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노이드 2016> – 데니스 홍 인터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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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교수님과의 이야기는 로봇 이야기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지난겨울 RoMeLa를 방문했을 당시 굉장히 편안하고 자유로운 연구실 분위기에 감탄한 적이 있다. 게다가 이번 학회에서 만난 RoMeLa의 남학생은 당시 선물하고 온 분홍색 로고의 걸스로봇 티셔츠를 어찌나 자주 입었는지 바래진 채로 입고 나타났다. 사소하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았다. RoMeLa의 분위기와 여성에 대한 교수님의 생각이 궁금했다.

 

이세리(이하 이): 교수님, 이제는 로봇 말고 ‘걸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해요. 사실 이전부터 여러모로 ‘걸스로봇’을 지지해주고 계신대요, 나름의 이유가 있으실 것 같아요.

데니스 홍(이하 홍): 왜 여성 공학도가 필요한 것인가?에 대한 생각에서 출발해볼까요? 세상에 역사적으로 이름을 남긴 유명한 화가들을 떠올려봐요. 클림트, 고흐, 피카소, 렘브란트… 음악가는 어때요? 모차르트, 베토벤… 떠올리다 보면 다 남자잖아요. 지금 이 세상을 아름답게 한 예술가들,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게 다 남자예요. 결국 우리는 세상의 아름다움의 반을 놓치고 사는 거나 다름없고요.
마찬가지로 엔지니어들은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수학과 과학을 이용해서 사회의 중요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슈퍼 히어로’예요. 그런데 여성공학자가 없다는 것은 이 세상을 더 이롭게 할 수 있는 ‘히어로’의 반을 잃고 있는 것이죠.

 

사실 위인전을 봐도 그렇다. 퀴리부인 헬렌 켈러 말고 그럴듯한 여성 위인을 떠올리기가 어렵다. 그것은 사회적으로 충분히 소개되지 못한 이유도 있지만, 실제로 가사노동 외의 사회활동을 할 수 없었던 이유도 있을 것이다.

 

이: 그런 면에서 교수님 랩은 어떤가요? 자세한 이야기가 듣고 싶어요.

홍: RoMeLa(Robotics & Mechanisms Laboratory)는 제가 박사학위 끝나자마자 버지니아텍에 교수로 임명되었을 때 새운 랩입니다. 저는 10년 동안 버지니아텍에 교수로 있다가 2년 반 전쯤에 UCLA로 옮겨서 지금 UCLA Robotics Institute를 세우고 있는 중입니다. RoMeLa는 UCLA로 넘어올 때 가져왔고요. 그런데 저희는 대학원생 18명 학부생 20명으로 규모가 큰 편입니다. 지난번에 세리 씨가 연구실에 왔을 때는 대학원생 중에 여학생이 5~6명 있었고, 지금은 졸업하고 2명 정도 남아 있습니다. 여학생들에게 특혜를 주거나 하지는 않지만, 공학계에 여학생들이 부족하다는 부분에 대해 항상 인지하려고 해요. 하지만 미국에도 여학생 엔지니어가 별로 없는 건 마찬가지라 선발이 어렵죠.
그래도 제가 한국에서 학부생활 할 당시와 비교하면 좋아지고 있어요. 그때는 여학생이 아예 없었어요. (무슨 과이셨나요?) 저는 기계과였는데, ‘금토끼’라고 금속공학, 토목공학, 기계공학은 여자가 아예 없었어요. (헉 정말요? 혹시 몇 학번이셨는지 여쭤봐도 되나요?) 아뇨 안됩니다(웃음)

이: 학교 측에서도 제도적으로 신경 쓰는 부분이 있나요?

홍: 네, 소수자에 대한 정책들이 있어요. 여성이나 소수인종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두고 있죠. RoMeLa에서는 정책적으로 접근하고 있지는 않고 있고, 그냥 당연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며 인지하고 있어요. 그리고 여담이지만 UCLA에서는 백인이 소수민족이에요. 공대는 대부분 동양, 인도학생들이거든요.(웃음)

 

이: MIT에서는 여학생의 성비를 40% 정도로 맞춰서 선발한다고 해요. 이에 대해서 일부 학생들은 특혜라고 말하기도 하고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홍: 저는 자연스럽지 않게 억지로 성비를 맞추려고 하는 부분은 조금 조심스러워요.

이: 사실 한국에도 유사한 정책이 있어요. 교대의 경우 여학생들이 많이 몰려서 성비에 대한 정책을 적용하기도 해요.

홍: 왜 그렇지?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다. 정책에 앞서 왜 교대에는 여학생이, 공대에는 남학생이 모이는지 근본적인 부분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모든 것을 하나의 이유로만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선생님이라는 직업이 ‘여자’가 하기에 가장 좋은 직업이라는 생각을 많이들 갖고 있어요. 가령 출산이나 육아의 부분에서 경력단절에 대한 걱정도 덜 하고, 맞벌이를 하면서도 아이가 ‘엄마의 부재’를 덜 느끼게 해줄 수 있으니까요. 실제로 여자 선생님은 일등신붓감이라는 인식도 많고요.

