 오늘을 사는 이들이 #MeToo가 진보 진영을 분열시키는 공작으로 작동할 위험성에 대해서만 되려 목소리를 높인다면, 그것은 성폭력이 없었다는 걸 증명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누가 성폭력에 가담하고 방조하고 묵과했는지, 누가 성폭력을 허상이나 음모로 부를 만큼 안전한지, 누가 그것을 몇몇 또라이들의 짓이라고 웃어넘길 수 있는지를 명백히 드러낼 뿐이죠.

지난해 11월 헐리우드에서 벌어진 #MeToo 성폭력 생존자들의 행진에는 수백 명이 참여했습니다. “Yes는 Yes, No는 No”라든가, “멘토가 내 셔츠 밑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같은 피켓들을 들고 말이죠. ⓒ로이터

거미줄을 찢는 자매들

급박하게 돌아가는 페미니즘 이슈들이 산재한 이 때, 저 멀리 미국 땅에서 과학을 하는 AAAS의 여자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2016년 10월부터 이 땅의 각 분야를 뒤흔들었던 #OO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일랑 씻은 듯 잊어버리고, 새삼스럽게 서양에서 수입한 운동쯤으로 #MeToo를 낮춰보는 이들이 있습니다. 장자연 사건 당시에는 왜 침묵했느냐며, 성폭력 피해자들의 의도를 평가하려는 이들도 있습니다.
거기에 더해 난데없이 미국 과학계의 사례를 소개하는 일이 지금 여기의 페미니스트들을 지워버리는 또 하나의 ‘후려치기’가 되지 않을까 염려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저 멀리 천조국에서 벌어지는 비현실적인 일들에 대해 말하는 것이 페미니즘 진영 이쪽에는 또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고민했습니다. 맥락을 삭제한 채 이식할 수 있는 지식 따위는 없기 때문입니다.

일상의 삶터 주위로 촘촘히 얽어매던 권력의 거미줄을 찢어나가는, 저 분홍색과 보라색의 연대를 보세요.

다만, 지금 AAAS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오늘 우리의 폭로, 연대 그리고 변화와 분명한 연결지점들이 있습니다. #MeToo 이전에도 분명히 성폭력과 싸워온 이들이 그곳에도 있었습니다. 일견 페미니즘과는 전혀 무관해 보이는 과학기술계에서 말입니다. 정치적, 학술적 리더십을 장악한 여성들은 ‘성평등’이라는 안전한 의제보다 한 발 더 나아갔습니다. 연구 환경과 동료들의 가장 구체적이고 민감한 사안들이 ‘사적인 사건’을 넘어, ‘공적인 문제’로 ‘과학 공동체의 지혜’로 전달되는 광경을 우리는 보고 들었습니다.

#문단_내_성폭력 이후 발간됐던 책 『참고문헌 없음』이 떠올랐습니다. 문단 내 성폭력을 고발하고, 이에 대항하며, 또한 연대하는 이 책은 문학계 내부의 움직임만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은 아닐 겁니다. #오타쿠_내_성폭력, #예술계_내_성폭력, #운동권_내_성폭력 등, 16개 이상의 주요 해쉬태그들과 만나고 있습니다.[1] 이공계 또한 예외는 아니어서 이공계 내 성차별 아카이빙 프로젝트[2]와 #의료계_내_성폭력 해쉬태그가 여전히 숨쉬고 있습니다.

이 해쉬태그들을 달고 등장한 이야기들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성폭력을 순간적이고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앞뒤 맥락이 있는 연속적 사건으로 다룬다는 점입니다. 성폭력 여부를 접촉이나 삽입의 순간으로만 판단하는 좁은 합리성을 반박하는 것이지요. 성폭력은 결국 권력의 문제임을 드러내기 위해 사소하게만 보였던 일상의 사건들을 복기해냅니다. 그렇게 짜여진 사소한 문제들의 거미줄이야말로 여성들을 성폭력으로 옭아맸던 힘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우리는 성폭력에 관해 너무 많은 디테일을 알고 있습니다. 한샘 성폭행 피해사건을 다루는 한 신문의 기사 제목은 <‘그것이 알고 싶다’ 한샘 성폭행 피해자 “내 속옷 방안에 숨겨, 귀신같이 일어나 날 붙잡아” 폭로>[3] 였습니다. 비극적인 범죄를 관음적인 시선으로 재현하면서 강간 포르노로 소비하려는 디테일들이 판을 칩니다. 우리가 온 힘을 다해 들어야 하는 것은 다른 디테일들입니다. 어떤 관계에서, 어떤 행동들이 권력의 불균형을 만들었는지, 피해자들은 거기 어떻게 저항해 왔는지, 성폭력을 고발하고 대항하는 과정에서 어떤 갈등들을 왜, 겪었는지 말이지요.

『참고문헌 없음』이 그랬듯, AAAS의 세션들도 이러한 지식들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었습니다. 특히나 과학/기술계라는 맥락 속에서요. 열심히 연구한 포스터를 학회에서 발표하던 여학생이 들어야 했던 모욕적인 말들, 관심을 가장한 괴롭힘들. 사소하게 보이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작은 불편함으로 취급되었지만 실은 큰 위협이었던 일들이 낯낯이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이를 고발하는 자리에서조차 ‘기계적 중립성’으로 무장한 사람들의 가시 돋힌 질문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멋진 반박들에 금새 작아지기는 했지만요.

 

과학기술계의
#MeToo

미국 최초의 여성 천문학회장이었던 메그 어리(Meg Urry) 박사는 대학에서 일어나는 성폭력이 어떻게 여성들을 공부하지도 일하지도 못하게 만들었는지 통렬하게 반성합니다. 저명한 천체 물리학자이기도 한 그는, 자신의 연구 실적을 과시하는 대신 #MeToo 운동이라는 시대적 부름에 적극적으로 감응하길 택한 겁니다.

세션이 끝나고 이뤄진 걸스로봇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성폭력에는 언제나 한 가지 이상의 진실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층적인 진실을 그려낸 그 세션 제목은 “Sexual Harassment: What it means and what we can do about it”이었습니다.

“Women in STEM at Historically Black Institutions: South Africa and the United States”라는 세션에서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일본, 미국의 세 여성 과학자들이 참여했습니다. 세션 제목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특수한 교육 체계를 가리킵니다. 아파르트헤이트로 인해 교육기관마저 인종 별로 분리된 시절을 겪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흑인/여성/과학자는 중층적인 소수자성을 지닙니다. 삼중고를 뚫고 살아남은 흑인 여성 과학자가 다음 세대를 길러내기 위해 교육기관과 정책을 바꿔나가는 현장을 생생하게 보고했습니다.

지구상의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여성의 전방위적 사회참여를 촉진하는 비영리 싱크탱크 . 그 한 부문인 에서는 테크기업과 학교 등 과학기술계에서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이 ‘짤린’ 리스트를 공개하는 특집을 홈페이지에 실었습니다. ⓒMIDA

다음 회에서는 세션의 내용들뿐 아니라 AAAS 의 전반적인 분위기도 전하겠습니다. 기조연설의 현장에서, 세션 구석구석에서, 워크샵에서, 부스에서 만난 여성 연구자들은 다양한 인종과 국적, 배경을 가진 이들이었습니다. 이들이 말하는 여성으로서의 공통된 경험들을, 그러나 맥락적인 삶의 조각들을 옮겨보겠습니다. 공유와 후원은 저희가 좀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힘이 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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