홍: 이러한 현상들은 단순한 문제가 아닌 만큼 단 하나의 해결책이 있을 수는 없고, 여러 가지 방면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어요. 이미 분명한 격차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다소 불공평해 보일 수도 있는 성비 정책이 어느 정도 필요할 수 있겠네요.

 

홍교수님은 대화를 나누며 성비정책이라는, 조금은 자연스럽지 않은 움직임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수용이 필요할 수 있겠다고 생각을 정리하신 듯 보였다.
인터뷰를 정리하는 중 궁금한 마음에 결혼정보회사의 직업별 등급을 검색해보았다. 예상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남자의 경우 ‘서울대 법대 출신 판사’가 1등급인 반면, 여자는 ‘부모님이 장차관급 공무원,국회의원,자치단체장/부모님 재산 1000억 원 이상’ 등으로 전부 부모님의 직업과 경제력에 따라 1등급이 결정되었다. 여자는 3등급까지 본인의 직업에 대한 언급이 없는 반면 남자는 무직일 경우 등급조차 받을 수 없다. 남자에게도 여자에게도 가혹하고 형편없는 등급표라는 생각이 들었다.

 

홍: 나는 특히 우리나라에서 많이 이야기하는, ‘성별에 따른 가정에서의 역할’에 대해서 부정적이에요. 집에서 저녁 식사 준비는 제가 매일 해요. 요리는 제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에 제가 항상 합니다.

이: 사실 거기에는 사회적인 뒷받침도 필요할 것 같아요. 저희 세대가 딱 그 과도기에 있거든요. 인식은 많이 바뀌었는데, 제도적인 면에서 지원이 안 되어 가사와 육아를 나눠 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요.

홍: 그렇죠. 사회적 분위기나 교육, 제도적인 부분은 모두 굉장히 견고하기 때문에 바뀌는데 시간이 걸려요. 큰 바윗돌도 움직이려면 F=ma, 힘이 많이 들어가는 것처럼 올바른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나가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면의 노력이 필요하죠.

 

이: 저는 ‘저녁 시간이 보장되는 삶’이 그러한 격차를 줄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는데요, 교수님 계신 곳(미국)은 어떤가요?

홍: 그런 개념 자체가 없어요. 그냥 당연히 5시 반이면 집에 가는 거고, 야근도 당연히 없고. (혹시 교수라는 직업군만 그런 것은 아닌가요?) 아뇨 보통 다들 그래요. 대학원생의 경우에는 일반적인 직업군과 조금 다르지만요. 우리 RoMeLa학생들의 경우에는 남아있으라고 얘기하지 않아요. 근데 재미있는 걸 많이 하니까 늦게까지 남아있더라구요.(웃음)
그리고 미국에서는 저녁 시간의 미팅이나 업무적인 연락은 상당한 실례예요. 저녁은 당연히 가정에서 보내야 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사실 가정을 위해서 일을 하는 것이잖아요. 이 주객이 바뀌어 버리니까 야근문화도 생겨버리는 거예요.

이: 회식문화는 어떤가요?

홍: 회식 같은것도 전혀 없어요. 우리 랩만 아마 유일하게 회식문화가 있을 거예요. 근데 우리도 회식이라는 것보다, 학생들 고생했으니까 힘내라고 고기 사주는 정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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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네이버 랩스 이승준 박사

이: 교수님 랩에는 유독 학부 연구생이 많아요. 굉장히 드문 경우예요. 이유가 있을까요?

홍: 이 이야기를 하려면, 제가 고3 시절까지 돌아가요. 저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3살 때부터 계속 한국에서 생활하다가 대학교 3학년 때 미국으로 편입학을 했는데요, 그 배경을 먼저 설명해야 할 것 같네요.
제가 7살 때 스타워즈를 처음 보고 거기에 너무 매료돼서 로봇공학을 하고 싶다고 마음먹었어요.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부모님께 나는 로봇 공학자가 되겠다고 다짐한 이후로 평생 꿈만을 쫓아왔어요. 고 3 시절에도 대학입시 공부가 힘들었지만, ‘내가 대학교만 들어가면 7살 때부터 꿈꾸던 로봇공부, 진짜 로봇을 할 수 있겠구나.’ 그것만 생각하고 공부를 했어요.
지금은 조금 다르지만, 그 당시에는 갓 들어온 신입생이 교수님들 사무실 찾아가서 로봇연구에 참여하고 싶다고 이야기해도, 학부 1학년이 무슨 연구냐며 다 돌려보냈어요. 그래서 굉장히 실망하고 상처받았죠. 학부 2학년 때는 형이 박사를 하고 있는 스탠포드에 교환학생을 갔는데 그 때 너무 부럽고 충격을 받았던 게, 스탠포드 학부생들은 펀드를 받으며 연구에 참여하더라고요.
그렇게 한국에 돌아와서는 한동안 기가 죽어서 지냈어요. 그걸 보고 부모님께서 어차피 대학원 유학을 생각하고 있었으니 좀 더 일찍 가는 게 어떻겠냐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3학년 때 위스콘신 대학교 매디슨으로 갔는데 거기에서 기구학의 대가 중 한 분이신 존 유이커 교수님 아래에서 연구를 시작했어요. 그 당시에 너무너무 행복했고요. 이후 대학원은 퍼듀로 갔는데 그 이유가 존 유이커 교수님의 학생이었던 레이먼 시프라 교수님이 거기에 계셨거든요. 결국, 계보로는 제가 3세대가 되는거죠ㅎ

 

DH파라미터가 사실 Dennis Hong 파라미터라며 농담을 던지며 계보를 읊는 교수님은 즐거워 보였다. 유이커 교수님도, 시프라 교수님도 잘 알지 못하지만 분명 좋은 분들을 만났던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으로서 지도교수를 잘 만나는 것은 굉장한 축복이다.

 

홍: 이런 과정을 겪고, 제가 박사를 졸업하면서 다짐한 것이 있어요. ‘내가 나중에 교수가 되면 학부생들에게 연구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겠다.’ 왜냐하면, 제가 그걸 통해서 많이 배우고 혜택을 받았잖아요. 그래서 우리 연구소에 학부 학생이 많은 거예요.
근데, 학부생을 그냥 많이 뽑는 건 아니고 실제로 우리 학생들은 많은 연구를 하고 있어요. 한 가지 사례를 이야기하자면, 2007년 DARPA Urban Challenge 무인자동차 대회에서 RoMeLa가 3등을 했어요. 그 대회가 우리 연구소를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해준 디딤돌이 됐는데, 당시 우리 팀만 거의 유일하게 학부생 팀이었죠. 다른 팀은 교수, 포스닥, 엔지니어로 이루어져 있는데 저는 대회를 위한 수업 과목을 개설해서 학부생 40명과 석사생 6명으로 팀을 꾸렸어요. 그 팀으로 3등을 한 것이고요. 학부생들도 관심을 두고, 지지해주고, 조언해준다면 정말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대단한 기술을 만들 수 있어요. 2007년 대회는 그걸 보여줄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 시각장애인 전용 자동차 개발 역시 학부생들과 함께했어요.

이: 학생들이 그렇게 많으면 지도나 관리에 어려움이 있지 않나요?

홍: 저는 대학원생들을 지도하고, 학부생 3~4명씩 대학원생 한 명을 붙여줘요. 그래서 대학원생들은 멘토를 해주고, 학부생들은 대학원생들의 실험을 도와주면서 생활하죠. 그런 학부생 중에 일부는 RoMeLa의 대학원생으로 계속 데리고 있고요. 미국 내에서도 이런 RoMeLa의 구조가 성공적인 사례로 꼽혀서 Case Study도 많이 하고 있어요.

이: 사실 저도 학부생으로서 연구실생활을 했었지만, 학과활동(공부)과 연구를 병행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에요. 학생들이 공부에 소홀하거나 한 경우는 없었나요?

홍: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공부는 땡땡이치고 연구만 하는 학생은 안 좋아해요. 해야 할 일도 하고, 놀 때는 또 놀면서 꿈을 쫓는 거죠. 왜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공부가 재미없을 거예요.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취미로서의 로봇은 잘할 수 있어도, 연구자로서의 로봇은 잘할 수가 없어요.

 

본인이 그 혜택을 경험하였기에 자신의 학부생들에게 연구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일뿐더러, 학부생으로서 감사한 일이기도 하다.

 

이: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읽게 될 독자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홍: ‘세상의 반’, ‘히어로의 반’ 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꿈을 찾고, 꿈을 쫓고, 그 꿈을 꼭 이루세요! 화이팅! (짝짝)

 

정글에서 시작된 인터뷰는, 물속과 흙길을 거쳐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마무리됐다. 인터뷰에 다 싣지는 못했지만, 많은 질문과 진심 어린 조언이 오갔다. 로봇계 스타의 권위의식은 없었다지만, 페북 스타로서 보여지던 모습들은 데니스 홍, 날 것 그대로의 것이었다. 필자보다도 넘치는 에너지로 인터뷰 내내 유쾌한 분위기를 만들었고, 그 안에 단단하게 자리 잡은 무언가는 견고하고 흔들림이 없었다. 그를 그 자리에 있게 한 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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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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